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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Mar 09. 2024

수용성(水溶性) 우울

우울도 물에 지워지나요?

OO님, 양치질도 안 하시고
옷도 며칠 째 똑같은 옷만 입고 계세요.
셀프케어 전혀 안 되시고.. 

셀프케어(selfcare)
- 개인위생, 자기 돌봄을 뜻하는 말
- 타인의 도움 없이 목욕, 식사하기, 화장실 이용, 옷 입기의 네 가지 영역에서 주요한 간호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기본 간호학 시간에나 듣던 이 의학 용어를 이렇게 많이 들을 줄이야. 셀프케어는 정신과 병동 인계 시간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환자만 바꾸어 등장하는 단골 용어이다. 정신과에서는 ‘셀프케어’를 우울의 척도로 쓰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울을 겪는 내 환자들을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우울이 입을 벌리기 시작하면 매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세수’가 할 수 없어졌다. ‘세수’는 고수하고 눈곱도 못 뗀다. ‘빗질’은 사치가 되고 ‘샤워’는 꿈도 못 꾼다. 그리고 마침내 우울에 집어삼켜지면 침대에서 볼일을 보는 일도 생긴다. 침대 시트 아래로 흐르는 건 오물이 아니었다. 우울이었다.


내 우울 역시 지독했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타고난 강박증에 결벽증에 간호사라는 직업까지 더해져 병적으로 오염과 감염에 집착하니 셀프케어는 되는 우울이었다.


그러나 나의 우울은 다른 쪽으로 집요했다. 나의 우울은 겉으로는 우아했다. 우울함에도 나는 늘 단정했고 때론 아름다웠다. 나의 우울은 내게 셀프케어는 허락했지만 생각이 나를 쫓도록 만들었다. 나는 나의 쓸모와 가치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도망 다녔지만 매번 붙잡였고 우울의 지배 하에 있는 그 생각들은 내 귓가에 앉아 '너는 쓸모없어, 가치 없어'라며 속삭였다. 비겁하게도 큰 소리도 아닌 작은 소리로. 다른 이들은 들을 수도 없게 내게만 들리는 작은 소리로 속삭여 누구도 나를 도울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를 철저히 흩트려 놓고 집중력을 잃게 하더니 사랑하는 글을 뺏어갔다. 단어들이 무거웠다. 글을 들어낼 수 없어 읽을 수 없게 됐다. 그리고 나의 문장들은 질서를 잃어 갔다. 마침내 글을 쓸 수가 없게 된 순간 나는 절망했고 좌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주저앉아 그 생각들을 하는 것뿐이었고 그 생각의 끝엔 죽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살고 싶어서 요가를 했다. 요가를 하는 순간만큼은 생각에게 잡히지 않았다. 일부러 딴생각을 하면 넘어지고 쓰러지는 한 발로 균형을 잡는 동작이나 머리 서기 같은 자세를 연습했다. 그렇게 몸이 균형을 잡고 버티면 땀이 났다. 땀이 찝찝해 요가가 끝나면 곧장 따뜻한 물에 샤워를 했다. 따뜻한 온도와 자박자박한 물소리에 흐르는 것은 땀이 아니었다. 우울이었다. 그렇게 땀을 물에 흘려보내고 나면 어느새 마음은 산뜻해져 보송해져 있었다. 우울이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우울은 내게 생각을 주고 감정을 훔쳐갔다. 나의 감정은 불안정하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지만 그 안에는 센스와 센서빌리티가 있었다. 나는 나의 그 감정들을 사랑했다. 그 감정들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나는 늘 삶의 장면들에 시처럼 서 있었다. 하지만 나의 센서들이 꺼지기 시작했다. 나는 좋아도 좋지 않고 싫어도 싫지 않고 기뻐도 기쁘지 않고 슬퍼도 슬프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울지 않게 된 나를 울린 건 두 귀신들이었다. 우울 귀신과 수마(睡魔).

밤에 자지 못하면 낮에 수마(睡魔)가 몰려든다. 수마(睡魔)가 등장할 때 불어오는 바람에 고개가 떨어지고 일순(一瞬) 정신을 잃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안압이 올라 눈 주변이 아프고 눈두덩이는 무겁고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특히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과 잠을 못 자고 일찍 일어난 날은 더 고통스러웠다. 밤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으로 우울 귀신과 싸웠고 낮에 잠을 뿌려대는 수마(睡魔)와 실랑이를 했다.

슬퍼서가 아니라 지쳐서 울었다. 침대로 찾아오는 적막에 몸을 숨긴 우울 귀신의 지독한 괴롭힘에 탈진했다. 보드랍고 부드러운 베갯잇 사이로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니었다. 우울이었다. 그렇게 울고 나면 나도 모르게 잠들어 있었고 베갯잇은 말라 있었다. 우울이 옅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떤 우울은 물의 모양이 된다. 

땀이 되거나 눈물이 되거나.

어떤 우울은 수용성이라 물에 지워진다.

지금 내 우울이 어떤 물질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 지금 내 우울이 물감이라면 

이 우울과 함께하는 삶의 장면들은 

수채화일 것이다. 

조금 어두운 색이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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