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슬거려도 괜찮아, 곱슬머리 강아지
내 머리카락은 저주받은 곱슬머리다. 그렇게 생각했다.
사진 속 내 머리는 늘 삼각김밥처럼 부풀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중학교 때는 학생 두발 자율화가 아직 시행되지 않았던 터라, 곱슬머리인 나도 예외 없이 머리카락을 귀밑 3센티 길이로 잘라야 했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곱슬머리 여자아이한테 귀밑 3센티라니. 그건 형벌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매직기로 머리 펴기, 미용실가서 매직 시술하기. 독한 매직 약 냄새에 코가 시큰거리고, 네다섯 시간 내리 의자에 앉아있어야 했으니 엉덩이가 욱신거렸다. 그렇게 이십 년을 해마다 두세 번씩 연중행사처럼 머리 피기 행사를 치러내야 했다.
그래도 참을 만했다. 네다섯 시간만 참으면 찰랑거리는 엘라스틴 머릿결을 가질 수 있으니까. 촤르르. 그래. 그 정도야 뭐. 돈도 시간도 아깝지 않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머리를 피러 미용실에 들렀다. 회사를 그만두고 오랜만에 가는 미용실이라 곱슬머리가 어깨까지 자라있었다. 내 곱슬머리를 본 신입 직원이 말했다.
“어머, 머리 너무 예뻐요. 이게 고객님 머리예요? 와, 이런 머리 파마로도 안 나와요.”
처음이었다. 그런 칭찬. 나는 미용실에 갈 때마다 내 곱슬머리가 마치 죄인의 표식인 마냥 부끄럽게 느껴졌다. 곱슬머리가 심하시네, 이거 피셔야 해요. 악.성.곱.슬이에요.
그런 말들이 나를 더 위축되게 했고. 그럴수록 더더욱 곱슬머리 시술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또다시 머리를 폈고, 다시 머리를 펴야 할 시기가 오기 전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한 것이다. 너도나도 집에 틀어박혀 나가질 않았고 나의 칩거 생활도 시작되었다. 어차피 회사도 안 가니까. 미용실도 안가고 머리도 안 감고 그냥 자연인처럼 지냈다.
이참에 길러보자. 내 곱슬머리가 어떤 모습인지 어디 한번 마주해 보자.
곱슬머리로 살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특히 곱슬머리가 가슴께까지 자라지 않았을 때는 감당이 안 되었다. 붕붕 뜨는 머리, 큐티클이 열려 태어난 천연 곱슬머리는 푸슬거렸다. 머리를 잡아 뜯고 싶었다. 그냥 펴버릴까, 이대로 괜찮을까.
하지만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진짜 내 곱슬머리를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버티자. 그럴 때마다 고양이가 옆에 와서 툭툭 비수를 꽂았다. 머리 다시 피는 게 어때? 너 옛날에 긴 생머리가 훨씬 예뻐. 사랑하는 고양이에게까지 그런 소릴 듣다니.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냥 이렇게 푸슬거리는 나도 사랑해 주면 안 돼?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이 흐르고 머리를 기른 지 어느덧 삼 년이 지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했다.
“파마했어? 이게 네 머리야? 파마한 내 머리보다 곱슬거리네? 머리 예쁘다.”
나의 천연 곱슬머리는 가슴께를 지나고 이제 진짜 내 머리카락만 남았다. 물론 지금도 푸슬거릴 때가 있다. 비가 오면 더 푸슬거리고 잘못 말리면 사자머리가 된다. 그래도 좋다. 내 머리카락이니까. 나만의 고불거림으로 세상에 나온 내 머리카락.
어릴 때 두발 자율화가 일찍 시작되었더라면 나도 어쩌면 그냥 내 천연 곱슬머리를 그대로 사랑하며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모두가 생머리로 살아갈 필요는 없으니까. 모두가 귀밑 3센티로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