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번역가, 나를 되찾는 여정 6

눈 내리던 날 세상에 온…

by 강아지 번역가


나는 함박눈과 함께 세상에 왔다.

1.8kg 작은 몸을 이고.


그렇다, 나는 그때도 성격이 급했는지 빨리 세상에 나가겠다고 엄마 배를 연신 들이밀며 칠삭둥이로 태어났다. 작디작은 몸집으로 태어난 대가는 가혹했다. 따뜻한 엄마 품이 아닌 기계음 섞인 인큐베이터 안에서 한 달을 보내야 했으니까.


내 몸이 자라면서 인큐베이터 속 기억들도 사라졌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내내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살아갔다. 내 안에 느껴지는 이 작은 구멍은 뭐지. 나를 따라다니는 이 결핍감은 뭘까.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을 내미는 이 불안감은 뭐지?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 마음 안에서 단어 하나가 툭 튀어 올랐다.

‘인큐베이터’


아, 나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 살았지. 세상에 갓 나와 차갑고 딱딱한 기계 안에서 기계음과 함께 처음 세상을 마주해야 했던 그 가냘픈 아기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마도 무서웠겠지, 낯설었겠지. 엄마 아빠는 어디 갔을까. 버려진 것 같아 불안하고 서럽지는 않았을까. 기억은 온데간데없지만, 내 몸은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 버려진 공포를.

그게 내 결핍의 커다란 뿌리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직감이 강하게 올라왔다. 그러고 나서 또다시 내 결핍의 뿌리를 조금씩 잊어가던 무렵, 나는 내 안의 죄책감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에게 느끼는 죄책감이 불쑥 불쑥 나를 찾아오곤 했다.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 죄책감이 나를 흔들었고, 나는 그 죄책감을 기꺼이 마주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무거웠고, 내 존재를 내리누르는 듯한 갑갑함이 나를 짓눌렀다. 그 모든 몸의 감각이 나를 통과할 때까지 그저 가만히 함께 있기로 했다. 서서히 몸의 감각이 풀려나가기 시작할 때쯤,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친할머니의 친숙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것 같았다.


우리 강아지, 할머니한테 미안했어? 괜찮아, 다 괜찮아 그래도 우리 강아지 사랑해. 우리 예쁜 강아지.

그때 다시 인큐베이터가 떠올랐다. 눈이 하염없이 쏟아지던 날, 세상에 온 손녀를 맞이하기 위해 잰걸음으로 달려왔을 두 할머니. 그저 무한한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동자. 아, 나는 사랑받고 있었구나.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있었구나. 할머니 두 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사랑하고 있겠구나.


조건 없는 사랑이 느껴지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을 훔쳐내며 인큐베이터 안에 누워 있는 아기에게 말을 걸었다.


많이 무서웠지?

버림받은 것 같아서 두려웠지?

시끄러운 기계음이 혼란스러웠지?

하지만 있잖아,

그건 모두가 너를 사랑해서였어.

이 세상이 너를 살리려고, 너를 지키고 싶어서

너를 혼자 두었던 거야.


그러니까 이제 안심해도 괜찮아.

너는 절대 버려진 게 아니야.

넌 그 누구보다 사랑받았던 아이야.


작은 몸집의 아이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보얗게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