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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Oct 20. 2021

나도 여유있게 밥 좀 먹자구요

양 껏 먹지 못하는 자의 비애

  외국 여행에서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하는 말 중에 “안녕하세요!” 만큼이나 많이 하는 말은 “빨리, 빨리!”이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급하다. 그래서 한국이 인터넷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배달이나 상품에 대한 AS가 신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에서 바삐 걷고, 무언가에 쫓기듯 정신없이 몰아치는 한국인들의 급한 속성은 식사 시간을 보면, 5G만큼이나 광속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참 한국인의 체질에 벗어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밥을 아주 천천히 먹었다. 그냥 천천히 먹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아주 엄청나게 느리게 먹었다. 디즈니 영화 <주토피아>의 ‘나무늘보’와 비슷하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어렸을 적에 엄마는 아침마다 빨리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천천히 밥을 오물거리는 나에게 늘 꾸지람을 했다. 


  “아이구, 답답해!! 언제까지 그렇게 씹고 있을래? 대체 학교 안 갈 거니?”

  밥을 안 먹었으면 안 먹었지, 일단 먹게 되면 나는 꼭꼽 씹을 수밖에 없는 신체 구조를 갖고 있다. 일단 소화 기능이 좋지 않아서 조금만 급하게 밥을 먹으면 바로 위장이 꼬이고 속에서 난리가 난다. 급히 먹고 나서 더부룩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을 만큼 배가 아파 고생한 적도 많다. 또, 남들보다 목구멍의 크기가 상당히 좁은 것 같다. 알약이 조금만 커도 넘어가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밥을 먹을 때 꼭꼭 씹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 다행히 가장 친한 친구인 정란이와는 밥 먹는 속도까지 비슷했다. 점심 시간에 다른 친구들과 여럿이 밥을 먹으면 정란이와 나는 그 속도를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2교시 쉬는 시간과 3교시 쉬는 시간에 우리는 교실 뒤 사물함 위에서 늘 미리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쉬는 시간 10분씩 두 번에 걸쳐 반 정도 조금 못 미치게 미리 먹고 나면, 점심 시간에 다른 친구들과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같은 시간에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까지는 밥을 늦게 먹는 게 그렇게 불편한 건지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 식사 속도가 다른 사람보다 2~2.5배는 느리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 특히 학교 급식실에서 점심 식사가 단 5분~10분이면 끝나는 학생이나 교사들이 특히 많았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유난히 힘든 시간이 점심 시간이었다. 워낙 느린 속도를 다른 사람과 맞추다 보면 배가 바로 탈이 나게 되고, 내 속도를 유지하다보면 같은 테이블의 동료들이 식사를 마쳤는데 내 식판에는 반 이상이 남아 있었다.


  “천천히 드세요. 괜찮아요.” 웃으며 기다리는 동료가 고맙기보다는 불편했다. “아니에요. 그냥 먼저 가세요. 저는 천천히 먹고 일어날게요.”라고 말해도 쓸데없이 매너가 좋은 동료들은 “우리도 지금 밥 먹고 앉아서 쉬는 거에요. 그러니 신경쓰지 말고 천천히 드세요.”라고 말하며 기어코 앉아 있었다. ‘먼저 가 주는 게 더 고마운데... 앉아 있을 거면 무슨 말이라도 좀 하든가...’ 아무 말없이 밥 먹는 나만 쳐다보고 있는 그들의 눈빛은 ‘도대체 언제까지 먹나 두고 보자’라는 무언의 암시로만 보였다. 


  할 수 없이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아니, 왜 그것 밖에 안 먹어요. 더 먹지.”라고 속에 없는 말을 친절하게 잘도 한다. “아니에요. 다 먹었어요. 배 불러요.” 이렇게 먹다 말고 일어나면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서 어지러울 정도로 기력이 없다.     


  내 식사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하기까지는 한 학기 정도의 시간이 걸리곤 했다. 예전에는 교사수가 100여명이 되는 규모가 큰 인문계 고등학교에 주로 근무했는데, 그러다보니 일 년이 되어도 같은 교무실이 아니거나 같은 교과가 아니면 서로를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심지어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11월에 수능 감독의 정감독과 부감독으로 처음 얼굴을 마주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사람들을 알고 나면, 이제 내가 얼마나 느린지 잘 알기에 “샘, 저 조금 있다 학생 상담하기로 해서요. 죄송한데 먼저 일어날게요.”라고 바쁜 일거리를 핑계삼아 일어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오히려 그게 나에겐 더 편했다.

 “그래요. 얼른 일어나세요. 저는 혼자 먹는 게 더 편해요.” 


  많은 교사들이 4교시 공강을 좋아한다. 나에게는 다른 누구보다 더 4교시 공강이 중요했다. 4교시 수업이 없어야 4교시 때부터 일찍 식사를 시작해야 점심시간까지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에 근무한 특성화 고등학교는 참 좋았다. 내 교과 시간이 많지 않아 4교시 공강을 주 3회는 확보할 수 있었다. 또 소규모 학교이다보니 교사수도 학생수도 적어 동료들이나 아이들과도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 식사 속도에 대해서도 다른 곳에 비해 빨리들 알아차리고 일어나며 말한다.

  “천천히 먹고 와요. 운동장 산책하고 있을테니까.”

  “네, 다 먹고 바로 따라 갈게요.”     


