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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Mar 02. 2024

겨울우울

윈터링(wintering)

나에게는 저울이 2개가 있다. 

체중계(体重計)와 심중계(心重計)

저울들은 겨울이 되면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나의 우울은 겨울에 유독 살이 쪘다.


몸과 마음에 살이 찌는 원인이 계절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똑똑하게 우울하며 공부한 덕이었다. 우울증은 계절의 흐름을 타기도 한다. 특히 겨울철 우울은 흔하다고 한다. 겨울에 무기력과 우울감이 나타나고 증상이 악화되었다가 봄과 여름이 되면 증상이 나아진다. 

정신과적 전문 용어로는 계절성 정동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고 한다. 


자주 흐리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나라에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내 우울이 계절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세차게 흔들리지도 못했다. 크리스마스트리 끝에 달린 오너먼트처럼 힘없이 너울거렸다. 


겨울에는 일조량은 줄어들고 일조시간은 짧아진다. 모자라는 햇빛만큼 우울은 다른 곳에서 빛을 얻으려 든다. 에너지를 앗아가 무기력하게 만든다. 

무력해진 나는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불이 온몸을 짓눌렀다. 우울은 내 손목과 발목에 족쇄를 걸었고 그런 나를 이불은 1kg도 채 안 되는 무게로 나를 압도했다. 나는 그 가벼운 이불이 무거워서 걷어내질 못 해서 편히 깊이 잘 수 도 없는데 계속 자야만 했다. 

마음은 늘 텅 비었다. 마음의 허기는 몸을 허기지게 했다. 나는 먹어야 했다. 많이 먹고 단 음식과 당분을 찾았다. 쏟아 넣고 욱여넣었다. 먹고 늘어질 수 있을 때까지 늘어졌다. 그렇게 마음과 몸에 군살이 붙어 갔다.  


겨울우울 중 기온이 가장 낮은 시간은 새벽 6시였다. 노루꼬리만큼씩 짧아진 해는 아침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신규 간호사였던 시절 다녔던 병원의 데이 업무 시간은 7시부터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새벽 6시에는 버스를 탔어야 했다. 


나를 숨 막히게 했던 건 새벽의 칠흑색이 아니라 아침에 가까워 오는 오렌지색과 밤의 칠흑이 섞인 다크 오렌지 선라이즈색이었다. 

동트기 전,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오는 태양의 색, 다크 오렌지 선라이즈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색. 


나는 이 색을 볼 때마다 뒤틀렸다. 살 것 같으면서도 죽을 것 같았다. 나의 겨울우울은 가혹했다.

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겨울을 사랑했다. 겨울을 사랑해서 겨울우울도 사랑해야 했다. 기왕이면 우아하게 월동(越冬)이 아니라 윈터링(wintering)을 하기로 했다.

윈터링(wintering): 
- 동물이나 식물 등이 겨울을 견디고 나는 일
- 겨울나기, 월동
‘윈터링’이란 추운 계절을 살아내는 것이다. 
겨울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거부당하거나,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발전하는데 실패하거나,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생의 휴한기이다.
캐서린 메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중 

나의 윈터링은 지치면 쉬기, 늘어지면 겨울잠을 자기, 다이어트는 잊기, 군살이 붙어도 상관없으니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 맛있는 음식 듬뿍 먹기, 책 읽기였다. 그렇게 겨우내 봄에 쓸 에너지를 비축하고 분주하지 않게 수선스럽지 않게 느슨하게 천천히 겨울을 넘지 않고(월동의 월은 넘을 월이다) 겨울을 지나 보기로 했다. 넘어야 하면 힘이 드니까 힘을 들이지 않고 그저 지나도록 두는 것이다. 겨울이 지나가게 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이 보였다.

이 예뻤다.


기분 탓인가 싶어서 찾아보니 겨울밤은 이 가장 밝게 보이는 계절이라고 한다. 공기가 맑아서는 아니지만 계절상 1 등성 이상의 밝은 별 중 절반을 겨울에 볼 만큼 밝은 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 별자리들이 유난히 화려하게 보인다고 한다. 

겨울우울이 ‘을 올려 보는 시간’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 


올려 보는 시간, 낯선 목소리가 낮게 내려와 앉았다.  

목은 뻐근하지 않아? 
눈은 무겁지 않고? 
별, 잘 보이니?

그 목소리는 그 공기였다. 너 말고 여기 아무도 없다던 그 공기. 다정하기 그지없어 잠시 낯설었을 뿐이었다.

다정한 목소리에 무너졌다. 울음이 났다. 주저앉았다. 악을 쓰며 원망을 토해냈다.


어떻게 이래? 
이제 와서 왜 이래? 
그땐 나한테 대체 왜 그랬어?

목소리는 없었다. '메아리'였다. 벽에 부딪친 울부짖음이 돌아온 것뿐이었다.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아 몰랐을 뿐 그 목소리는 ‘나’였다. 너 말고 여기 아무도 없다며 넌 혼자라며 나를 외롭게 했던 것도 나를 버려둔 것도 '나'였다. 언제나 여기에는 나 말고도 있었고 난 혼자가 아니었다. 언제나 여기에는 나 말고도 있고 난 혼자가 아니다. 그때도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함께 나의 겨울을 넘어주었고 지금도 나의 윈터링에 그들은 함께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를 더 이상 외롭게 하지도 버려두지도 않는다. 


저울들이 왼쪽으로 움직인다. 봄이 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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