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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Sep 09.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6화 (2)

6화. 왜곡 (2)

  몇 차례의 재공고를 낸 끝에 겨우 국어과 기간제를 다시 뽑았다. 이번에는 50대 후반의 학교 경력이 전무한 사람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학교에서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5월 둘째 주 월요일부터 기간제가 출근하기로 했다.      


  권 변호사는 진술서를 쓴 아이들의 담임을 만나서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병가를 앞두고 은혜는 여러 교사들을 만나느라 바빴다. 사실확인서를 쓴 아이들이 있는 8, 9, 10반 담임에게 연락하여 공강 시간에 한 명씩 만났다.      


  8반 담임 강수정은 올해 온 26살 신규 교사였다. 담임과 해당 반 아이와 안 좋은 일이 생긴 교과 교사가 만나서 그 일에 대해 말하는 건 서로 불편한 일이었다. 담임들은 원래 친분이 있는 사이라면 적극적인 도움을 주려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관여하지 않았다. 특히 신규라면 경력과 나이 차이가 있는 선배 교사와 그런 대화를 하는 건 더욱 쉽지 않았다. 

  동료 교사와의 이런 만남이 어색하고 불편한 건 은혜도 마찬가지였다. 15년 경력의 중견 교사가 불미스러운 일을 겪는 것만으로도 한참 어린 후배에게 면목이 서지 않았다. 지금까지 후배들에겐 수업이나 업무적으로 도움을 주는 편이었고,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아왔던 은혜에게는 이런 상황이 더욱 민망했다.


  수정이 공강 시간에 진로상담실로 찾아와서 어색하게 인사했다. 시간 내주어 고맙다고 은혜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비타민 음료를 건넸다.

  “다른 게 아니라, 8반에 두 명의 학생이 사실확인서를 쓴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이들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해서요.”

  “둘 다 잘 지내고 있어요. 학교에서 심리 치료나 상담을 원하는 학생을 조사하라고 했을 때도 둘 다 괜찮다고 했고요.”

  “아, 다행이네요. 학부모들은 어때요?”

  “처음에 통화했을 때 수업 시간에 세워둔 것에 대해 약간 속상해했지만, 아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을 인식하고 있었어요. 감정적으로 전혀 격앙되지도 않았고요.”

  “네,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8반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알고 있어요?”

  “다들 국어 수업에 대한 얘기를 따로 하지는 않아요. 어떤 아이들은 왜 국어 샘이 안 나오냐며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도 하고요. 몇몇 아이들은 선생님이 아파서 병가 낸 걸로 알고 있기도 해요. 저희 반 학부모들 중에는 국어 선생님이 다시 복귀해서 수업하길 바란다고 말한 분도 있어요.”

  다행히 8반은 은혜에 대한 반감이 별로 없어 보였다. 은혜는 수정에게 특별한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9반은 처음에 민원이 제기된 반이었다. 반대표 최민경 씨는 학교장과의 학부모 회의에서도 3학년 대표 양미영 씨와 함께 가장 큰 불만을 제기했다고 전해 들었던 터라 은혜는 더욱 신경이 쓰였다. 9반 담임 민현기는 2년 차 과학 교사인데 올해 담임은 처음이었다. 은혜와는 안면만 있을 뿐 특별한 친분은 없었다. 그나마 정보부장 현정이 작년 계원이자 과학과 후배인 현기에게 수시로 연락해서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보고 전해주었다. 


  현기는 학부모 중에 한 명이 좀 감정이 격해서 지도 내용에 대해 불만을 강하게 제기하고, 아이의 심리 치료도 요청했다고 했다. 은혜는 최민경 씨라고 짐작하고 굳이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다른 학부모들의 분위기는 어떤지 물었다. 

  “민원 제기한 학부모 말고는 다들 별다른 말이 없어요. 얼마 전에 학부모 중에 어떤 상황이냐며 파악하려고 물어보신 분 한 분이 있었고요. 아이들은 아주 잘 지내고 있고요.”

