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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Sep 16.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7화 (1)

7화. 천태만상 사람들 (1)

  1학년 부장 송자영이 은혜에게 먼저 만나자는 연락을 해 왔다. 민원이 들어왔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은혜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3월 말에 전화한 뒤로 처음이었다. 진로상담실로 들어오며 은혜를 대하는 자영의 표정이 전과 다르게 한결 부드러웠다.

  “부장님, 좀 괜찮아요? 변호사 선임했다고 들었어요.”

  작년까지 부장이었던 은혜를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부장이라고 불렀지만, 자영만은 올해 초부터 부장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었다. 오늘은 자영이 은혜를 부장이라 불렀다. 지금까지 은혜 일에 대해 모른 척하다가 갑자기 먼저 연락한 것도 그렇고, 자영이 어떤 속내를 가지고 있는지 몰라 은혜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번 회의 때 보니까, 1학년 학부모 중에 부장님에 대해 온건한 분들도 많아요. 이런 일로 수업을 배제하면, 나중에 아이들이 어떻게 선생님 얼굴을 보겠냐고 나한테 말하는 분도 있었어요. 자기 아이가 사실확인서 썼다고 혹시라도 국어 선생님이 돌아와서 낙인찍거나 보복할까 봐 걱정하는 뉘앙스로 말하는 분도 있었고요.”

  생각지도 못한 '보복'이라는 말에 은혜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보복이요? 내가 아이한테 무슨 보복을 하겠어요?”

  “그러니까요. 무엇보다 3학년 학부모 대표 양미영 씨가 오히려 1학년 학부모들보다 더 난리를 치더라고요. 잘못된 선생님한테는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그 학부모가 재작년에 담임 교체를 주도해서 관철시킨 적도 있잖아요. 1학년 학부모 중에는 9반 대표 최민경 씨가 양미영 씨와 쿵작이 잘 맞아서 큰 목소리를 내고요.”

  3학년 학부모 대표 양미영 씨와 1학년 9반 최민경 씨가 짝짜꿍이 잘 맞고 은혜에 대해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은혜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심드렁한 은혜의 표정을 읽은 자영은 계속 말을 이었다.

  “사실, 1학년 학부모들 간에 알력 싸움이 좀 있어요. 9반 대표와 10반 대표랑 특히요.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수업 복귀를 말하는 학부모 쪽이 그 파워 게임에서 밀린 것 같아요.”

  은혜는 학부모들의 파워 게임에 왜 자신의 수업 복귀가 제물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직감적으로 이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부장님한테 우호적인 학부모도 꽤 있으니까요. 내가 10반 학부모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두 개를 받아서 갖고 있거든요. 읽어보니까 선생님이 아주 열심히 가르치는 좋은 선생님이고, 이번 일도 아이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아껴서 열정적으로 지도하다 불가피하게 생긴 일이라고 쓰셨더라고요. 몇몇 아이들의 얘기만 듣고 수업 배제하는 게 문제가 있다며 아주 장문의 글을 써 주셨어요. 이거 부장님께 바로 보내 드릴게요. 변호사한테 보내서 경찰 수사 때 자료로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자영은 엄청난 치트키를 넘겨주는 것처럼 생색을 냈다. 은혜를 옹호하는 학부모의 메시지를 두 개나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동안 전혀 말해 주지 않은 것에 오히려 화가 치밀었다.      

  “부장님, 한 가지 내가 부탁할 게 있는데요.”

  자영이 야릇한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네? 뭔데요?”

  “내가 이번에 전문직 시험 다시 보잖아요. 부장님도 알다시피 요즘에는 1차 동료 평가 결과가 많이 중요해졌잖아요. 작년에 1차 떨어지고 힘든 맘 겨우 붙잡고 다시 준비했어요. 부장님도 전문직 준비해 봐서 얼마나 힘든지 알죠? 이번이 세 번째 시험이라 나한테 마지막 기회예요. 부장님 지금 힘든 상황이겠지만, 평가 기간에 꼭 잊지 말고 좋은 평가 부탁드려요.”     

