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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Aug 05.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1화 (1)

1화. 새 학기의 시작 (1)

  월요일 아침부터 향진중학교 복도는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며 장난치는 아이들로 인해 들썩들썩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친다. 코로나 때문에 2주씩 원격 수업을 하다 오랜만에 학교에 나와서 그런지 아이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정신없이 온 건물을 헤집고 다녀서 복도를 제대로 걸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중학생은 왜 가만히 걷지를 못하고, 왜 복도에서는 늘 뛰어다닐까. 자신의 위세를 뽐내듯이 복도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댈까. 친구들과는 말이 아닌 몸으로 소통을 할까. 계단을 내려갈 때에는 왜 위험하게 난간에 걸터앉아 썰매 타듯이 내려갈까. 오랫동안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15년 차 경력의 은혜는 향진중에 온 지 3년이 지났어도 중학생들의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나이 차이가 고작 몇 년이라고 이렇게나 다른지, 종교나 이념의 차이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목발과 깁스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며, 중학교 근처에는 분식집보다는 정형외과가 꼭 있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얘들아, 복도에서는 뛰지 말고 좀 걸어 다니자. 그러다 다치겠다.”

  은혜는 발간실에 맡겨 놓은 인쇄물을 찾으러 가려다 복도에서 레이스를 펼치는 아이들을 향해 팔을 내저었다.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소리에 파묻혀 은혜의 목소리는 금세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쌩하니 질주하며 멀어져 갔다. 그럴 줄 알면서도 은혜는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지도했다. 선생님이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여겼다. 어휴, 이런 망아지들을 집중시키느라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들이 얼마나 피를 토하듯 에너지를 쏟아낸단 말인가. 아직 1교시도 시작하기 전부터 은혜는 벌써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개발된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향진중학교는 시골도 도시도 아닌 참 어중간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학교가 있는 개발구역인 향진지구를 둘러싼 주변은 대부분 논밭이나 공장, 산업 단지로 낙후된 시골 마을인데, 그 속에 낯선 섬처럼 향진 1,2 지구가 개발되어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교실에는 제약 단지나 자동차 단지에 출퇴근하는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과 벌이가 변변찮은 가정의 아이들이 섞여 있다. 아파트 베란다로 틈만 나면 학교의 동태를 살피는 학부모들은 미세먼지가 심한데 왜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하느냐, 현충일에 조기를 게양해야 하지 않느냐며 별의별 이유로 시시때때로 교무실로 전화를 한다. 공강 시간에 외부 전화를 잘못 받았다간 한 시간도 넘게 민원을 들어주느라 소중한 한 시간을 날려 보내며 정신도 함께 날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코로나19는 세상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만, 그중에서도 학교 현장의 변화 속도가 단연 으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모범생이 많이 들어와 있는 교사 집단의 역량은 실로 놀라웠다. 그 짧은 시간에 밤이고 주말이고 구분 없이 온라인 수업을 위한 도구 활용 방법, 콘텐츠 제작 등 각종 연수를 열고, 함께 배우고 익혀서 온라인 수업을 거뜬하게 해 냈다. 지난 일 년의 코로나 기간 동안 학교 현장은 거대한 변화의 파도를 숨 가쁘게 헤쳐왔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연배가 높은 교사든지 갓 발령받은 젊은 교사든지 함께 연구하고 협력하여 뛰어난 집단지성을 발휘했다.


  코로나가 이 년째 접어들었지만 확진자 수는 계속 늘어만 갔고, 언제쯤 학교가 일상으로 회복될는지 기약 없이 새 학기를 맞이했다. 3월은 교사들이 가장 정신없이 바쁘고 온 에너지를 쏟아내는 시기였다. 교육청 지침에 따라 3월부터 향진중학교는 2주 온라인 수업, 1주 등교 수업을 병행하는 블렌디드 수업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담임들은 새로운 반 아이들을 직접 만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줌으로 조종례를 하며, 학급 밴드와 단체 메신저 대화방을 통해 안내사항을 전달했다. 수업 시간 외에는 원격수업에 참석하지 않은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연락하느라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 공강 시간의 교무실은 콜센터인지 민원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분주했다. 수업 준비나 업무 처리를 퇴근 이후 집에서 늦은 밤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일 년 넘게 계속되고 있었다.     

  발간실에서 인쇄물을 챙겨 5층 융합교육부 교무실로 들어오니 환경부장 지은숙과 진로부장 신미희가 출근하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은혜가 카트에 실어 온 인쇄물을 보고 환경부장 은숙이 인사를 건넨다.

  “정 부장, 주말 잘 보냈어요? 아침 일찍 발간실 다녀오나 보네. 근데 매번 무슨 프린트물이 이렇게나 많아?”

  은혜는 작년까지 학력평가부장을 맡았다가 올해는 부장 보직을 내려놓고 진로부의 계원으로 있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계속해서 은혜를 ‘부장’으로 불렀다. 호봉제 교직 사회에서 부장이라고 해 봤자 부장 수당 몇만 원 받는 것 외에 별반 다른 게 없지만, 경력이 많거나 부장이었던 교사들을 계속해서 ‘부장’으로 부르는 것을 존대로 여겼다. 

  “두 시간씩 블록 수업으로 하는 프로젝트 활동지라서 양이 많아요. 이것도 한 가지 활동 내용밖에 안 돼요.”

  “정 부장은 그 경력에도 아직까지 수업에 대한 열정이 있어. 교과서대로 가르치면 쉽고 편할 것을,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 기획하고 그 많은 활동지 일일이 만들고, 중학교 아이들인데도 교과세특에 활동 내용을 자세하게 다 기록해 주느라 야근까지 하고 말이야. 정말 인정!”

  환경부장이 쌍 엄지를 치켜들고 웃는다.

  “이렇게 애써서 활동지 만들고 나눠줘도 아이들이 매번 잃어버리고 안 챙겨 와서요. 첫 주 등교 때, 오티 하면서 준비물 안내하고 학습지 나눠주면서 잘 챙기라고 그렇게 강조했는데도 온라인 수업 때 보면 아무것도 없이 앉아 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냥 컴퓨터만 켜 놓고 화면 아래로 게임하는 아이들도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에요.”

  “요즘 애들 그런 거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난 이제 그려려니 해. 그러다 늙어. 그리고 스트레스 받아서 병난다.”

  환경 부장 은숙은 대장암 수술을 받고 휴직했다가 작년 9월에 복직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했고 수술이 잘 돼서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교무 부장을 하면서 관리자한테 치이고, 온갖 민원에 시달리며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병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학교 일에서 손을 털었다. 아이들한테도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며 잔소리해 봤자 관계만 나빠지고, 스트레스받으면 언제 병이 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어지간한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에고, 그러니까요. 우리 딸도 엄마 아빠가 집에 없으니 원격 수업할 때 아주 엉망인 것 같아요.”

  진로 부장 미희도 커피를 타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번 주에 1학년 아이들 등교수업이니까 수업준비물 검사하면서 다시 한번 일러두려고요. 벌써 3월 말인데, 학기 초에 제대로 습관을 형성해 놔야죠. 이번 주 등교수업 때 제대로 일러두지 않으면, 다음 주부터 2주 원격 수업할 때 또 엉망일 테고, 4월 중순이 되어야 또다시 등교수업이니까요.”

  은혜는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에는 아이들의 기본 생활습관 형성에 각별히 신경 쓰며 지도했다. 새로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선생님을 간 본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선생님을 판단하고, 선생님에 대한 태도와 수업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은 더욱 나태해졌다. 

  "정 부장! 그래봤자 다 소용없어. 괜히 입만 아프지."

  환경부장은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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