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리뷰 (3)
부모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아직 독립하지 못한 세 명의 자아들 중, 염창희는 두 번째 자아이다. 그리고 이 자아는 '환상으로부터 홀로서기'를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 생뚱맞을 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환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염창희는 무의식의 욕망에 휩싸인 존재고, 그의 욕망은 환상으로서 시각적으로 무대화된다. 다음 대사들이 그 예다.
걔가 경기도를 보고 뭐랬는 줄 아냐?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내가 산포시 산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산포시가 어디 붙었는 지를 몰라. 내가 1호선을 타는지, 4호선을 타는지. 어차피 자기는 경기도 안 살 건데 뭐 하러 관심 갖냐고 해. 하고많은 동네 중에 왜 계란 흰자에 태어나갖고...
- 「나의 해방일지」 1화
위 대사에서는 염창희의 '서울'에 대한 환상이 드러난다. 지난 번 언급했듯이 염창희를 비롯한 세 남매는 부모님의 경기도 집에 얹혀살며 서울에 있는 직장에 출퇴근하는 삶을 지속한다. 세 남매들 중에서 경기도에 사는 나 자신에 대해 가장 큰 불만을 갖고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염창희다. 그는 서울에 대해서 자격지심과 욕망을 지니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현실의 본인을 깎아내리고, 서울에 태어나면 더 나았을 환상의 본인을 상정한다.
전 여친이 서울을 계란 노른자로 취급하고, 경기도를 계란 흰자로 취급한 것은, 전 여친의 생각일 뿐이다. 그저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데 염창희도 사실은 전 여친의 그러한 생각에 동조하고, 그 부분에 있어 심각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으므로 분노한 것일 테다.
염미정은 이 같은 환상을 지닌 염창희와의 대화에서 염창희와 본인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염미정 : 서울에 살았으면 우리 달랐어?”
염창희 : “달랐어.”
염미정 : “난 어디서나 똑같았을 것 같은데. 어디서나... 이랬을 것 같애.”
- 「나의 해방일지」 1화
염미정은 지독한 현실에 마주하며 환상을 만들 기력조차 없는 캐릭터인 반면, 염창희는 단호하게 본인의 환상을 고집한다.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돈이 없을까.
- 「나의 해방일지」 6화
한편, 이 대사는 염창희가 돈 없는 부모를 떠올리며 내뱉는 독백이다. 염창희는 편의점 영업관리 업무를 하는데, 마침 본인이 담당하는 '돈 되는' 편의점의 계약이 끝나가고 있어 편의점 주인으로부터 이 가게를 물려받을 기회를 얻는다. 다만 새로운 편의점 점주로서 계약을 하려면 보증금 3억이 필요해서, 이를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염창희의 아버지는 '나 먹고 살 건 내가 알아서 한다'면서 '그렇게 하고 싶으면 너가 보증금 3억 마련해서 해'라며 염창희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다.
이 대목에서는 염창희의 '돈 많은 부모'에 대한 환상이 드러난다. 오히려 염창희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자 하는 독립적인 면모를 지니나, 염창희에게는 여전히 삶의 욕망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욕망은 헛된 환상으로 발현된다.
뒤이어 염창희의 헛된 환상은, 구씨의 롤스로이스 고스트를 빌려타는 데서 극대화된다. 염창희는 우연히 구씨의 화장실에서 롤스로이스 고스트 차 키를 발견하고, 구씨에게 사정하여 고급 차를 빌려타고 다닌다. 염창희가 이 차를 운전하고 있다고 해도, 이 차는 염창희의 것이 아니다. 고급 차에 대한 욕망이 고급 차가 본인의 차인 것 같은 환상으로 드러나고, 염창희는 이 속에서 허우적댄다.
하지만 어느 날, 롤스로이스 고스트의 뒷범퍼에 사고가 난다. 염창희가 낸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그런 일이 벌어진다. 염창희는 구씨에게 이를 이실직고한 후, 도망간다. 이때 「나의 해방일지」의 명장면 중 하나인 '구씨-염창희 추격전'이 나온다.
추격전 링크 : https://youtu.be/VSPCWceB4pk
이는 그냥 깔깔유머 정도로 소비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구씨와 구씨의 롤스로이스 고스트를 통해 염창희가 욕망과 병리적 환상에 끊임없이 뒤쫓기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을 자율적 자아가 아닌 타자의 욕망에 얽매인 '결여적 존재'로 보았다. 고급 차를 가지면 근원적 결여가 해소될 수 있을까? 착각이다. 그럴수록 욕망은 욕망하는 나를 지배한다. 라캉은 인간으로서 욕망과 결코 타협하지 말기를 권고하면서, '환상을 거스르는' 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염창희에게도 환상을 거스르는 일, 다시 말해 '환상에서 해방'되는 노력이 필요해보인다.
