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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잇터 Jul 28. 2024

후쿠오카 첫 끼, 카이센동으로

이거지. 이게 일본의 맛이지

여행은 계획 없이 가야 한다. 계획이 없어야 이런 저런 틈이 생기고 그 틈 사이로 여유가 들어온다고 믿으니까. 여기저기에서 어디가 맛집이다, 어디를 꼭 가야 한다는 정보는 많이 받았지만 그걸 '여행 계획'이라는 틀로 만들지는 않는다. 여행지에서의 첫날밤은 설레임 혹은 잠자리가 맞지 않아 얼기설기 보내버린다.

덕분에 둘째날 아침은 유독 피곤하다. 그래도 다행히다. 2박을 묵기 때문에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짐을 쌀 필요가 없으니까. 침대에 누운 채 구글 맵스에서 엄지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본다.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한국 사람들보다 로컬들이 자주 가는 식당이었으면 좋겠고, 너무 비싸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하지만 맛은 그 어느 식당보다 훌륭했으면 좋겠는 마음이 한가득이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아주 작은 시장. 수산시장이란다.

그 곳에 로컬들이 자주 가는 카이센 동 맛집이 있단다.  수산 시장에 카이센동 맛집이라니. 게다가 위치도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외곽이다. 내가 생각한 조건들과 다 부합한다. 밖에 비가 살짝 내리는 것 같지만 에라 모르겠고 이번엔 발을 바삐 움직여본다.  


나와 비슷한 조건을 내걸고 찾아온 관광객이 많아서일까. 한국인들이 몇 있었지만 그에 비해 로컬들이 더 많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가게는 아주 조그만해서 줄을 서야했고, 회전율도 낮아 줄을 오래 서야했다.

30분이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1시간 반이 되서야 입장한다.  

오기가 생겨서 일까, 제일 좋아보이는 제법 가격이 나가는 메뉴를 시킨다. 주위 상점에는 온갖 생선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여러 종류의 생선들이 얼음 위에 누워 있었다. 그걸 1시간 동안 멀뚱히 구경하다가 카이센동을 받아 들어서일까? 유독 신선해인다. 아무렴 어떤가.  방사능 오염수 같은 이슈들이 머리를 스치고 가지만 그런 생각은 그저 OFF하는 게 상책이다. 한 그릇 가지고는 크게 해가 없을 거라고 합리화를 해본다.


나무 쟁반에 정갈하게 담겨온 카이센동 한 그릇.

'이 가격에 이 정도 신선함에 이 정도 퀄리티의 생선회가 가득 올라간 회덮밥이라니'

기분 좋은 웃음이 정말 함박눈처럼 내린다. 광대는 올라가고 눈은 감긴다.

비비지 않는다. 한 점씩 젓가락으로 조심스레 집어 먹어야한다.

지금 와서야 젓가락질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미끄덩 거리는 회는 집기가 유독 힘드니까. 하지만 최대한 경건하고 신중하게 젓가락으로 한 점씩 집어든다. 오래 오래 씹어 본다. 또한 입 속에서 녹아드는 윤기를 온 입으로 느껴보려 있는 힘껏 혀를 굴린다. 눈도 감아본다. 그리고 잽싸게 초대리가 되어있는 밥도 한숟갈 뜬다.

"그래 이거지. 이게 일본의 맛이지."

 미간은 이 맛과 감동이 순도 100%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잔뜩 찌푸려진다.


후쿠오카에는 어제 저녁에 도착했다.

그러니 오늘부터가 하루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일본 여행의 온전한 시작일 것이다.

일본 여행 첫 날 첫 끼를 카이센동으로 고른 나를 칭찬한다. 내 자신이 뿌듯하다.

여행 계획은 필요 없다는 내 신념은 더 옳았다는 걸 또 한 번 생각한다.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때에 맞춰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감이 생긴다.


후쿠오카 여행에서 이른 시간 기분 좋은 선제골을 넣었다. 그렇게 여행이 시작됐다.

카이센동 가게 앞에 있던 수산 시장
쇼쿠도 미츠 (야나기바시 시장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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