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향 Sep 09.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6화 (1)

6화. 왜곡 (1)

  “병가 취소요? 교감 선생님! 저 수업 복귀된 건가요?”

  병가를 취소하라는 말에 드디어 수업 복귀가 된 건가 싶어 은혜는 반색하여 물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정 부장 대신 오기로 했던 기간제 선생님이 출근을 안 했어요. 다시 기간제 뽑을 때까지 병가 취소하고, 내일부터 다시 출근해야 해요.” 

  잠시나마 가졌던 일말의 희망이 사라진 듯 은혜는 기운이 쭉 빠져서 힘없이 알겠다고 대답하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카풀하는 영양 선생님의 차에서 국어과 박수현이 황당한 이야기를 전했다. 오기로 한 기간제가 출근 안 한 것에 대해 몇몇 국어 교사가 은혜를 탓한다고 했다. 

  “부장님이 인수인계를 하면서 기분 나쁘게 해서 안 오는 거라고요. 그 기간제가 부장님이 전임자라는 말을 안 해서 두 시간 동안 그냥 있었다고 말했대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업무 마무리하느라 바쁜 상황에서도 오전 내내 인수인계 해 줬어요. 메신저 깔고 온라인 수업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학생부 누적 기록 자료까지 넘겨주었는데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

  “부장님 수업 배제되면서 1학년 국어 선생님들이나 갑자기 국어 교과부장 맡게 된 김정희 샘이 좀 힘들었나 봐요. 기간제 와서 이제 끝났구나, 싶었는데 출근을 안 한다니까 화살을 부장님한테 쏟는 게 아닌가 싶어요.”

  생각지도 않은 말에 은혜는 너무 황당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내가 그 기간제한테 기분 나쁘게 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나요? 업무 인수인계를 한참 하고 나서 국어 수업 관련해서 몇 가지 설명해 주니까, 그제야 선생님이 병가 들어가는 분이셨냐고 묻길래 맞다고 했어요. 두 시간 동안 내가 전임자인 줄 몰랐다는 말이 거기에서 와전된 것 같은데, 정말 너무 어이없네요.”

  은혜는 동료들에게까지 오해를 받는 상황이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사실확인서에 실제 하지도 않은 욕을 하고 공책을 던졌다는 등 사실과 다르게 왜곡했고, 학부모들은 왜곡된 말을 또 과장했다. 그런 왜곡으로 인해 신고당한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겨운데, 이제 동료한테까지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게 되다니 억울하고 괴로웠다. 사람들이 사실 확인도 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잘못된 말들이 당사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끔찍한 채찍질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이틀 만에 다시 출근한 은혜를 진로 부장 미희와 환경 부장 은숙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참에 그냥 복귀시켜 주면 될걸...”

  은숙이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낮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잠시 후 은혜와 작년에 같은 부서에서 계원으로 있었던 2학년 국어과 민유진이 찾아왔다.

  “부장님, 마음 심란하시죠? 박수현 샘한테 출근하셨다는 말 듣고 왔어요.”

   유진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식 있는 머리띠를 해서 그런지 볼록한 유진의 이마가 더 볼륨감 있게 보였다. 은혜는 국어 교사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동료들은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유진 샘, 다른 선생님들은 내 상황을 어떻게들 알고 있어요? 2학년부 교무실은 어때요?”

  “부장님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부장님이 어떤 분 인지도 잘 알고 억울하게 겪고 있는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그 외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각자 맡은 수업에, 업무에, 사고 치는 아이들 상담하는 것만으로도 학교가 너무 바쁘고 정신없으니까요. 그냥 수업 시간에 문제가 있어서 교장 선생님이 수업 배제했다더라, 정도로 알고 있을 거예요. 2학년 부장님도 제가 부장님이랑 친하니까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부장님 입장 곤란하실까 봐 제가 자세하게 말씀 안 드렸어요.” 

  “유진 샘,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샘이 정확하게 사람들한테 말해 주는 게 나한테는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2학년 부장님께도 사실대로 말해도 돼요.”

  “아, 그렇게 생각을 못했어요. 다음부터는 그럴게요. 근데 부장님, 자꾸 부장님을 오해하게 와전시켜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왜요, 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은혜는 두려운 마음을 억누르고 물었다.     

 

  “실은요. 어제 교장 선생님이 국어 샘들을 또 소집했어요. 기간제 샘이 출근 안 해서 다시 보강을 들어가게 된 몇몇 국어 샘들의 불만이 많이 터져 나왔어요. 교장은 자신을 탓할까 봐 부장님을 수업 배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합리화하는데 급급했고요.”

  “교장이 뭐라고 했는데요?”

  “부장님이 엄청나게 아이들을 혼냈고, 욕하고 공책 던졌다고요. 그 워딩만 들으면, 부장님을 모르는 새로 온 선생님들을 정말 아동학대를 한 것처럼 오해할 정도로요. 그래서 학부모들이 강하게 수업 배제를 원해서 어쩔 수 없다고요. 수현 샘이랑 저랑은 그 말 듣는데 너무 화가 나서 그 자리에 있는 게 참 불편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내가 조만간 국어 샘들을 만나야겠네요.”

