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리뷰 (2)
진짜 아무나. 왜 아무나 사랑 못해? 여태 가리고 가려서 이 모양 이 꼴이니? 고르고 고르다가 똥 고른다고, 똥도 못 골라보고. 아무나 사랑해도 돼. 아무나 사랑할 거야.
- 「나의 해방일지」 1화
부모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아직 독립하지 못한 세 명의 자아들 중, 염기정은 첫 번째 자아이다. 그리고 이 자아는 '편견으로부터 홀로서기'를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극 초반부터 드러나는 염기정이라는 인물의 특성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랑에 있어서 인간을 도구화한다. 위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염기정은 동생인 염미정에게 '아무나 사랑해도 돼. 아무나 사랑할 거야.'를 연신 말하며 사랑의 대상을 '아무나'로 치부한다. 이때 염기정에게 사랑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사랑'을 위한 도구로 기능함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을 도구로 본다는 것은, 사르트르의 말마따나 인간을 '존재보다 본질이 앞서는'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되는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충족해줄 수 있는 본질적 요소, 즉 '쓸모'가 있는지로 인간을 판단하는 것이다.
둘째, 인간을 편견으로 바라본다. 누구에게나 편견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염기정은 이 과정에서 '아무나 사랑할 거야.'라는 소신발언과 사뭇 모순되는 발언을 한다.
두 번 다녀온 것도 좋다 이거다, 그런데 애 딸린 홀아비는 좀 아니지 않냐.
- 「나의 해방일지」 1화
'아무나' 사랑할 거라고 했지만, '애 딸린 홀아비는 좀 아니라는' 것은 모순적인 발언이다. 간절히 바라는 '사랑'이라는 것에 도달하려는 과정에서 이처럼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은 염기정이라는 사람의 미성숙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을 도구로 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도구의 쓸모를 편견을 바탕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어른스럽지 않은, 독립적이지 않은 태도다.
민주 사회를 살아가는 성숙한 현대 시민으로서, 또한 독립적인 어른으로서, 의사결정은 편견을 벗어난 주관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의사결정의 대상이 '인간'일 때는 인간을 사물, 혹은 도구로서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결국 나도 인권을 지닌 소중한 인간이니까. 인간만큼은, 존재가 본질에 앞서야 한다.
요컨대, 염기정을 미성숙한 어린이로 만들고 있는 것은 편견이다. 갖고 싶은 것(염기정에게는, 사랑)을 갖기 위해서는 인간을 도구화하여 편견으로 그 쓸모를 가늠하는, 미성숙한 자아인 것이다.
그러나 염기정은 점진적으로 이로부터 해방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애 딸린 홀아비'인 조태훈으로부터 비롯된다. 위에서 언급된 대사를 염기정이 칠 때, 옆 테이블에는 애 딸린 홀아비인 조태훈이 자신의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즉, 염기정은 편견에 뼈저리게 피해를 입을 대상을 옆에 둔 채, 철없는 소리를 해대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미안할까. 실제로도 엄청 미안한 감정을 가졌다. 그런데 처음에 이 감정은 당장 대상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지, 본인이 실질적으로 이러한 미성숙에 대해 반추한 결과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를 시작으로, 염기정은 조태훈을 통해 이러한 미성숙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나는 결과를 쟁취하게 된다.
1화에서 조태훈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제가 비록 이혼했지만,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게 결혼이에요. 어딜가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나겠어요.
- 「나의 해방일지」 1화
이 문장이 염기정에게는 얼마나 충격으로 다가왔을까. 이 두 문장은 위에서 언급한 '인간의 도구화'와 '편견에 입각한 의사결정'을 완전히 비틀어버리고 있다. '이혼했지만, 제일 잘한 것이 결혼이다.'라는 문장은 '애 딸린 이혼남'이라는 타이틀이 결코 '인생을 잘못 산 사람'이 아님을, 상당한 확신을 안고 드러낸다. 또한, 어딜 가서 만나겠냐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예찬함으로써, 이 아이라는 인간이 나에게 결코 쓸모로 판단되는 도구가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인 소중한 대상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염기정의 시선과 조태훈의 시선에서 각각 미성숙과 성숙의 대비가 느껴지는 이유이다.
