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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Aug 18.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3화 (2)

3화. 아동학대 신고 (2)

  교장실에 전화를 받지 않아 은혜는 업무용 메신저로 면담을 요청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 교장실에서 전화가 왔다. 교장은 오늘은 바빠서 만날 시간도 없으며, 오후 4시에 급히 학부모회 학년 대표들과 이번 사안에 대해 회의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민원을 넣은 학부모가 아니라 학부모회 학년 대표들과 회의를 한다고요?”

  해당 학부모가 아닌, 매번 학교를 좌지우지 흔들려고 하는 말 많은 2, 3학년 학부모 대표까지 왜 소집한 것인지, 은혜는 어쩐지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학부모가 직접 선발한 대표성을 가진 학부모회 학년 대표들과 논의하는 게 뭐가 잘못되었나요?”

  교장이 언성을 높여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까지 새어 나왔다.

  “교장 선생님, 저를 언제까지 수업에서 배제시킬 생각이신가요?”

  “수업 배제는 오늘 학부모회의 결정대로 따를 겁니다. 학부모 대표들에게 일단 수업 배제로 교육과정 운영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해서 얘기를 할 생각입니다. 면담은 내일 오전쯤에 합시다.”

  “그럼, 내일 출근하자마자 교장실로 찾아뵙겠습니다.”


  교장의 전화를 끊고, 은혜는 온갖 생각들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학교장이 설마 소속 교사를 나 몰라라 하지는 않겠지, 내일은 수업 복귀가 가능할까, 이번 학교장은 변종학처럼 비열하게 뒤통수치는 사람은 아닐까, 과연 교사를 보호해 줄까. 일단은 교장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 방법 외에는 은혜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퇴근해서 옷만 갈아입은 채 은혜는 집 밖으로 나왔다. 집 근처 공원을 걷고 또 걸었다. 어느새 배드민턴을 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고요해졌다. 은혜는 터덜터덜 힘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늦게까지 뭐 하고 이제 오니? 위험한데 일찍 좀 다녀.”

현관문을 열자마자는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은혜는 알았다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방문을 닫았다. 별거 아닌 일에도 심각하게 생각하여 걱정을 달고 사는 엄마의 염려와 잔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피곤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은혜는 카풀하는 영양 교사 민경은의 차에 올랐다. 국어과 박수현도 조수석에서 뒤돌아보며 인사했다. 수현은 교통사고를 당해 차를 폐차하면서 은혜의 카풀 팀에 올해부터 합류하게 되었다.

  “부장님, 어제 제가 일이 있어 본 교무실 갔다가 홍선영 부장님께 대충 얘기 들었어요. 괜찮으세요?”

  룸미러를 통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경은이 은혜의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아, 그랬군요... 사실은 안 괜찮은 것 같아요. 아직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네요.”


  “부장님, 저도 아침에 경은 샘한테 살짝 들었는데요, 별일 없을 거예요. 부장님이 얼마나 열정적이고 수업에 진심인지는 누구보다 제가 잘 알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현이 뒤돌아 은혜에게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은혜와 수현은 작년에 국어 수업을 같이 하면서 환상의 파트너십을 보여주며 가까워졌다.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시작된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면서 은혜와 수현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서 몇 시간씩 수업 연구를 했다. 각종 온라인 수업 도구와 동영상 편집 기술을 익히며 수업 콘텐츠를 함께 만들었다. 양질의 수업을 위해 밤늦은 시간까지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몸은 피곤했어도 환상의 수업 파트너와 연구하는 과정이 서로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고마워요. 오늘 아침에 교장실 가 보면 알겠죠.”

  다른 날과 달리 차 안에 고요한 공기만 맴돌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정적을 감싸주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가방만 교무실에 놓은 채, 은혜는 교장실로 향했다. 똑똑. 노크를 하고, 크게 숨을 가다듬었다. 들어오세요. 예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교장이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소파에 앉자마자 은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제 학부모회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학부모회에서는 좀 완강한 입장을 보였어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좋지 않네요.”

  “네? 무슨 일이라도...?”

  “어젯밤에 경찰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학부모 한 분이 정은혜 선생님을 아동학대로 신고했습니다.”

  아동학대라는 말에 은혜는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네? 아동학대라고요? 누가 신고를 했나요? 처음에 민원 제기했다는 9반 학부모인가요?”

  “그건 아직 정확하게 모르겠네요.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꽤 오래 진행될 겁니다. 수업 복귀는 아직 이르고, 상황을 좀 지켜보면서 결정할 생각입니다.”     


  교장실에서 나와 은혜는 복도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출근하는 동료들이 은혜를 보고 인사를 했다. 은혜는 황급히 목례하고 사람들이 뜸한 건물 뒤편의 산책로로 향했다. 수업 배제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데, 아동학대 신고까지 당했다는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뉴스에서 본 계모나 계부가 어린아이를 때리거나 방치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 아동학대 사건이 아니었던가. 수업 시간에 목이 쉴 정도로 열심히 개별지도하고 잘못한 아이들을 훈육했을 뿐인데, 그런 엄청난 사건들처럼 아동학대 가해자로 취급받는 것이 두려웠다.      


  은혜는 순간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이 현실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혹시나 수업에 복귀될 수 있을까 작은 기대를 품고 출근했는데,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다니. 나름 인정받는 교사였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아동학대 가해자가 되어 버린 상황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 수사라니, 교장의 말을 떠올리며 은혜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여태껏 속도위반 한 번 외에는 법을 어긴 적도 없었다.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살았다고 은혜는 자부했다. 초임 때 반 아이가 자전거 절도를 했다고 경찰서에서 담임을 호출해서 딱 한 번 경찰서에 갔다. 아이를 데려오며 정말 죄송하다고, 앞으로 잘 지도하겠다고 굽신거리며 인사하고 나왔었다. 이제는 보호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어 경찰서에 가야 하는 건가. 머릿속은 뒤죽박죽 엉켜버렸고,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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