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학문이었다니!
처음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아주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부족한 금전 감각을 키우고 과소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고, 일종의 재활훈련이라고 생각했다. 이 브런치북의 제목이 수포자의 '재활'일기인 것도 그런 까닭이다.
수학 공부가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수학은 늘 내게 재미없고 어렵기만 한 과목이었다. 성인이 된 후 내가 해온 공부들은 모두 관심 분야에 대한 것이었는데, 수학은 잘 모르는 분야이니 공부가 더 지루하고 힘들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수학 공부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나는 수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수학은 재미있고 아름다운 학문이었다. 넓고 깊은 수학의 바다에 아주 조금만 발을 담갔을 뿐인데도 수학이라는 학문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수학은 정확성과 일관성의 세계였다. 올바른 계산 과정을 거치면 정해진 답이 명확하게 나온다는 사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수학에는 규칙과 질서가 있었다. 문제를 풀다가 선생님이 알려주지 않은 규칙을 스스로 발견해내면 너무 신기하고 기뻤다.
구구단을 외우던 도중 규칙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냥 외워야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구구단에도 규칙이 있었다. 6단은 뒷자리가 4씩, 7단은 3씩, 8단은 2씩 줄어든다. 9단은 앞자리는 1씩 늘어나고 뒷자리는 1씩 줄어든다. 어릴 때 수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규칙이겠지만 나로서는 놀랍고 신기했다.
정답과 규칙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크나큰 위안을 준다. 성인으로서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에는 정답도, 규칙도 없다. 어떤 세상사에는 규칙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주 변덕스러워서 예측하기가 어렵다.
수학은 현실과 달리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 집중해서 수학 문제를 풀다 보면, 쉽게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문제들이 잊힌다. 주위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숫자와 나만 남겨지는 순간마다 무척 행복하다. 나를 괴롭힌 건 늘 숫자였지만, 그 숫자들에 대해 알아감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흠뻑 빠져 시간의 흐름도 잊고, 일상의 근심도 잊고 오로지 그 일과 나만 존재하는 상태'가 바로 몰입이라고. 나는 과거 일기에서 수학 공부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몇 시간씩 집중해서 문제를 푸는 밤이면 일종의 무아지경 상태에 접어든다. 시간이 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배고픔이나 허리의 통증도 잊어버리고, 그냥 문제를 푸는 나와 눈앞에 놓인 숫자들만이 존재하는 그런 순간이 온다.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몰입은 자꾸 할수록 더 쉽게 하게 되고, 잘하게 되고, 행복해진다'. '대다수는 휴식을 취하고 쉴 때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제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이 주어지면 무언가에 푹 빠져 있거나 어떤 과제를 해결하느라 몰두했을 때라고 응답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수학을 통해 몰입을 경험하고 있다. 어렵기 때문에 더 집중하게 되고, 집중은 몰입을 낳고, 몰입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수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문이기도 하다. 볼펜 30개 중 18개를 나눠주고 나면 남는 볼펜은 몇 개인지 생각해본다. 답을 구하기 위해 식을 세우고 정해진 방법에 따라 계산하여 값을 도출해낸다. 풀기 어려운 '난제'는 있지만 풀지 못하는 문제는 없다는 사실이 나를 매료시켰다. 고민하고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답이 나온다. 이는 현실의 문제들에도 적용해볼 수 있는 지혜였다.
사실 '수학의 아름다움'을 논하기에는 난 아직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라서 민망할 따름이다. 공부를 시작한 지 이제 3개월 차에 접어들어가고 있다. 가야 할 길이 멀다. 가능하다면 갈 수 있는 곳까지는 가보고 싶다. 이대로 계속 해나간다면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낄 수 있겠지. 그럴 수 있도록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