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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Sep 01.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5화 (2)

5화. 병가 (2)

  긴급 위기관리위원회를 소집한 다음 날, 교장은 은혜를 호출했다. 교장실로 내려가 보니 교감도 있었다. 교감은 은혜의 핼쑥한 얼굴을 보며,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인사치레를 하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교육청에서 연락이 왔는데, 강사나 기간제 채용은 선생님이 결원 시에만 가능하다네요. 국어 선생님들의 보강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고, 정 선생님이 병가를 내야 할 상황이에요. 수업이 돌아가야 하니까...”

  “병가요? 교장 선생님, 언제까지 저를 수업 배제할 생각이세요?”

  은혜는 병가까지 강요하는 교장의 행태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수업 복귀는 아직 때가 아닙니다. 교사 교체를 해달라는 학부모도 있어요. 단 한 명의 학생이나 학부모가 반대하더라도 나는 수업에서 배제할 겁니다.”

 교장은 단호하게 입장을 밝혔다. 학부모회 대표들과만 소통하는 교장은 이미 그들의 요구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실제 은혜가 수업하는 반의 수업 복귀를 원하는 또 다른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은혜는 권 변호사가 수업 복귀 권한을 쥐고 있는 교장과 괜히 날을 세우며 대립하지 말라고 한 조언을 떠올리고 화를 눌렀다.      


  “그럼 얼마 동안 병가를 생각하시나요?”

  “우선 한 두 달 정도로 하고, 그 뒤에 상황을 보고 다시 생각해 봐야겠지요.”

  “제가 병가를 안 내고 계속 출근하면요?”

  “교육청에 감사를 요청해서 선생님을 직위해제 할 생각입니다.”

  “직위해제라니요? 수사가 이제 시작되었고, 아직 수사 개시 통보도 안 왔는데,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겠다고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지, 그 판단은 선생님이 하세요!”      


  교장은 언성까지 높이며 말했다. 교장실에서 나와서 은혜는 한참을 고민했다. 교장과 맞서볼까도 생각했으나 이내 마음을 접었다. 무엇보다 국어과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더 이상 동료 국어 교사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박수현을 통해 1학년 국어과 장영미와 최지혜, 국어 부장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김정희의 불만이 크다는 것도 전해 들었다.      



  퇴근 후 은혜는 몇 달 전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치료를 받았던 한의원을 다시 찾았다. 며칠 동안 추가 진료를 몇 차례 받고 나서야 겨우 의사에게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다음 날, 은혜는 병가 서류가 준비되었다고 교감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잠시 후 교감이 5층 융합부 교무실로 올라왔다. 교감은 융합부 옆의 진로상담실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자며 상담실로 들어갔다. 은혜도 뒤따라 들어가 상담실 테이블에서 교감과 마주 앉았다. 

  “교감 선생님, 진단서입니다. 보강 때문에 고생하시는 국어 선생님들께 너무 죄송해서 딱 한 달만 병가를 내겠습니다. 이후에는 수업 복귀시켜 주세요.”

  은혜는 진단서를 제출하며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한 달짜리 기간제 교사 공고를 내라고 할게요.”

  은혜가 건넨 진단서를 받아 들고 교감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정 부장, 얼굴이 많이 안 좋네.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참...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 정 부장이 얼마나 수업을 열심히 하는지 내가 잘 알지. 작년에 연구부장이 진로 연구학교 계획서 써낼 때 정 부장이 했던 프로젝트 수업 내용 자료 받아서 틀 잡았다는 것도 다 들었거든. 이렇게 유능하고 열심히 수업하는 교사인데...”

  교감이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은혜는 교감을 믿거나 의지할 수는 없었다. 교감은 유약하고 줏대가 없으며 상황에 따라 쉽게 말을 바꾸었다. 특히 근무평가 점수를 쥐고 있는 교장 앞에서는 눈치 보느라 전혀 힘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내가 수업할 때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나는 정 부장처럼 자리에 세워 둔 정도도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더 심하게 혼냈지. 체육복 안 입고 운동장에 나온 아이들 쥐어박고 벌도 주고 했으니까. 그래서 민원이 들어오면 애들한테 미안했다고 사과하고, 학부모에게도 조심하겠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었는데 말이야. 요즘은 법으로 해결하려 하니, 시대가 참 많이 달라진 것 같아.”

  교감은 자신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 미안함을 말로 때우려는 듯 한참 동안 말을 이었다.


  “그러게 뭘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어. 준비물 안 갖고 와도 그냥 못 본 척 넘어가지. 애들도 많은데 독서일지 공책을 뭐 하러 검사해 가지고... 학생인권조례 이후로 교사들이 애들을 지도할 방법이 뭐가 있나. 체벌은 물론이고, 상벌점제도 못하게 했고. 그러니 애들이 잘못해도 못 본 척하는 수밖에 없지. 그리고, 요즘 애들이 뭐, 선생님이 말한다고 해서 듣지도 않고 말이야. 어휴, 내가 답답해서 하는 소리야."

  교감은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건강 잘 챙기라는 인사를 남기고 내려갔다.      

 

  학교에서는 여러 차례의 기간제 공고 끝에 겨우 국어 교사를 뽑았다. 학교 경력이 전혀 없는 4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교직 경력 15년 만에 은혜는 처음으로 한 달 이상의 병가를 내게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동안 일만 하며 달려오느라 주말이나 방학에도 제대로 못 쉬었는데, 이참에 쉬어 간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병가를 앞두고 은혜는 마무리할 일들이 많았다. 수업을 하고 있지는 않아도 맡은 행정업무는 처리해야 했다. 수업친구 전문적 학습 공동체 리더로서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았다. 그동안의 활동 내용과 예산 집행 내역을 정리하여 선영에게 넘겼다.      


  은혜 대신 오는 기간제 교사에게 인수인계를 하는 데도 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노트북에 업무 메신저 깔고 온라인 수업 프로그램 설명해 주고, 교실 배치표를 복사해 주었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참여한 아이들의 관찰 내용을 기록한 학생부 누적 기록까지 출력해 주며, 샘플로 활용하라고 알려주었다. 보강 수업으로 고생한 국어 선생님들한테도 메신저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달했다. 은혜의 병가 소식을 들은 친분이 있는 동료들이 찾아와 인사하고, 힘내라며 응원을 보냈다.      



  병가 첫날, 막상 출근을 안 하니 은혜는 불안했다. 집에 있기도 불편해서 무작정 나왔다. 하염없이 공원을 걸었다. 강아지를 산책하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활기차고 편안해 보였다. 한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교감 이철용이었다.     


  “정 부장, 집인가요? 정 부장 병가 취소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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