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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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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pr 10. 2022

(단편소설) 뿌리 없는 헛발질

"이익현 선수, 올 시즌 목표가 주전 확보였다고 했죠? 그런데 그 이상을 이뤘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기분 나쁘진 않아요. 그런데 제 목표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의외입니다. 이 선수는 올 시즌 리그 서른여덟 경기 중 두 경기를 빼면 전부 뛰었습니다. 게다가 팀 내 최다 골도 넣었는데 어째서 주전 확보라는 자신의 큰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거죠?"


"제가 말하는 주전은 그 주전이 아닙니다."


익현이 인천공항에 들어서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여전하네." 익현은 카메라 플래시와 셔터 소리에 혼잣말했다. 눈과 귀가 정신없었지만 이렇게 많은 취재진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는 사실에 절로 웃음이 났다. 익현은 비행기 안에서 매니저 호일에게 취재 열기를 전해 들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취재진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럼 어떤 주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매번 모호한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엔 주전이란 말을 또 띄우는 겁니까?" 머리가 희끗희끗한 기자가 뒤에서 큰 목소리로 익현에게 질문했다. 이번엔 이대로 보내줄 수 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도 곁들였다.


아버지뻘 되는 기자의 질문을 받자 익현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가 자리에 멈춰 서자 취재진의 카메라가 더욱 분주해졌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주전이란 단어를 설명해봤자 여러분은 이해 못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제가 왜 그런 것까지 얘기해야 하는지를 더 모르겠습니다. 지난 시즌 팀에서 주전으로 뛰었다고 하셨죠? 그럼 된 겁니다. 그렇게 이해하셨으면 전 목표를 이룬 것이고 훌륭해 보이는 선수가 된 것이죠. 그냥 목표를 이뤘다고 써주세요. 어차피 자극적으로 보도해야 여기 계신 분들도 돈 많이 버는 거 아닙니까?"


익현의 말이 끝나자 취재진 틈바구니에 있던 매니저 황호일이 침을 꼴깍 삼켰다. 호일의 입에선 나지막한 신음마저 새어 나왔다.


익현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항 앞에 호일이 세워둔 승합차로 향했다. 호일은 익현이 취재진 틈바구니에서 차에 확실히 탄 것을 확인하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야, 인마. 그럴 것까지는 없었잖아. 내가 너 그냥 입을 다물든가 아니면 목표를 이뤘다, 다음 시즌까지 몸 잘 만들겠다, 그런 식으로만 말하라고 하지 않았어? 왜 또 사고를 쳐. 어쩔 거야. 이번 유행어는 주전이야 뭐야, 도대체." 호일은 시동을 거는 동시에 쏜살같이 쏘아붙였다.


호일의 말이 속사포처럼 자동차 안에 퍼졌지만 익현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호일이 보기에 굳게 다문 익현의 입은 말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넘어 건들지 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호일은 대답 듣기를 포기했다.


익현은 검은 배낭을 등에서 벗어 뒷자리 아무 데나 던져 놨다. 그리고는 창밖에 따라붙은 취재진을 멍하니 바라봤다. 눈을 감으며 익현은 "제발 집에 도착하기 전까진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너도 주전이 뭔지 모른다면 내가 바보 취급을 할게. 근데 넌 아니잖아 호일아"라고 나직이 대꾸했다. 익현의 한 마디에 호일은 늘 둘이 차에 탔을 때 듣는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오십 바퀴 벌써 다 뛰었냐? 체력 하난 타고났다니까. 딱 열 바퀴만 더 뛰고 와라."


열네 살 익현은 축구부 연습 시작과 동시에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공을 갖고 훈련할 때도 익현은 큰 원을 그리며 운동장을 뛰어야 했다. 삼십 대 후반의 축구부 코치는 "아무리 봐도 신체조건 하나는 끝내준다"라고 혼잣말을 내뱉으며 뛰고 있는 익현과 훈련하는 다른 축구부원을 향해 번갈아 웃었다. 이따금 그는 "너희도 크면 안다. 코치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 줄 아니? 그러니까 부모님께 힘든 코치 선생님 잘 좀 봐달라고 말씀드려. 그리고 너흰 코치 선생 말이라면 무조건 잘 들어야 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코치는 그런 식으로 '촌지'를 챙겼다. 스물세 명의 축구부원 중에서 촌지를 내지 못한 아이는 익현이 유일했다.