그렇다면, 염창희는 어떻게 환상에서 홀로서는 모습을 보이는가?
염창희의 환상은 지독하고 불만족스러운 '삶'의 단면으로부터 탄생한 사이드 이펙트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으로, 삶이란 본래 지독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불교의 사성제(고집멸도의 4가지 진리) 중 첫 번째 진리인 '고제'에 해당한다. 고제는 불완전하고 더러움과 고통으로 가득차 있는 현실을 바르게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현실은 어떤 더러움과 고통으로 가득차 있는가? 불교에선 여덟 개의 '고'를 제시하는데, 이 중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거나 사별하는 고통'인 애별리고가 있다.
염창희는 애별리고를 겪으면서 끔찍한 고뇌를 겪는 한편, 지속적으로 환상을 만들어내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염창희는 할머니의 임종을 홀로 지킨 적이 있다. 염창희는 땡땡이를 치던 학생이 아닌데, 이상하게 그 날 따라 집에 가고 싶었단다. 그래서 집에 갔더니 할머니가 눈은 뜨고 계시는데 대답도 없으셔서 가셨다 싶었단다. 열여덟의 어린 소년에게 할머니의 죽음을 목도한 경험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을까. 트라우마로 남았을 수도 있겠다.
이후 염창희는 세 번의 죽음을 더 목도한다. 한 번은 할아버지의 죽음이고(극중에서 자세히 나오지 않아 설명 생략), 또 한 번은 편의점 영업관리직을 그만두고 집에서 백수 생활을 이어가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도한 것이다. 일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는 혼자 쓸쓸히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또 다른 한 번은, 사업을 시작한 후 고구마 기계를 편의점 체인에 입점하는 중대한 미팅을 앞두고 굳이 여사친 현아의 전 남자친구를 찾아 그의 죽음을 목도한 것이다. 염창희가 미팅에 참석했더라면, 현아의 전 남자친구 역시 혼자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우연히 세 사람의 임종을 지키게 된 염창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목도한다.
미팅에 참석하지 못해 창희는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되고, 편의점을 열심히 운영하며 빚을 다 갚는다. 그 후, 평생교육원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장례지도사 강의실에 앉게 되면서, 장례지도사의 길을 걷게 된다. 염창희는 장례지도사라는 우연한 기회를 선택함으로써, 죽음의 현실을 수용하고 삶의 환상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이는 둘째 염창희가 첫째 염기정, 막내 염미정과 차별화되는 부분인데, 나머지 둘은 살아있는 타인의 삶으로써 교육되는 반면, 염창희만큼은 타인의 죽음으로써 교육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타인의 넘치는 삶을 보며 부러워하고 열등감에 휩싸였던 염창희에게는 적절한 결과가 아닐까.
타인의 죽음으로써 교육된다는 점은 어찌 보면 섬뜩하다. 그저 한 번의 체험이었다면 염창희에게는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죽음은 염창희의 고통을 심화시키고 강한 환상을 낳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친구와의 이별은 결과적으로 오히려 염창희의 고통을 멸하고 환상에서 해방되는 데 일조한다. 무슨 차이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의의 죽음을 목격하는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염창희는 이를 재구성함으로써 고통을 극복해내기 때문이다. 20세기 대표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인간이란 경험을 재구성하며 성장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염창희의 성장기를 목격한 셈이다.
염창희는 애별리고의 연속적 경험을 통해, 또 그들의 임종을 함께 하며 체험한 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해방으로 향하는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해방된 그 지점에서 비로소 염창희는 어른이 된다. 그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다시 라캉으로 돌아가보자. 위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은 욕망과 타협하지 말고 환상을 거스르는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말들이 막 쏟아지고 싶어서 혀끝까지 밀려왔는데 밀어 넣게 되는 그 순간, 그 순간부터 어른이 되는거다. 내가 이걸 삼키다니, 자기한테 반하면서. 나 또 반한다.
- 「나의 해방일지」 16화
하고 싶은 말을 꾹 참는 것. 결코 단순한 인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염창희에게 이는 욕망과 환상을 거스르는 일을 상징한다. 염창희가 어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사여서 좋았다.
아이들은 대개 가지지 못한 것을 남이 가지고 있으면, 이를 쉽게 부러워한다. 부러움, 시기 및 질투는 고통을 낳고, 이를 해소하지 못한 채 그들은 성인기에 돌입해서도 이 괴로운 감정을 지속한다. 하지만 이는 결여된 인간 존재로서의 본인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다. 욕망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이 필요하다. 염창희처럼 지독스러운 경험을 재구성할 수도 있고, 본인이 가진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자세를 가르치는 교육이 선행될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환상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진정한 어른인 것이라고.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