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향 Sep 01.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5화 (1)

5화. 병가 (1)

  3주가 넘도록 은혜의 수업 배제는 계속되었다. 그동안 교장에게 수차례 수업 복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은혜는 사실확인서를 쓴 아이들이나 학부모들과 직접 만나서 오해를 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도 거듭 요청했다. 

  “상황을 좀 지켜봅시다. 학부모 중에는 교사 교체를 요구한 사람도 있어요.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교장은 학부모들의 반응을 좀 더 지켜보고 은혜에게 일단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당사자를 만날 수도 없고, 수업도 못하고 있으니 완전히 손발이 꽁꽁 묶여 버린 상황이었다. 누구를 특정하여 지도한 것도 아니고,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훈계했던 내용이라 특별히 어떤 아이가 피해자라고 했는지 짚이는 것이 없었다. 학생 부장을 통해 진술서를 쓴 아이들의 이름을 들었지만, 감정적으로 불편한 일이 있었던 아이들도 아니었고, 고작 세 번째 대면 수업이라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점심을 급하게 먹고, 교육과정 부장 선영은 부리나케 교장실로 향했다. 학교장이 위기관리위원회를 급하게 소집했다. 학교장 남창균, 교감 이철용, 교무부장 노정미, 전문상담교사 전지영, 1학년 부장 송자영을 비롯하여 국어 교사 여덟 명이 교장실 안쪽의 회의석에 꽉 차 있었다. 선영은 교장에게 가볍고 목례하고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3주째 은혜의 수업 배제가 계속되어 이로 인한 수업 운영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회의였다. 선영이 들어오자 다들 온 것 같다고 교무부장이 말했다. 이에 교감 이철용이 안건을 꺼냈다.       

  “정은혜 선생님의 수업을 현재 국어 선생님들이 보강해 주고 계신데, 아무래도 국어 선생님들의 피로도가 높고, 불가피하게 학생들의 수업 결손도 생기게 되어 이에 대한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자 급히 회의를 열었습니다.”

  주당 20시간이 되는 수업에 학급 자치활동이나 동아리 활동과 같은 창체 수업까지 포함하면, 평균적으로 주당 22시간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교사들은 정신없이 바빴다. 하루에 네다섯 시간을 담당하는데, 여기에 보강 한 시간만 얹혀도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다. 

  국어 교사들은 하루 이틀 보강하고 은혜가 복귀될 줄 알았지만, 수업 배제가 지속되면서 점점 불만도 쌓여갔다. 은혜와 함께 1학년 국어를 담당하는 1반 담임 장영미와 4반 담임 신규 최지혜는 보강하는 선생님들에게 수업 진도를 일러주고 보강 자료를 매번 전달하느라 더욱 특히 어려움을 토로했다.


  “교장 선생님, 정은혜 선생님 수업 복귀는 언제 하실 생각이십니까?”

  은혜가 맡았던 국어과 부장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3학년 담임 김정희가 굳은 얼굴로 교장을 바라보았다.

  “아직 복귀는 안 됩니다. 학부모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강성 학부모들이 아직 있기에 정은혜 선생님의 복귀를 지금 말할 수 없습니다. 단 한 명의 학부모라도 수업 복귀에 반대하면 저는 복귀시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럼, 언제까지 국어 선생님들이 보강으로 수업을 메꿔야 하나요? 더 이상 국어과에서 보강을 떠맡는 것은 어렵습니다.”

  정희의 단호한 목소리에 무거운 침묵이 한참 흘렀다. 

  “시간 강사 공고를 냈으나 학교 위치가 외져서 그런지 지원자가 아무도 없네요. 국어 선생님들 혹시 주변에 강사 할 만한 사람 있는지 좀 알아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교무부장 노정미가 국어 교사들의 불평과 반감을 슬그머니 누르며, 역으로 해결책을 국어과에 떠넘겼다.      

  “교육과정 부장님, 정은혜 선생님이 담당하는 5개 반의 교육과정을 2학기로 조정하거나 원격 수업 때라도 비대면으로 콘텐츠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교장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선영에게 물었다. 

  “5개 반만 국어 수업을 2학기로 넘기는 건 교육과정 운영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올해부터는 원격수업에서도 쌍방향 수업 중심으로 가고 있는데, 5개 반만 콘텐츠형으로 운영하는 것도 해당 학급에서 불만이 제기될 수도 있고요.”

  선영의 말에 수긍하면서 다른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을 체감한 국어 교사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다음 주에 학부모 대표들과 다시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학부모님들 분위기를 계속 주시해서 살펴볼 생각이고요. 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교육청 감사과에 징계나 직위 해제를 요청할 생각도 있습니다.” 

  학교장의 입에서 징계와 직위 해제라는 상상하지도 못한 말이 나오자 선영은 깜짝 놀라 교장을 쳐다봤다. 이대로 상황이 지속되면 은혜에게 더 큰일이 닥칠 것만 같았다. 선영은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은혜가 계속 요구해 온대로 정면 돌파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교장 선생님, 징계 요구를 생각하시기보다는 정은혜 선생님이 직접 학부모들과 만나서 대화로 오해를 풀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시는 게 어떨까요?”

  “오해요?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욕설을 하고, 공책을 던져서 학부모들이 화가 많이 나 있어요. 당사자들을 만나게 하는 것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학부모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가라앉을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교장 선생님, 그건 몇몇 아이와 학부모들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선생님의 입장도 고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은혜에게 사실 확인도 안 했으면서 왜곡된 학부모들의 말을 기정사실화하는 교장의 태도에 화가 난 선영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힘들더라도 다들 애써 달라는 교감의 말을 끝으로 마땅한 대책을 모색하지 못한 채 회의가 끝났다. 교사들은 새 교장이 학부모의 눈치만 보며 교사를 전혀 보호하지 않는 관리자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이전 08화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4화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