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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Oct 27. 2021

난 왜 여행에서도 바쁜걸까

분주한 여행의 시간

 여행을 할 때 주로 혼자 여행하는 편이다. 사실 같이 여행갈 친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혼자가는 것 뿐인데, 사람들은 혼자 여행다니는 것을 썩 멋있다고 여기는 듯 하다. "우와, 멋지다! 혼자 여행다니는 거 대단해요!" 이런 말을 듣는 게 참 겸연쩍다. 나이가 들면 이상하게도 점점 친구가 줄어든다. 특히 시간을 맞춰 여행을 함께 할 친구들은 더 없어진다.


  서른이 넘고 주변 친구나 지인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보면 싱글인 나와는 대화의 주제도 관심사도 멀어지니 만남도 전화도 자연스럽게 뜸해진다. 여행을 함께 한다는 건 시간이 일단 맞아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행 스타일이나 성향도 중요하다. 내 주변 지인들 중에서 시간과 성향이 맞아 함께 여행할 사람을 찾기는 점점 힘들었다. 여행은 가고 싶고, 같이 갈 사람은 없으니 혼자 갔던 것 뿐인데. 오죽하면 ‘하나님, 저도 여행 친구가 생기게 해 주세요!’ 기도까지 했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패키지 여행을 가세요. 내가 아는 사람은 패키지에서 혼자 오는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즐겁게 여행했대요. 방도 같이 써서 싱글 차지도 안 내구요.”


  그 말을 듣고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패키지 예약을 걸어 놓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가족이나 친구들 단체 여행이었다. 혼자 패키지 여행을 오는 경우는 아주아주 드물었다.

  무엇보다 나는 패키지 여행을 선호하지 않는다. 단체 수학여행처럼 하루에 여러 곳을 찍고 움직여서 나중에 사진을 찾아보지 않으면 대체 어디를 갔는지 지명조차 기억나지 않는 여행은 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물론 패키지 여행의 장점은 혹할만큼 많다. 자유여행에 비해 가격이 오히려 싸고 기본 이상의 깔끔한 숙소에서 묶으며 안전하고 편안하다. 하지만, 나는 이동할 때마다 불편하고 힘들며 가격도 비싸고, 숙소시설이 떨어지더라도 자유여행을 통해 느끼고 기억되는 여행 경험이 더 좋다.      

   


  유럽 여행을 다닐 때 유명한 여행사이트에서 동행을 구해서 같이 다닌 적도 있다. 어떤 동행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즐거운 하루 여행이 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낯선 사람과의 여행은 함께해서 든든함보다는 불편함과 어색함이 더 컸기에 이제는 그냥 혼자만의 여행을 택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여행지에서 헤매지 않고, 위험에 노출되지 말아야 하며, 힘든 상황을 미리 차단해야만 했다. 여행지에서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키고 보호하는 방법은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조사하고 계획하는 것이었다.


  여행을 가게 되면, 시간이 허락되는 한 최대한 장기간의 여행을 준비한다. 그러다보니 도시와 도시의 잦은 이동을 위해 교통수단과 이동 경로를 미리 확인해야 하고, 최적의 위치에 적당한 시설과 가격의 숙소를 예약해야 했다. 도시마다 꼭 가야하는 대표적인 관광지나 미술관, 맛집을 조사하고 이동거리를 확인하며 여행 루트를 계획했다.


  밤에 새로운 도시에 혼자도착하고나서 커다랗고 무거운 슈트케이스를 이끌고, 낯선 곳에서 숙소를 찾는 것이 가장 고역이다. 한 번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나와 숙소를 찾는데 방향이 헷갈려서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역에서 가까운 거리의 숙소였기에 당연히 걸어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이삼십 분째 헤매다보니 화도 나고 짜증도 밀려와서 택시를 탔다. 택기 기사는 숙소 주소를 보더니 짐을 실을 생각도 안 하고 뭐라뭐라고 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왜 안 가냐고 얼른 가자고 하니까 그제서야 또 뭐라뭐라 하더니 할 수 없다는 듯 양 손을 들어 올리더니 타라고 했다. 막상 택시에 타서 숙소로 가보니 차로 1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그래서 택시 기사는 처음에 안 태웠던 것이었는데 말이 안 통하니 택시비만 고스란히 버렸다.      


