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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Jan 06. 2021

(초단편소설) 수캐나 나나

찌는 더위라는 비유밖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연일 폭염이 이어진다는 뉴스가 반복됐다. 폭염이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봉식은 눈앞에서 헐떡이는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연신 담배만 피웠다. 개는 옆으로 누워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사이로 생식기가 보였다.


나이 먹은 수캐는 목줄을 둘러차고 되는대로 바닥에 엎드려 눈만 껌뻑거렸다. 봉식은 몇 대째 인지도 모르는 담배 때문에 쓴 물이 올라와 꺼억 거리며 가래침을 퉤퉤거렸다. 눈에선 눈물이 찔끔 흘러내리기도 했는데 봉식은 혼잣말로 궁상떨고 있다고 남 얘기처럼 중얼거렸다.


봉식은 수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오히려 수캐보다 더 많은 목줄에 겹겹이 매여서 하루 벌어 하루 풀칠하지 않으면 당장의 끼니도 손에 잡히지 않는 처지였다. 봉식이 생각하기에 주인이 밥을 주는 눈앞의 수캐보다 자신이 나을 것은 하등 없었다.


수캐와 달리 자신의 의사를 내뱉는 입이 있고 표현할 말이 있었지만 이 세상에 봉식의 말을 듣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봉식은 어차피 사는 인생 제멋대로 한판 살다가 가면 그만이라던 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살았다. 지금의 심정은 그것이 독이 되어 점점 늪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봉식의 휴대폰에 알림이 떴다. 그것은 딱 한 시간 꽉 채워서 주어지는 휴식시간이 끝나는 것을 의미했다. 도대체가 뭔 놈의 물건들을 이렇게 시켜대느냐고 봉식은 매일 종종걸음 치며 구시렁거렸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이들 때문에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입장이었다. 예전에 봉식은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팀장인 두희가 소주병을 기울이며 이마저도 밀리면 끝이라고 하는 통에 깨달은 지 얼마 안 된 사실이었다.


두희는 땀 닦는 시간도 아깝다며 최적의 동선을 짜고 달리는 배달의 기수였다. 두희 밑에 있는 봉식을 두고 다른 배달 조들은 사수 잘 만난 행운아라고 치켜세웠다. 배달의 기수들은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갰다. 식사 시간엔 초 단위로 수박을 쪼개 먹으며 오토바이를 내달렸다.


몇몇은 단독 주택이나 연립 주택단지에 배달할 때이면 아예 “배달입니다”라고 콧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해서 받을 사람이 문을 여는 시간까지 아껴 자기들의 시간으로 챙겼다. 이런 방식은 배달의 기수가 갖춰야 할 필수 자질이자 창의적인 업무처리이며 결국은 내 시간을 아껴 건수를 올릴 수 있는 일석삼조라고 두희를 비롯한 배달의 기수들은 조수들에게 추천했다.


봉식이 주로 담당하는 분야는 패스트푸드였다. 그것은 팀장 두식이 배달 스킬이라며 알려준 팁이었다. 두식의 설명으로 패스트푸드는 그것을 시키는 사람이 일단 젊은 층이며 그들 모두 빠르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므로 배달 자체가 다른 것에 비해 시간을 아끼는 남는 장사였다.


게다가 패스트푸드는 그 주문을 잡는 매장에서부터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어느 정도 지역 안배를 해주기 때문에 머리만 잘 쓰면 한 번에 아파트 한 동에 서너 집씩 배달을 할 수 있어 배달의 기수 치고 패스트푸드를 섭렵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수캐를 멀쩡히 쳐다보던 봉식은 알림이 뜨자마자 다시 업무 앱을 활성화하고 콜 받기에 나섰다. 선호 매장은 패스트푸드점 몇 개로 압축시켰다. 배달요청 콜이 뜨면 재빠르게 이를 낚아챘다. 봉식은 우성아파트 208호가 뜨자 수락 버튼을 터치했다. 아파트는 배달의 기수들도 들어서자마자 “배달 왔어요” 따위의 소란을 피우지 못하기 때문에 봉식은 2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갈까 아니면 엘리베이터를 탈까 망설였다. 그러다가 문득 오후 업무 시작부터 설렁거려선 안 된다는 생각에 계단을 택했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여서 중앙 현관으로 올라가자마자 끝집인 208호가 보였는데 마침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배달 왔습니다.”


봉식의 말에 누구 하나 나올 법도 한데 인기척이 없었다. 배달의 기수에게 시간은 그나마 평등한 돈벌이 도구였으므로 봉식은 지체 없이 현관으로 들어섰다.


“배달 왔습니다.”


봉식은 더 크게 외쳤다.


그러나 대꾸는 없었다.


이쯤이면 배달시킨 사람이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거나 헤드셋을 귀에 꽂고 뭐라고 중얼거리며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봉식은 젊은것들이 대낮에 일은 안 하고 하릴없이 저런 지껄이나 하며 음식이나 척척 시켜먹는 것이 꼴 보기 싫었다. 당연히 봉식의 기분은 바닥을 쳤다.


“두고 갈게요.”


