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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망 Apr 22. 2024

성실함의 강박

성실함과 꾸준함의  상관관계


어렸을 때 우리 집 가훈은 ‘성실하게 살자.’였다.

성실을 중요시 한 아버지는 자녀들이 책을 많이 읽고 모범생처럼 자라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굉장히 완고한 아버지 덕분에 책을 많이 읽고 늘 모범생이었던 큰언니는 

아빠의 인정을 한 몸에 받았다.

 

어릴 때의 인정에 목말랐던 나도 그 성실함을 닮고 싶었던 탓일까.


아빠의 가훈바람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는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다. 

풀배터리 검사지에서도 성실도 면은 거의 만점에 가깝게 나온다. 


나도 성실해야지 인정받을 수 있다고 느꼈던 것 때문일지 몰라도 무슨 일을 해도 

그 어떤 융통성 없이 그냥 엄청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하기로 한 일들은 시간을 쪼개서 나눠서 뭐든 해내는 탓에 일을 시작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하는 면이 있다.


그림을 늦게 시작해 세련되고 감각 있는 그림을 그리기 힘들었던 그때의 나는 성실만이 내가 버틸 무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성실함을 갖고 있긴 하나 무언가로 내 마음이 꺾이면 버텨내지 못하고 꺾인다.


쉽게 얘기해 성실함은 있으나 그것을 버텨낼 인내와 꾸준함은 글쎄.     


얼마 전 오랜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의 피아노를 치는 지인이 제법 규모가 큰 콩쿠르 대회를 

준비했더랬다.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한 지인이 콩쿠르에 나갔는데, 자신의 생각보다 잘하는 사람들을 보고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열심히 준비한 콩쿠르를 망치게 됐고, 그 이후로는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고...     


그날을 위해 굉장히 열심히 준비했지만 마음이 한번 꺾기게 되니 그냥 그만둬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할 때는 열심히 성실하게 하지만 마음이 쉽게 꺾여버린다. 

그런 얇디 얄팍한 마음과 유리멘털까지 합쳐져서 그냥 맥없이 놓아버린다.    

 

이제 와서 보면 끝내주는 성실함보다 그저 그런 꾸준함이 더 좋은 것 같다.     


양은냄비처럼 끓어오르는 열정을 가졌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것보다는 뚝배기처럼 우직하게 

흔들림 없이 내 마음을 돌보고 유지해서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오랜 시간 알고 있던 동생이 “언니처럼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주변사람들이 중요할 것 같아. 언니는 마음을 잘 돌보고 꾸준히만 한다면 뭐든지 다 잘할 것 같거든. 언니의 성실함이 그런 믿음을 주네.” 

15년이 지난 얘기인데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 말은 내게 큰 울림을 줬던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한 공모전이 이번에도 떨어졌다.


꺾이는 마음일 때의 대체방안을 마련해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현타가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했는데도 안되네. 너무 벽이 높았나

내 역량이 부족한 건가.

안되네, 정말 안되네. 안 되는 건가 봐.’...


부정적인 말이 꼬리에 꼬리를 달고 우울하고 의기소침한 마음이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다.        

            

시작할 때면 ‘이번 기획은 꼭 될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지만, 떨어지고 좌절감이 들 때 

나의 작업을 덮어버렸었다. 


이렇게 만든 기획서가 수북이 쌓여만 간다.


발표가 나면 후유증으로 또 바로 뭘 하기가 힘들었고 올해는 좀 달라지고 싶었다.    

      

흐지부지 시간을 흘려쓴탓에 올해는 안 됐을 때의 플랜 b를 준비했었다. 

흔들림 없이 다시 정리해서 투고메일 보내고 다시 만화를 연재해 보면 돼. 괜찮아 괜찮아.          


막연했던 플랜 b를 보니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갈까 두려운 마음에 뭐라도 해야 할까 싶다.     

나도 30일 1일 1 드로잉, 1일1릴스 해야 할까 나도 유튜브 해봐야 하나. 

뭘 자꾸 벌려야만 될 것 같은 마음.


내가 내 중심이 안 잡혀 있을 때는 자꾸만 주변을 기웃거린다. 


남이 잘되는 게 더 크게 보여 부럽고 그것에 비해 한없이 부족한 내 모습을 보고 괴롭기까지...   

       

 




공모전에 떨어진 게 실패인 걸까?


어쩌면 그런 이유들로 인해서 해오던걸 안 하는 게 더 실패일지도 모른다.      


물둥그런 막연한 목표 “재밌는 만화를 잘 그리자.”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나씩 

시작해 나가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니 매일 한 장씩 드로잉 하기, 독서와 내용에 대한 기록 등 

내가 실행할 수 있는 일들이 하나씩 생각난다.     


감정과 걱정에 휘둘리지 말고 묵묵히 내 일을 하는 것.     


처음부터 무언가 이루어져서 시작한 건 아니었잖아. 그냥 네가 좋아서 한 거잖아.


오랜 시간 그토록 간절했던 그림 작업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리 없다.

     

그 어떤 감정의 일히일비 없이 꾸준한 노력과 끊임없는 시도를 지속해 나가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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