염기정은 '애 딸린 이혼남'인 조태훈에 대해 사랑을 느낀다. 이는 '아무나 사랑할래!'를 외칠 때의 사랑이 아니며, 이 사람이 그냥 좋아서,에 국한되는 감정도 아니다. 내가 편견으로 쓸모를 판단했던 미성숙한 관점에서 벗어나, 그 편견의 바운더리 바깥쪽에 있던 인간 존재를 그 자체로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대하게 된, 보다 자유로운 감정에 해당한다.
아니요, 제대로 안 했어요. 대충 어물쩍 넘어갔어요. 비록 이혼했지만 제일 잘한 게 결혼이라는 말, 어? 결혼 안 했으면 어디가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나겠냐는 말. 오랫동안 마음에 박혀 있었어요. '아, 그렇겠구나' 그렇게 소중한 관계를 제가 술자리에서 함부로 떠들었어요. 죄송합니다.
- 「나의 해방일지」 6화
염기정은 진심으로 반성한다. 6화에서 조명된 이 진실한 사과는 염기정의 반성으로 점철된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확신한다. 염기정의 성숙을 관찰할 수 있는 명장면이다.
물론, 이는 단숨에 이루어진 과정이 아니다. 6화의 진실한 사과 이전에 박진우라는 안티테제가 존재했다. 교육에는 교사도 있고, '반면교사'도 있는 법 아닌가. 박진우는 염기정이 다니는 리서치회사의 이사인데,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미성숙한 염기정과 그 결을 같이 한다. 하지만 다른 점은, 염기정은 말로만 '아무나 사랑할 거야'라고 떠드는 반면, 박진우는 실제로도 '아무나 사랑하며' 사랑의 진실된 무게감에 무뎌진 인물이라는 점이다.
박진우는 염기정에게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때 되면 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한 지칠 수 없습니다.' 이는 '아무나 사랑할 거야'라고 말하는 염기정과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다. 마치 염기정의 성공 버전이 박진우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박진우의 사랑에서 그 대상은 '때 되면 오는, 내 쉼없는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한없이 가벼운 존재에 불과하며, 그 과정에서 인간적 주체성은 결여되어 있다.
처음에 이 말을 듣고 염기정이 어느 정도 감화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실한 사과를 하며 조태훈을 통해 주체성을 향해 한 발짝 '해방된' 염기정은, 11화에 이르러서는 조태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데 이른다.
괜찮아요, 좀 쉬세요. 일 분만, 좀 쉬세요.
- 「나의 해방일지」 11화
박진우의 사랑과 달리, 염기정은 사랑에도 휴식이 필요함을 느꼈나보다. 이는 염기정이 조태훈을 대하며 형성한 주체적인 관점이자 감정인데, 이를 내 '사랑의 대상'을 위해 온전히 표현해내는 대목이라 인상적이었다. 이 역시 염기정의 성장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1화의 염기정이라면, 사랑하는 데 어떻게 쉬어? 라고 했을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 교육은 호혜적인 서비스이므로, 염기정의 성장을 바로 앞에서 마주한 조태훈 역시 성장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혼 이후 아이에 대한 애정에 자신을 헌신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을 조태훈은, 염기정으로부터 순간의 '쉼'을 허락받는다. 본인의 '쉼'을 온전하게, 편견 없이 제공해주는 염기정에게 조태훈이 보다 충만한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분명, 두 어른 간의 상호작용처럼 느껴지지 않나.
염기정에게 조태훈은 '아무나'의 자리를 오롯이 채워준 특별한 사람이 되었고, 조태훈에게 염기정은 아이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던 자리를 오히려 비워준 특별한 사람이 된 셈이다. 서로의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해방일 지도 모르겠다.
대개 아이들은 막 자아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세상에서 자신들에게 심어준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한다. 아직은 그것이 편견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를 본인만의 인지적 능력에 기인한 것으로 혼동하여 어른이라도 된 양 마구잡이식 의사결정을 쏟아낸다. 이 과정에서 다른 인간은 손쉽게 물화, 혹은 도구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것은 편견이고, 세상에는 수많은 반례들이 존재한다고. 너의 편견을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너와 똑같은 인간이 너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이 설사 사랑이라는 소중한 감정일 지라도,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해주는 어른들이 필요하다.
편견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진정한 어른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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