봉식은 현관 더 깊숙이 들어가 거의 거실 바닥에 닿을 듯 말듯하게 엉거주춤 서서 햄버거 세트를 내려놨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보이는 작은방으로 대한민국 아주머니라면 누구나 한다는 뽀글이 파마머리를 한 중년 여성이 쓰러져있었다. 입에선 거품인지 토사물인지 모르겠는 희멀건 물이 잔뜩 흘러나와 있었다. 대충 집어 입은 것 같은 티셔츠 목 주변도 축축했다.


봉식의 심장은 요동쳤다. 전화기를 꺼내 구급차를 불러야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던 봉식을 멈추게 한 건 엎드려 쓰러진 여자의 다리 사이로 놓인 큰 핸드백이었다. 문제는 그 핸드백이 열려있다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 안에 현금이 잔뜩 들어 있는 게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그것은 분명한 현금이었다. 현금 뭉치는 초록색도 아닌 은은한 노란빛을 뗬다. 가지런한 뭉치가 아니고 마구잡이로 엉켜있는데 볼링공 한 개가 거뜬히 들어가고도 남을 핸드백 크기를 고려하면 만만치 않은 액수였다.


봉식은 침을 꼴깍 삼켰다. CCTV 유무부터 곱씹어봤지만 오래된 아파트 복도엔 그런 게 없었다. 저게 얼마지? 왜 여기 있지? 주인은? 내가 가져가면 잡힐까? 봉식의 눈은 어느새 입에 거품 문 여자에게서 벗어나 말없는 돈으로만 향했다. 구급차 따위는 고려 조건에 없었다. 저런 돈 어차피 다 국고로 환수된다는데 그렇게 줘서 뭐해? 또 다른 봉식이 속에서 소리쳤다. 봉식은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낚아챘다. 발자국을 남기지 않겠다는 나름의 계산이었다.


봉식은 그대로 복도 맨 끝 비상계단으로 내달렸다. 오토바이를 잡아타고는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액셀을 밟았다. 심장이 뛰면 뛸수록 봉식은 더 세게 액셀을 밟았다. 오늘 일은 다 끝났다. 어쩌면 앞으로의 일도 다 끝났다. 봉식은 중얼거렸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잡히지 않을 것이고 잡히더라도 잡히는 그 순간까지는 떵떵거리며 그간 하고 싶었던 것을 이 돈으로 다 할 것이라고 봉식은 다짐했다. 액셀이 발바닥으로 짓밟힐수록 심장은 더 빨리 뛰었다.


집에 온 봉식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방부터 열었다. 과연 오만 원권이 꽉 들어차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까짓 고시원 생활비를 당장에 다 내고도 떵떵거릴 수 있는 액수였다. 가늠할 수 없는 돈의 규모였지만 반대로 잡히거나 잡히지 않는 사이에서 어차피 다 써버려야 할 도박 자금과 같았다. 봉식은 두희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잠수를 타면 의심받을까? 경찰이 수소문 끝에 일을 갑자기 그만둔 배달원을 찾기 시작한다면? 이미 패스트푸드점엔 내가 콜을 받아 간 기록이 있을 터인데?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봉식의 심장은 요동쳤고 시간이 촉박한 건 두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여기서 일을 태연히 다녀? 그러다가 경찰이 또다시 배달원들을 조사하면? 그때 거기 배달을 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그럼 앉아서 돈도 못 써보고 잡히는데?


반대편을 따져보면 오히려 손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남은 물이라도 시원하게 들이켜느냐 마느냐 하는 것만 앙상하게 남았다고 봉식은 결론 내렸다.


봉식은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이참에 고시원 생활비 따위 내든 안 내든 아무 상관없었다. 돈뭉치는 배낭에 옮겨 담았다. 오토바이를 또다시 달리고 달렸다. 한강대교를 스치듯 건너며 휴대폰은 아무렇게나 물에 던져버렸다. 봉식은 달리고 또 달렸다.


다 쓰고 죽자는 심정이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던데. 봉식의 머리엔 이 문장만 꿈틀댔다.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것은 치사량을 훌쩍 넘을 수면제이고 그다음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수첩에 적는 것이었다. 어설프게 잡혀서 감방에서 썩는 건 목줄에 묶인 수캐만도 못해지는 그림이었다. 자유를 찾으리. 어차피 남은 인생 그럭저럭 살아도 평생 만져볼 수 없는 돈과 그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만끽하리라. 그런 다음에 아무런 미련 없이 산화하리라.


언제쯤이었을까. 봉식은 분명 이런 삶을 꿈꾸기도 했다. 가져갈 것 하나 없는 인생에서 최대한의 돈을 펑펑 써보고 남김없이 하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봤던 것이다.


“그렇지. 요즘 애들이 떠드는 욜로고 플렉스고 뭐 그런 소리들이 이런 거지. 어차피 수캐나 나나 비슷한 처지고 이런 존재에 미래는 없어.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나와 세상은 마주할수록 등을 돌릴 것이고 이제는 그러기에 앞서 내가 누린 뒤 선택할 거야.”


봉식은 오토바이 액셀을 더욱 세게 밟으며 중얼거렸다.


“망할. 수캐나 나나.”


오토바이는 서울에서 안양을 지나 일관되게 남쪽으로 달렸다. 남쪽엔 봉식의 고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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