  은혜는 결국 전문직 시험의 동료 평가에 대한 부탁 때문에 자영이 온 거였구나 싶어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자영은 다른 사람은 전혀 신경 안 쓰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사람이었다. 작년에 50대 후반의 명퇴를 앞둔 도덕과 선배 교사인 신영숙과 언성을 높이며 싸운 일은 교장 귀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했다. 1학기 시수 분배에서 자영은 전문직 시험공부를 위해 수업 시수가 적은 2학년 수업을 맡겠다고 우겨서 15시간을 맡았다. 선배 교사보다 4시간이나 적은 시수였다. 한 학기 수업을 해보니 2학년 아이들도 드세서 힘들고, 아무래도 평가가 없는 1학년 수업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2학기 수업 분배를 다시 하자고 했다. 자영은 2학기에는 자신이 1학년을 맡겠다고 하면서 시수는 그대로 15시간으로 적게 가져가는 걸로 시수표를 짜와서 영숙에게 들이밀었다. 선배인 신영숙이 어이없어하며 동의하지 않자 자영은 막무가내로 우겼고 갈등이 계속되었으나, 수업계에서 도덕과 시수표가 안 들어와서 시간표를 못 짜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바람에 마음이 약한 영숙이 결국 물러서고 끝이 났다. 자영은 자신이 원하는 학년과 시수를 모두 받아내고, 공강 시간이면 도서관에 가서 전문직 시험공부를 했다.


  은혜 일과 관련해서 1학년 부장인 자영은 학부모나 담임, 교장과 가장 많이 소통하는 사람이었다. 은혜를 생각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학부모들이 어떤지에 대한 정보를 주거나 중간에서 조율하며 은혜의 수업 복귀에 얼마든지 힘을 보태줄 수 있었다. 그동안 어떤 도움이 주지 않고 자기가 필요하니까 찾아와서 권민호한테 받은 학부모 문자를 거래하듯이 넘겨주고 부탁을 하는 자영이 참 일관성 있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님, 방금 보내주신 학부모님 문자요. 이미 제가 민호 샘한테 받은 거였네요.”

  은혜의 말에 자영이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표정을 거두고 말했다.

  “아, 그랬군요. 부장님 병가 들어간 후에 제가 종종 전화해서 상황 알려 드릴게요.”

  자신이 가진 것을 무기로 내세울 줄 아는 자영다운 발상이었다. 은혜는 잊지 않고 평가하겠다고 말하고 자영을 돌려보냈다. 은혜는 10반 학부모가 담임에게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선생님, 아이에게 국어 시간에 있었던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들었습니다. 

  우선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과제 검사 중 아이들을 혼내서 마음 상한 학생들과 어머님들의 마음도 이해되고 잘 치유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어떠한 맥락 없이 단지 과제를 안 해 왔다고 선생님께서 혼내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분명 그런 대화가 오고 갈 만한 상황이 있었다고 예상됩니다. 교사의 부적절한 언행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불성실함과 부적절한 태도에 대한 지도도 꼭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제가 국어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지도 못하고 그 상황을 직접 보지 못하여 딱히 무어라 주장을 할 수 없지만, 주변 3학년 학생을 통해 들어보니 학생 한 명 한 명 지도하시면서 개인별로 일일이 첨삭해 주시는 열정을 가지신 좋은 선생님이시라는 말을 들어 더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이번 일은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을 못 따라와서 발생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지도하였는지 저변에 있는 선생님의 의도도 한 번 생각해 봐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선생님의 지도에 아쉬웠던 점에 대해서만 초점이 맞추어져 진행된다면, 앞으로 우리 반에 들어오시는 다른 과목 선생님 중 어떤 선생님께서 열의를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해 주실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1년 동안 다른 반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열정으로 지도를 받을 다른 학생들이 입을 피해는 어떻게 해결될까 하는 우려가 큽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수가 준비물이나 과제를 해 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그런 학생들의 목소리만 커지는 교실에서 우리 아이가 공부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학생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수업 준비와 과제를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움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안에 대해 학부모 중에 이런 입장이 있다는 것을 학교와 국어 선생님께 꼭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주제넘었지만 조심스럽게 담임 선생님께라도 마음을 전해 봅니다. 선생님들께서 철없는 중학생 아이들 지도하시느라 여러 가지고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장문의 메시지에 담긴 학부모님의 사려 깊은 마음이 은혜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또 다른 메시지의 내용은 짧지만 따뜻했다.      



  선생님, 이번에 국어 시간의 일에 대해 아이들이 국어 선생님한테 너무 한다고 우리 아이가 얘기하면서 분통 터진다며 계속 속상해하네요. 어른으로서 어떻게 얘기를 해야 우리 아이에게 바른 얘기를 해 주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우리 아이 말로는 아이들이 잘못해서 국어 선생님이 혼내신 거고, 그게 심하지도 않았다는데 제가 아이에게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까요. 제가 저희 아파트에 사는 다른 아이에게 전해 들은 바로도 그런 것 같은데요... 이번 일로 인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디 국어 선생님이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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