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미로 속으로
내 이름을 단 번역서 세 권이 세상에 나왔다. 나는 이제 당당하게 책 번역가라고 말해도 되겠지? 그렇게 자신감에 차 있을 때쯤, 샘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래, 한 번쯤이야 떨어질 수도 있지. 나랑 안 맞는 책이었겠지. 한두 권쯤 탈락했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시작일 뿐이었다. 한 권, 두 권, 세 권... 열 권, 수도 없이 떨어졌다. 나는 다시 미로 속에 갇혔다. 빛 한 줄기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속에 갇혀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심정이었다.
아, 이 길이 아닌가. 진심으로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내 안의 비명을 그치고 싶었을 뿐인데, 이것도 아니었나. 막막하고 서글퍼서 숨죽여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상이 나를 버린 것만 같았다. 너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남들은 힘든 일도 참고 버티며 살아가는데 쉽게 포기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고 철없이 굴다니, 너는 벌을 받아야 마땅해. 세상이 나에게 호통치는 것 같았다.
왜 나는 안되지. 왜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어려울까. 나는 진심으로 살고 싶었을 뿐인데. 왜 세상은 나를 외면할까. 샘플 번역 테스트에서 줄줄이 미끄러지다 보니 내가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구나.
그래도 살고 싶었다.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수도 없이 내 안을 헤집고 다녔다. 내 삶이 왜 이리 안 풀릴까. 뭐가 문제일까. 나는 정말 이 세상에서 버려졌나.
답을 찾고 싶었다. 번역뿐 아니라 인생의 답을.
세상은 이런 거라고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라고 속 시원히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걸 알아내야겠다고 마음 깊은 데서 내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더더욱 안으로 침잠했다.
세상 밖에는 답이 없는 것 같았다. 답은 내 안에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 실타래를 풀어야 할까.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내 안에 뿌리박고 내면만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자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