  혼자서 낯선 곳에서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중압감이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늘 내면을 압도한다. 그렇기에 여행을 떠나기 두세 달 전부터 철저히 준비를 한다. 내 여행 계획표를 본 지인들은 많이들 놀란다.

  “우와! 이건 무슨 여행사 스케줄 표보다 훨씬 더 자세하고 구체적이네요.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이렇게 계획을 짤 수 있어요?”

  “가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거에요.”     


  사람들이 감탄할 만큼 날짜별로 여행코스와 숙소, 매끼 식사 장소, 이동 경로, 꿀팁 정보 등을 빽빽히 적은 스케줄 표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여행을 위해 미리 가이드북을 최소 두 세권 정도 탐독한다. 해당 지역의 대표적인 여행사이트나 카페에 가입하여 수시로 정보를 확인한다. 카페 정회원이 되기 위해 출석과 게시글 작성, 댓글 수를 채우는 것은 기본이다.   

   

  수많은 블로거들이 정성들여 제공하고 있는 여행 정보와 꿀팁들을 샅샅이 읽고 중요한 내용은 따로 메모해 둔다. 해당 지역의 낯선 지명과 장소가 익숙해질 만큼 찾고 또 조사한 끝에 드디어 여행 계획이 완성되는 것이다. 여행 정보를 제공해 주는 수많은 블로거에게 감탄과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예를 들어 야경이 아름다운 곳을 대중교통으로 갈 때 어느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몇 번 출구로 나가고, 어느 건물을 지나 몇 미터 걷다가 우회전을 하는지까지 상세하게 사진과 함께 안내한다. 책에 알려진 장소보다 더 야경이 아름답고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까지 인심 좋게 알려준다. 그들 덕에 공간지각 능력도 떨어지고, 언어소통도 유창하지 않은 내가 낯선 여행지를 활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여행을 준비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면, 여행지에서는 맘껏 누리고 즐기면 좋으련만 나는 또 그게 잘 안된다. 여행지에 가서도 하루 종일 다니고 나서 밤에는 일찍 푹 쉬어야 하는데, 다음 날 여행에 대해 다시 점검하고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를 검색하느라 침대에 누워서도 바로 잠들지 못한다.


  한 번은 유럽 여행 중에 기차를 타고 나라 간 이동을 하는데, 그 두 시간 내내 다음 도시에서의 여행 계획을 점검하느라 가이드북만 몰두해서 봤다. 도착하기 전 10여분 전이 되어서야 창밖을 내다보는데, 어찌나 풍경이 아름다운지... 왜 이토록 멋진 풍경을 하나도 즐기지 못하고 기차에서 내릴 때가 되어서야 보고 있는지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회의감이 밀려왔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만끽하지 못하는 게 정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계속 그렇게 미래만을 준비한다면 과연 나는 언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인생을 대하는 나의 삶의 자세까지 탓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지 정말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런 위로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꼼꼼하고 철저하니까 실수가 없잖아요.” 과연 그런가. 나는 실수 투성이고, 지나고 나서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왜 그렇게 했을까 후회하는 일도 참 많다. 이렇게까지 계획하고 준비하는데도 막상 현장에서는 계획과 다르게 진행되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이마저 생각해 두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때도 있다.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여행하는 사람들의 대담함과 배짱이 부럽기도 하다.


  “그냥 첫 여행지 숙소만 예약하고 왔어요. 며칠 지내면서 어디를 갈지 생각하려구요.”

  이렇게 말하면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 챙겨먹고 9시 관광지의 오픈 시간에 맞춰 급하게 출발하는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 여행지에서 다시 점검하는 시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획한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때로는 식사도 거른 채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인 시간들... 나의 여행은 늘 이렇게 분주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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