  아이들은 잘 있다는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럼에도 왜 자신은 수업에 복귀되지 않는 건지 은혜의 마음이 무너졌다. 아이들을 뭐 어떻게 한다고 이토록 긴 시간 수업 복귀를 안 시켜주는 건지. 아니, 요즘 같이 교사의 말발이 안 먹히는 세상에 뭐 어쩌기나 할 수나 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속이 상했다.   

  


  마지막으로 은혜는 10반 담임 권민호와 만났다. 민호는 뒤늦게 교직에 들어와 경력이 짧은 30대 후반의 중국어 교사였다. 교육과정 부장 홍선영과 같은 교과여서 선영이 가끔 10반 상황을 전해주고 있었다. 민호는 자신의 반에서 사실확인서가 가장 많다고 사람들이 10반을 자꾸 거론하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선생님, 그런데 왜 10반에서 가장 많이 사실확인서가 나왔을까요?”

  “우리 반 애들이 아직 초등학생 티를 못 벗어서 좀 여리고, 무슨 일 있으면 우르르 쏠리고 하거든요. 그때 국어 수업 끝나고 나영이가 서 있었던 거 속상해하며 울어서 다른 아이들까지 분위기가 조금 동요된 것 같아요. 근데 정신적인 치료를 위해 상담이나 심리 치료 원하는 학생도 한 명도 없었어요. 그 일로 인해 따로 연락하거나 어떤 요구를 한 학부모도 없고요. 진짜 심각한 상황이라면 해당 학부모가 당연히 담임에게 전화해서 따지거나 하지 않았겠어요?”     


  “사실확인서 쓴 남자아이들은 잘 지내나요?”

  “솔직히 말해서 그 애들은 아무 생각도 없어요. 자기네들이 피해자라는 인식조차 없다고요. 나는 우리 반이 피해자가 가장 많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흠, 사실 학교장이 담임들에게 회장, 부회장에게 목격자 진술서 받으라고 해서 받았고, 거기에 선생님한테 혼났다고 거론된 애들 불러 모아서 아이들이 함께 사실확인서를 쓴 거잖아요. 제가 봤을 땐 사실확인서를 쓴 우리 반 애들, 그 일로 인한 타격감이 1도 없어요. 아이들이 그거 쓰면서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인식하고 쓴 것도 아니고, 이렇게 수사를 원했던 것도 아니었고요. 아이들은 몰려다니면서 아주 잘 놀고 까불며 아주아주 잘 지내요. 나는 전수 조사도 안 하고, 그 몇몇 애들이 쓴 게 전부인 양 이렇게까지 선생님을 수업에서 배제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담임들 말로는 아이들은 다 괜찮고 아주 잘 지낸다는데, 도대체 학부모들은 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 되었고 힘들어한다는 소리를 하는지 그런 말의 실체가 있기나 한 건지 의아했다.     

 

  “반 아이들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어때요?”

  “우리 반 아이들 중에는 본인들이 잘못했고, 충분히 혼날 상황이었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우리 반 대표 어머니는 수업 배제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왜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하다고 전화하기도 했고요. 학부모 2명이 따로 문자를 보내기도 했어요. 국어 선생님의 지도가 문제가 될 게 전혀 없는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아이가 속상해한다, 교육적으로 불가피한 지도였는데 본질과 초점이 흐려져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으로요. 내가 학년 부장한테 그 내용 보냈는데, 못 받으셨어요?”

  “아뇨, 전혀요. 나한테 직접 보내주지...”

  “학년 부장이 당연히 전할 줄 알았죠. 제가 나중에 보낼게요.”     


  담임들을 다 만나고 나니 은혜는 맥이 탁 풀렸다.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고 있는데, 심지어 국어 선생님이 왜 안 들어오는지 이유조차 모를 정도라는데 왜 수업 배제를 당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부모 대표 몇몇이 아무리 목소리가 크다고 해도 수업 배제를 반대하는 학부모들도 엄연히 있는데, 왜 그들의 의견은 묻히고, 학교장은 한두 명의 학부모의 민원에 쩔쩔매며 교사를 전혀 보호해주지 않는 것일까. 한 달 병가 뒤에는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 언제쯤 이 암흑 같은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는지 답답했다. 터널의 끝이 과연 있는 건지 불안하고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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