  어떤 때에는 4교시에 같이 먹었던 동료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간 후 점심 시간에 식판을 들고 동료들이 자연스럽게 내 테이블에 앉는다. “다들 먹고 산책 간 거죠. 남은 양을 보니까 우리랑 얼추 딱 맞겠네.” 그렇게 4교시 공강 때 식사를 시작하면 점심 시간에 온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나가 산책하곤 했다. 


  때로는, 저녁 식사 시간에 다들 일어나고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어느 새 아이들이 맞은 편 의자로 다가온다.

  “선생님, 아직 식사하고 계시네요. 저희가 여기 앉아 있을게요.”

  “괜찮아. 샘은 혼자서 잘 먹으니까 나가서 놀아.”

  “아니에요. 샘한테 할 얘기 많아서 앉아 있는 거에요.”     

  앞에 앉아서 수업 시간에 있었던 얘기며, 속상한 얘기를 늘어놓으며 귀여운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중학교여서 주당 20시간 수업이기에 4교시 공강은 주 1회~2회 정도에 불과하다. 또 학교가 커서 교사와 학생수도 많은데, 같은 급식실에서 밥을 먹다보면 밥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모르겠다는 말을 제대로 실감하게 된다. 4교시 공강일 경우 그 시간 안에 최대한 천천히 먹고 일어나야지, 점심 시간에 전쟁통 같은 급식실에서 느지막이 밥을 먹기는 불가능했다. 


  그나마 같은 테이블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말하지 않고 밥 먹는데만 집중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 시끄러운 급식실에서도 가까운 테이블에서의 고요함은 어찌나 크게 느껴지는지, 두드러기가 날 만큼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그걸 못 참고 내가 어떤 화제를 꺼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면, 말을 많이 한만큼 비례해서 내 식판에 먹지 못한 채 식어가는 음식은 늘어만 간다.      

  

  학교 안에서만이 아니다. 회식을 할 때는 더 불리하다. 회식의 주 메뉴는 고기이다. 여럿이 나눠먹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나는 혼자서 소리없는 전쟁을 치러야만 한다. 워낙 씹는 속도가 느리고 오래 씹다보니 남들이 고기 서너 점을 먹을 때 나는 겨우 한 점을 먹는다. 남들은 재빨리 다 먹고 배부르다며 배를 쓰다듬을 때마다 나는 아직 반도 못 먹은 내 양을 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계속 입을 오물거리며 씹고 있는 나를 보면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아니, 아까부터 계속 쉬지 않고 씹고 있는데 신기하네요.”

  그들이 다 먹고 얼마 남지 않은 고기가 부족해서 고기 추가를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다. “샘, 생각보다 아주 잘 드시네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내뱉는다. ‘참 나...고기는 니들이 다 먹었다구요. 난 당신들의 1/3도 못 먹었다구요.’ 하지만 겨우 이렇게 말할 뿐이다. 

  “제가 남들만큼 먹는데, 속도가 느려서 잘 못 먹었어요.”     


  회식을 냉면이나 비빔밥, 순두부 같은 한 그릇 음식을 먹으면 참 좋겠다. 전에 단체로 일본에 연수를 간 적이 있었는데, 일본은 밥과 반찬, 국 등이 모두 각자의 쟁반에 개별적으로 나와서 그 점은 참 좋았다. 사람들은 똑같은 양이 나오는 한 그릇 음식을 먹을 때에서야 비로소 내 속도가 그들의 1/3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제서야 나를 이해한다. "샘, 정말 천천히 먹네요. 이 정도인지 몰랐어요." 내가 그렇게 수도 없이 말했는데, 계속 씹고 있는 내가 생긴 것보다 밥을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 나라도 유럽처럼 식사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 유럽 여행에서 2시간씩 천천히 대화하며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전생이 있다면 나는 유럽의 왕족이지 않았을까, 이대로 돌아가지 말고 유럽에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했다. 그게 아니면, 우리 나라의 음식 문화도 나눠 먹는 게 아니라 1인용으로 셋팅되어 나오는 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개별 음식 셋팅이 코로나 시국에도 방역에도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독특한 점은 한국 여성들은 식당에 가서 개별 음식임에도 여러 개를 시켜서 꼭 나눠 먹으려고 한다. 

  “우리 피자 1개, 리조또 1개, 파스타 1개, 샐러드 1개 시켜서 골고루 나눠 먹을까요?”

  “그냥 각자 자기 먹고 싶은 거 시켜 먹어요. 난 크림 파스타 먹고 싶어요.”

  “그럼 파스타는 크림 파스타로 시켜요.”


  결국 이렇게 주문해서 먹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크림 파스타를 포크로 두 번 갖고 오는 사이에 접시는 비어져 있다. 내 팔이 닿지 않는 곳에 놓여진 리조또나 샐러드는 겨우 한 번 떠 먹을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피자는 멀리 있어도 한 조각은 사수할 수 있다. 이렇게 먹고나면 나만 늘 배가 고프다. 내 속도 모르고 "넘 맛있게 잘 먹었어요. 아휴 배불러라."라고 만족한 얼굴로 포크를 내려 놓는 사람의 손등을 찰싹 때리고 싶은 적도 있다.


  그냥 자기 음식은 자기가 시켜서 각자 먹으면 안 되나. 왜 각자 먹고 싶은 거 시키자고 하는 것을 특이한 사람으로 취급하는지, 내 기준에서는 그들이 더 특이하다. 여러 개를 골고루 맛보는 것도 좋지만, 그냥 밥은 각자 자기 것 먹읍시다. 나도 좀 내 밥 사수하느라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내 속도로 양 껏 먹으며 즐기고 싶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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