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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Aug 26.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4화 (1)

4화. 변호사 선임 (1)

  한참을 맥없이 주저앉아 있던 은혜는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교육과정 부장 선영이었다.

  “정 부장, 5층 교무실에 없네. 어디예요? 교장실은 다녀왔어요?”

  금방 올라가겠다고 하고, 은혜는 전화를 끊었다.      


  진로 부장 미희와 환경 부장 은숙, 환경부 계원 박희수까지 융합교육부 교사 모두가 공강이라 교무실에 있었다.

  “아니, 정 부장!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걱정했잖아. 영양 샘 말로는 출근하자마자 교장실로 갔다던데, 행정실에서는 교장 선생님 지금 출장 중이라 하더라고.”

  은숙이 은혜를 보자마자 한걸음에 다가왔다. 선영은 진로상담실로 은혜를 이끌었다. 미희와 은숙도 따라 들어왔다. 은혜는 교장실에서의 일을 부장들에게 전했다. 학부모가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는 설상가상의 상황에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참, 얼마 전에 진로 부장이 돌린 교사 노조 볼펜 받고, 정 부장 노조 가입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은숙이 침묵을 깨고 반색하며 말했다. 2주 전에 미희는 교무실 선생님들에게 교사 노조에서 받은 홍보용 볼펜을 돌렸다. 볼펜을 받자마자 은혜가 안 그래도 교사 노조에 가입하려고 했었다며 미희에게 노조 가입을 어떻게 하는지를 물었다.

  “아, 맞다! 이런 일은 노조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들었어요.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얼른 전화해 봐요.”

  미희도 기대감에 부풀어 말했다. 부장들의 성화에 은혜는 교무실 책상 위에 올려 둔 핸드폰을 가지고 왔다.      


  한 차례의 연결 후에 은혜는 교사 노조의 교권 담당자와 통화할 수 있었다. 은혜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선생님, 경찰에 아동학대 신고가 되었으니 수사에 대비하셔야 해요.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여러 가지로 대비해야 할 것이 많아요. 우선적으로 변호사 선임을 하셔야 합니다.”

  “변호사요?”

  “네, 경찰 조사 시에는 아무래도 변호사가 있는 게 나을 거예요. 선생님, 혹시 저희 노조에 언제 가입하셨나요?”

  “가입은 일주일 전쯤에 했어요. 사건은 지난주 금요일에 발생했고요.”

  “아, 그러시군요. 선생님, 안타깝지만 저희 노조의 규정상 가입하고 3개월이 지난 선생님에게만 변호사의 자문이나 선임료를 지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일 주 전에 가입하셔서 저희가 그런 법률적인 도움은 드릴 수가 없네요.”

  수화기 밖으로 흘러나오는 교사노조 교권 담당자의 답변을 듣고, 부장들이 한숨을 쉬었다.

  "아, 그렇다면 이런 사안에 유능하신 변호사를 소개해 주실 수는 있나요?"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그런 소개를 해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아니면, 노조의 고문 변호사를 소개해 주실 수는 있나요?"

  "고문 변호사의 연락처를 드릴 수는 있지만, 그분과 상담을 받고 선임하시는 것은 선생님이 판단하셔야 합니다. 변호사 선임료 부분도요."

  "네, 일단 고문 변호사 연락처라도 알려 주세요.”     


  은혜는 며칠 동안 온갖 인맥을 총동원하여 이쪽 방면의 유능한 변호사를 수소문했다. 그중에는 학교 폭력과 같은 학교 사안을 전문적으로 담당했던 변호사, 경찰 수사에 잘 대비하도록 돕는 경찰 출신 변호사, 학교 관련 법적인 내용을 책으로 쓴 교사 출신 변호사 등 다양했다. 그들과 상담을 받으면서 아직 은혜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여러 번 반복해서 입 밖으로 꺼내어 설명하는 것이 힘겨웠다.