  은혜는 수업에서 배제가 되면서 급식실에도 내려가지 않고, 5층 교무실에만 머물다가 퇴근했었다. 아동학대 신고까지 당한 것이 수치스러웠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꺼려졌다. 교장실이나 화장실을 갈 때는 수업이 시작된 이후에 움직였다. 5층은 별실이라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적었다. 교직원이 일흔 명가량 되는 큰 학교였고, 교사들은 각자 전쟁 같은 하루를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관련된 사람이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없거나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학교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가십거리로 여기저기 부유했고, 대부분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사실과 동떨어진 말들이 비눗방울처럼 부풀려지다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다. 은혜는 학교의 떠도는 말들을 확인하고 바로잡는 것조차 무서웠다. 은혜에게 직접 묻지 않거나 친분도 없는 교사들에게 먼저 가서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고, 설레발치듯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대해 최소한 국어 교사들의 오해를 풀어야만 했다.

      

  “그리고요, 부장님. 아이들 사이에서도 부장님 얘기가 어떻게 돌고 있는지 걱정되는 면이 있어요.”

  “왜요?”

  “며칠 전에 저희 반 아이 한 명이 수업 시간에 생뚱맞은 소리를 하더라고요.”

  “무슨...?”

  “어떻게 하면 선생님이 잘려요? 이렇게 묻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까 아, 아니에요, 됐어요. 이러더라고요.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은 문제 제기하면 교사를 자를 수도 있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재작년에 1학년 담임이었던 국어과 기간제 교사에 대해 학부모의 불만이 제기되자 당시 학교장 변종학은 담임 교체를 했다. 방학을 고작 한 달가량 앞둔 12월이었다. 1학년 수업을 같이 하던 은혜를 불러 교감은 수업하는 반을 갑자기 바꿔 들어가라고 했다. 그때 담임과 수업 교체를 선두에서 요구하며 학교를 흔들어댔던 학부모가 지금 3학년 학부모 대표인 양미영 씨였다. 그 일로 인해 학부모들은 민원만 올리면 당당하게 갑이 되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이미 터득했다. 양미영 씨는 더욱 위세가 당당했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향진중의 민원은 그 뒤로 두세 배 넘게 늘었고, 말도 안 되는 민원에 시달리는 것은 교사들 몫이었다. 심지어 시험 범위 공지에 학습지가 안 들어갔다는 것을 꼬투리 잡아 도덕 시험을 재시험 보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시험을 망친 아이들이 복도에서 “이번에 사회 시험 망했는데, 재시험 보게 만들어 볼까?”라며 킥킥거리며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학교는 더 이상 교육기관이 아니라 서비스센터로 전락했다.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며 교사와 학교를 꼬투리 잡고 막무가내로 몰아세웠다.     



  은혜는 아이들이 일찍 귀가하는 수요일 7교시에 국어 선생님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여덟 명의 국어 교사들에게 일일이 비타민 음료수와 초콜릿을 건넸다. 

  “선생님들, 한 달가량 보강 수업하시느라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의도치 않게 선생님들께 폐를 끼쳐서 정말 미안합니다.” 

  은혜는 수업 보강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진심으로 전했다.      


  “부장님, 이렇게 모였으니 저희에게 그간의 일들을 우선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은혜의 속마음을 잘 아는 유진이 멍석을 깔아주었다. 은혜는 담담하게 지도했던 내용부터 병가를 내기까지의 상황을 말했다. 수업 복귀 요구와 해당 학부모들과의 자리 마련 요청이 번번이 거절당했고, 아이들도 만날 수 없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새로 오기로 한 기간제와의 업무 인수인계 과정도 상세하게 말해 주었다.      

  “부장님이 겪은 이야기를 들으니 같은 교사로서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네요. 저희는 어떤 상황 설명도 듣지 못하고, 바로 교무부에서 보강하라고 해서 보강했거든요. 떠도는 말만 대충 들은 게 다였어요. 부장님이 수업에 얼마나 열정이 많으신지 제가 익히 알고 있는데요.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면 오히려 다치는 현실이 너무 참담한 마음이에요. 힘드시겠지만, 부디 힘을 내세요.”

  3학년 국어과 서주현이 은혜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했다.

  

  “이게 결코 남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 중 다른 누군가도 정당한 교육활동을 했는데,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신고당하고 수업 배제될 수도 있어요.”

  수현의 말에 일동 숙연해졌다. 불만이 많았던 1학년 장영미와 최지혜, 3학년 김정희도 은혜의 상황을 조금은 이해하는 눈치였다. 

  “무엇보다 부장님 힘드시겠지만 건강 잘 챙기세요.”

유진이 핼쑥한 은혜의 얼굴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말을 보탰다. 은혜는 국어과 선생님과 오해가 풀린 것 같아 안도했다. 아이들이나 학부모들과도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하게 해 주었다면, 상황이 지금처럼 커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은혜는 가슴이 찢어지듯 아려 왔다.

이전 10화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5화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