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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Aug 26.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4화 (2)

4화. 변호사 선임 (2)

  은혜의 연락을 받고 학생인권 부장 경호는 공강 시간에 5층 진로상담실로 찾아왔다.

  “부장님, 괜찮으세요? 제가 진작에 와서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저도 너무 정신이 없어서요.”

  경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은혜를 쳐다보며 궁금한 점을 얼마든지 물어보라고 했다. 은혜는 최종적으로 몇 명의 사실확인서를 받았냐고 물었다. 6반과 7반에서는 한 명도 없으며, 8반과 9반에 두 명씩, 그리고 10반에 5명, 총 9명의 사실확인서를 받았다고 했다. 목격자 진술서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했던 것 같다고 했다.


  “국어 선생님이 준비물을 안 갖고 온 아이들을 서 있게 했다는 내용이고, 혼낼 때 말투가 무서웠다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근데 9반과 10반에서는 선생님이 욕설을 했다는 내용도 있어요.”

  “욕설 내용은 뭐라고 쓰여 있나요?”

  “미친 새끼, 그딴 것도 못하냐, 거지 같다, 아이 씨, 이런 말이요.”

  “10반에서 떠드는 무리에게 어떤 새끼가 그딴 소리를 하냐고 한마디 했는데, 그렇게 또 과장되었군요. ‘아이 씨’는 내가 아닌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인데...”

  은혜는 거지 같다는 말은 왜 나왔을지 한참을 생각했다. 독서 일지를 낱장에 써 온 아이들에게 공책이 거지같이 이게 뭐냐면서 나무라며 했던 말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부장님, 목격자 진술에는 부장님의 지도가 당연한 것이었고, 욕설은 안 했다고 쓴 아이도 있어요. 오히려 아이들이 준비물을 너무 많이 안 가져왔고 소란했다고 쓰기도 했고요. 근데, 9반에서는 어떤 아이가 180분을 서 있었다, 독서일지 검사하다 공책을 던졌다는 진술을 한 아이가 있네요.”

  은혜는 준비물 없는 아이들을 자기 자리에 세워 두면서 수업에 참여하면 바로 앉으라고 했었다. 그랬기에 아이들마다 서 있었던 시간이 다 달랐다. 준비물 검사 이후에 세워두었으니 전혀 참여하지 않은 아이라 해도 35분 정도 서 있었을 뿐이었다. 블록 수업이라 쉬는 시간 이후 두 번째 진로 독서 수업에도 책이 없는 아이들은 서 있다가 은혜에게 와서 독서 일지 개별지도를 받았었다. 180분이라는 시간은 현실적으로 나올 수가 없는데, 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썼는지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공책을 던졌다는 말은 또 어떻게 나온 말일까. 은혜는 한참을 생각해서야 짐작 가는 상황이 떠올랐다. 9반이 아니라 10반에서 국어 공책이 아닌데 거짓말하고 우기는 아이를 혼내고 나서 공책을 교탁 위로 넘겨주다 공책이 바닥에 떨어진 것이 왜곡된 것 같았다. 바닥에 떨어진 공책을 주우면서 기분이 나빠서 이렇게 와전시킨 걸까.

  “부장님, 이 사실확인서에는 과장과 왜곡이 대부분인데요. 이런 내용이 경찰에 그대로 넘어가지는 않겠지요?”

  “이건 학교장이 조사하라고 지시한 내용이고, 경찰 수사에서는 따로 전수조사를 하지 않을까요? 부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상황이 생기면 연락드릴게요.”  

  경호는 다른 처리할 일이 있다며 내려갔다.      



  주말이 되어 은혜는 전화로 상담받았던 변호사 중에 학교폭력 사안 관련한 경험이 많다는 변호사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서초동의 법률사무소를 찾아갔다. 높은 빌딩의 8, 9층이 모두 법무법인의 사무실이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 끝 쪽의 상담실에서 변호사를 기다렸다.


  잠시 후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변호사가 들어왔다. 185는 훌쩍 넘어 보이는 큰 키에 고급 손목시계와 깔끔한 셔츠 차림으로 세련된 전문직 남성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가벼운 웨이브 머리가 딱딱한 인상을 훨씬 부드러워 보이게 했다.

  “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변호사 권호진입니다. 영훈 선배의 지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안정감 있는 저음의 목소리로 인사하며, 명함을 건넸다. 변호사는 선영의 친구 남편의 후배였다. 은혜는 선영의 친구 남편의 이름이 영훈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그렇다고 답하며 인사했다.     


 테이블에 앉은 권 변호사는 노트북을 펼쳤고, 은혜는 사안 내용을 메모한 수첩을 꺼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고, 은혜는 경찰 수사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절차를 물었다.