  변호사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런 사안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아동학대의 정서적 학대의 해석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했다. 담당하는 수사관이나 검사, 판사 등에 의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요즘은 사회적으로 여성이나 아동 관련 사안에서 피해자들의 의견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서 은혜의 입장이 불리하며, 무엇보다 아이들의 진술 내용이 중요하다고 했다. 변호사들과 상담을 하면 할수록 이 일이 생각만큼 간단하게 끝날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은혜는 엄청난 폭풍우 속에 휘말려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향진중학교장 남창균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대학교 동문인 선임 교장 변종학으로부터 이미 향진중학교 학부모들이 얼마나 말이 많은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종학은 학부모들과 관계를 잘 맺어놓아야 학교 운영이 수월하다고 했다. 학교운영위원회를 열기 전에 학부모 위원들과 식사하면서 친분을 많이 쌓아 놓으라고 조언했다. 학부모회의 2, 3학년 대표 어머니들이 학교에 불만도 많고 요구사항도 많으니 조심하라는 당부도 있었다. 특히 3학년 대표인 양미영 씨가 사사건건 말이 많아서 재작년에도 담임 교체까지 하게 만들었다며 신경 쓰라고 했다. 다행히 교사들은 신규가 많고, 중견 교사들도 강성 전교조가 없어 말을 잘 듣는 편이라고 했다.      


  마흔셋에 장학사가 되어 칠 년을 거의 야근하며 일에 파묻혀 살아왔다. 쉰에 교감이 되어 무능하고 비열한 교장 밑에서 사 년을 고생하다 쉰넷에 드디어 교장 발령을 받았다. 36 학급이나 되는 향진중학교로 발령받았을 때, 동기 교장들은 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학부모 치맛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한 학교에 자신들이 가지 않아 안도하면서, 관내에서 가장 큰 중학교에 발령 난 것을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넸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고 드디어 교장이 되었다. 향진중에서 2년 정도 있다가 중심지의 괜찮은 고등학교로 옮긴 후 은퇴해서 편안한 노후를 보장받으며 여유 있게 사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3월 한 달간 별 탈 없이 잘 지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3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전에 1학년 부장으로부터 민원 내용을 들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주말 저녁에 선임 변 교장에게 술 한 잔 하자고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학부모 대표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변 교장은 술자리에서 꽤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민원을 제기한 1학년 9반 학부모 대표인 최민경 씨는 3학년 학부모 대표 양미영 씨와 언니 동생하며 친한 사이였고, 이번 일 역시 학교를 좌지우지 흔들려는 양미영 씨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학부모들에게 뭐라도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교장인 자신이 책잡힐 여지가 있었다. 창균은 일단 월요일 아침에 바로 해당 교사를 수업에서 배제하고, 학부모들의 반응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학부모들이 계속 강하게 나오면, 교장인 자신이 아동학대신고 의무자로서 은혜를 신고할 참이었다. 혹여나 신고를 안 했다고, 벌금 500만 원을 내고 퇴직금 반이 깎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창균이 신고를 하려던 참에 학부모 쪽에서 먼저 움직였다.      


  창균은 인터폰을 눌러 학생인권 부장 정경호를 불렀다. 잠시 후 경호가 교장실로 들어왔다.

  “정은혜 선생님이 수업하는 5개 학급의 담임 선생님을 통해 학생들의 사실확인서를 받아 놓으세요.”

  창균은 사안에 대한 조사를 우선적으로 지시했다.

  “이번 주부터 1학년은 원격 수업 기간인데, 어떤 방법으로 사실확인서를 받을까요? 대상은 어떻게 한정할까요?”

  학교폭력 업무를 주로 처리해 왔던 경호는 처음 접하는 아동학대 사건에 당황하여 되물었다.

  “일단 해당 학급의 회장과 부회장에게 목격자 진술을 받으세요. 목격자 진술서를 받아보면, 누가 수업시간에 혼났는지 뭐라도 나올 테니까 거기에 이름 거론된 학생들을 담임들이 방과 후에 학교로 불러서 사실확인서를 쓰라고 하세요.”



  교장의 지시대로 경호는 담임들을 통해 1학년 6반에서 10반까지 5개 반의 목격자 진술서 10장을 받았다. 담임들은 원격수업이 끝나고, 목격자 진술서에 국어 시간에 혼났다고 이름이 거론된 아이들을 교실로 불러 모아 사실확인서를 쓰도록 했다.      


  발이 넓은 정보 부장은 학생인권부에서 사실확인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은혜에게 전해주었다.

  “정 부장, 얼른 학생인권 부장에게 연락해서 자세한 내용을 물어봐요. 아이들 진술 내용이 중요하다고 변호사가 말했다며.”  

  은혜는 작년에 부장을 하면서 전입 오자마자 부장을 맡은 정경호에게 도움을 준 일도 있었고, 경호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은혜는 경호에게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냐고 메시지를 남겼다. 바로 경호에게 전화가 왔다.

  “부장님, 저 지금 공강이에요. 5층 교무실로 제가 올라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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