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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May 23. 2022

우리들의 작은 냄비

저마다 가지고 있는 냄비를 어떻게 안고 살아갈까.

  그림책 '아나톨의 작은 냄비'(이자벨 카리에 글)의 주인공 아나톨은 작은 냄비를 달그락달그락 끌고 다닌다. 냄비 때문에 아나톨은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없다. 아나톨은 상냥하고 그림도 잘 그리리고 잘 하는 게아주 많은 아이지만, 사람들은 아나톨의 냄비를 자꾸만 쳐다본다. 냄비 때문에 자꾸 걸려서 앞으로 가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생각대로 되지 않아 아나톨은 화를 내고 나쁜 말을 하기도 한다. 작은 냄비 때문에 아나톨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결국 숨어버리기로 한다. 그런 아나톨을 알아보고 말을 건네는 한 사람. 그 사람은 아나톨이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냄비를 넣을 수 있는 가방도 만들어 준다. 덕분에 아나톨의 냄비는 잘 보이지도 않고, 어디에 걸리지도 않아서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도 있다. 이제 아나톨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나톨은 예전과 똑같은 아나톨이다. 


  작가의 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냄비에는 원래 물이나 수프, 강낭콩을 넣습니다. 때로는 냄비에 꽂을 꽂을 수도 있고, 냄비 위에 걸터 앉거나 냄비를 모자처럼 머리에 쓸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제 이야기에 등장하는 냄비에는 수프도 강낭콩도 담기지 않았습니다. 냄비 안에는 그보다 훨씬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들어 있지요. 냄비가 워낙 크다 보니 사람들 눈에는 냄비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나톨은 많이 힘듭니다.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냄비가 있습니다. 큰 냄비, 작은 냄비, 거추장스러운 냄비... 어쩌면 우리도 그런 냄비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아나톨처럼 작은 냄비 하나쯤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달그락거리는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 불편함을 감내하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며 저마다 힘겨운 과정을 겪어 낸다. 냄비에 꼭 맞는 예쁜 가방을 만들어 걸리적거리지 않게 갖고 다닐 수 있게 되기까지 많은 일들을 헤쳐내야 하고, 그 과정 속에서 많이 깨지고 또 성장했으리라. 그리고, 냄비를 대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을 마주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아나톨의 냄비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아나톨이 냄비와 함께 잘 살아가도록 먼저 다가가고 도와 주는 한 사람이다. 그 역시 작은 냄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나톨의 냄비를 보며, "나도 있다. 네 것이 조금 더 크구나."라고 말을 건넸다. 그 또한 갖고 있는 냄비를 보고 아나톨은 별다른 거부감없이 그와 대화하고 그가 이끄는대로 함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면에서 내가 가진 상처나 결핍은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고 공감하게 하는 가장 좋은 무기가 된다.


  그는 아나톨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아나톨이 무엇을 잘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냄비가 걸리적 거리지 않도록 가방을 만들어주어 아나톨이 냄비를 가지고도 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덕분에 아나톨은 불편함없이 사람들과 즐겁게 지낼수 있게 되었다. 그는 소위 말하는 찐어른이다.  


  내 달그락 거리는 냄비를 가지고 살아가기에도 때로는 벅차지만, 냄비를 끌고 힘겹게 걸어가는 또다른 아나톨들에게 그와 같이 현명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고 싶다. 각자의 냄비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냄비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각자가 가진 재능을 알아봐주며 냄비와 더불어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조력하는 사람. 상대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높여 주어 진가를 발휘하도록 돕는 역할을 잘 하고 싶다. 


  한편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냄비를 그려보았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우며 아름다운 냄비. 하지만 뚜껑이 없다. 멋진 냄비인데 무언가가 살짝 부족하다. 왜 뚜껑이 없는지, 그 뚜껑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나의 냄비에 이름을 붙여준다면, 그냥 '뚜껑없는 냄비'가 아닌, "다용도 뚜껑없는 냄비"로 짓고 싶다. 뚜껑이 없기에 냄비로 쓰기에 무언가 부족한 듯 했지만, 오히려 뚜껑이 없어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무늬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냄비에 예쁜 꽃을 꽃꽂이하여 식탁 한 가운데 둘 수도 있다. 갖은 채소와 과일을 담은 샐러드 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뚜껑이 없어서 오히려 더 편하게 다용도로 쓸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다.


이자벨 카리에 지음, <아나톨의 작은 냄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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