  “경찰에서 검찰에 송치하지 않으면 수사가 종결되지만, 만약에 검찰로 송치되면 혐의 없음, 증거 불충분, 기소 유예 중 하나를 받고 끝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검찰에서 끝나지 않고 공판으로 넘어가면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무공판이나 약식 기소로 가면 재판은 안 열리되 벌금형 같은 것을 받고 끝날 수도 있고요. 이런 사안은 제 생각에는 재판까지는 열리지 않을 것 같고요. 물론 경찰 수사에서 끝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아이들 사실확인서가 9장이나 되니 검찰로 송치될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처음 듣는 법률용어들이 외국어만큼이나 낯설게 들렸다. 수사가 진행되면 긴 시간 동안 멀고도 험한 과정을 겪게 된다고 교사노조 담당자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경찰에서는 아이들의 진술을 중심으로 수사를 할 겁니다. 선생님이 실제로 욕설을 하지 않거나 공책을 던진 적이 없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진술에 무게를 두고 판단할 확률이 높아요. 선생님과 한 명의 아이가 아니고, 사실확인서가 9개나 되니까요. 경찰에 출석해서 첫 진술이 아주 중요해서 잘 대비하셔야 합니다. 저 같은 변호인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죠. 경찰 출석 전에 미리 만나서 수사를 대비한 모의 연습을 해야 하고요.”     


  변호사 수임료도 은혜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수사 단계에서 불기소로 끝나는 경우와 검찰에 송치되어서 재판 단계로 넘어가는 경우, 그리고 재판에서 승소하는 경우에 따라 수임료가 몇 백 만원씩 추가되었다. 수수료 10퍼센트를 빼고, 500만 원에서 1200만 원까지 수임료의 차이는 몇 백만 원에 달했다. 권 변호사는 지인 소개이니만큼 100만 원을 깎아 주겠다고 했다.      

  “이 사건은 아동학대 사안인데, 그 뒤에 있는 학부모들과의 다툼이라고 보셔야 해요. 제가 학교폭력 관련 사건을 가해자나 피해자 쪽 모두 처리한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학부모들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중요하죠.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사안의 핵심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분석력과 권 변호사의 자신감 있는 태도에서 믿음이 갔다.


  “학교장이 이번 주 월요일부터 수업 배제를 해서 일주일째 수업을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에 대한 대응은 없을까요?”

  “학교폭력 예방법 제16조를 보면, 학교장이 교사를 포함하여 가해자를, 피해학생 보호를 위한 긴급조치로 분리할 수 있는 조항이 있습니다. 학교장의 재량권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은 학교장과 맞서기보다는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의 예상 대응을 생각해서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무혐의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그건 장담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피해자로 상정할 수 있는 학생 사실확인서가 9개나 되는 것도 염려되고요. 이런 아동학대 사안, 특히 정서적 학대는 그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어요. 똑같은 일을 경찰과 검찰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다 다르거든요. 선생님의 열정적인 교육적 지도로 볼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보면 정서적 학대라고 볼 수도 있죠. ”

  자신감 넘치게 답변하던 권 변호사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제가 무혐의로 종결되면, 상대 학부모를 무고죄로 신고할 수 있나요?”

  “무고죄로 고소할 수는 있지만, 현실성이 없습니다. 신고자가 신고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무고죄가 성립할 수 없어 처벌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아동학대는 신고를 당하면, 힘들게 수사 과정을 겪어야만 하고, 무혐의를 받았다 해도 억울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많이 걱정되시겠지만, 제 경험을 살려 최선을 다해 선생님을 돕겠습니다.”     


  은혜는 수사 단계까지 권 변호사를 선임하기로 하고 계약서를 썼다. 변호사 수임 계약서를 보니 신고를 당하고 경찰 수사에 대응해야 하는 현실이 조금씩 실감이 났다. 신뢰할만한 변호사를 선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복잡하고 지난한 수사 과정과 이후 절차를 생각하니 쉴 새 없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살면서 경찰 수사를 받고,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일이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못했었다. 억울하고 기가 막힌 상황을 생각하니 가슴에 북받치는 울분을 참기가 힘들었다.     


  사무실에서 나와 서초동의 로펌이 즐비한 빌딩거리를 걸으며 은혜는 이모에게 연락하지 않고 변호사를 선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종사촌 동생 지연의 남편이 서초동에서 꽤 큰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대표 변호사이지만, 은혜는 이모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엄마한테도 아직 이번 일을 말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엄마가 알게 될까 변호사들과의 상담 전화도 방문을 닫고 베란다 쪽에서 작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통화했다. 이모가 알게 되면, 엄마와 친척들에게 전해지는 것도 순식간일 터였다. 가뜩이나 잔걱정이 많은 칠십의 노인에게 이런 큰일을 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겪고 있는 마음고생을 가족에게까지 나누고 싶지 않았다. 은혜는 집에 다다르자 도어록을 누르기 전에 거울을 꺼내 얼굴을 살폈다. 아직 눈가가 붉었지만,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현관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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