익현이 공을 만질 기회는 훈련 막판에 있는 자체 연습 경기가 유일했다. 그게 아니면 다른 학교와 연습 경기를 할 때 후반 십분 정도 경기에 투입되곤 했다. 또래보다 최소 10cm미터 이상 큰 익현의 키와 타고난 강골 기질은 일부 학교 사이에선 나이를 속인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익현은 경기에 들어가자마자 골을 넣거나 팀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익현이 속한 중학교 지역에선 그를 모르는 축구부 학생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익현의 축구부 코치는 "신체 조건만으로 하는 축구는 프로 진출까지 장담할 수 없다"면서 익현을 후보 선수로 두곤 했다.


사실 표면적인 이유와는 관계없었다. 익현이 소외당하는 배경은 촌지였다. 이는 익현과 함께 운동하는 축구부원과 그들의 학부모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두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진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학부모들은 코치의 입김이 아이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에 사로잡혀 더욱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달리 보면 익현의 소외는 그들에게 기회이기도 했다. 공격수를 희망하는 아이들에게 익현이란 존재는 거대한 산과 같았는데 모두 이러한 촌지 문제로 단번에 해결됐다.


"저 왔어요."


익현의 귀가 시간은 거의 매일 저녁 일곱 시였다. 거실 겸 작은 주방이 한 개 달린 좁은 집에서 익현의 할머니는 매번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아끼고 아껴 몇 번이고 끓였기 때문에 된장찌개의 색은 날이 지날수록 맑아졌다.


"아이고, 오늘도 흙투성이가 됐구먼? 일단 옷은 저 짝에 벗어두고 밥부터 먹자 우리 강아지." 방바닥에 밥상을 펼치는 할머니를 보며 익현은 축구부 트레이닝 복을 벗어 빨래통에 넣었다. 땀에 흠뻑 젖은 윗옷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그는 허겁지겁 숟가락부터 잡았다. 어린 나이의 익현이 보기에도 가난은 거대한 성벽과 같았다. 쉽게 허점이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기초 생활수급자로 지정돼 매달 나오는 생활비를 아끼느라 골몰했다. 아침에 익현이 학교 간 뒤부터 줍는 폐지도 요즘은 내놓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할머니는 늘 푸념했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익현의 엄마는 열아홉 살에 익현을 낳아 놓고는 미국으로 떠났다. 집 근처 공장에 다니면서 거기서 숙식을 해결했는데 어느 날 포대기에 익현을 안고 와서는 연락이 끊겼다. 당연히 할머니는 익현의 아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또래보다 훤칠한 익현의 키와 누가 봐도 생김새가 외갓집을 닮지 않은 그의 모습에서 유추해 "느그 아빠를 따라갔을 것"이라고 할머니는 엄마를 정리해 내뱉곤 했다.


익현에겐 어머니의 남동생인 외삼촌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 또한 석수장이를 한다고 전국을 떠돌이처럼 다니는 통에 어쩌다 집에 들렀다. "아이고, 내가 딸 하나 아들 하나 둬서 그때만 해도 참 편하다 캤거든? 근데 마, 말년에 이러는 기라. 애 하나 낳아놓고 무책임하게 가뿌긴 했어도, 내도 이제 마 딸년이 보고 싶다 안 카나. 갸도 즈그 아부지만 일찍 안 죽었으면 올바르게 컸을 기다 마. 지 하나뿐인 남동생 학비 좀 대겠다고 공장에 갔다가, 마 이제는 영영 안 올 낀가부다 마."


어느 날인가 익현은 할머니가 옆집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며 우는 것을 봤다. 자는 척하다 이불을 살짝 걷어서 할머니의 얼굴을 봤을 때 붉게 충혈된 눈시울을 봤다. 그때부터 익현은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따위와 같은 가사가 들어간 노래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남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존재가 없을 때 오는 불편함은 생각보다 컸다.


익현이 축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외삼촌 때문이었다. 외삼촌은 어쩌다 집에 들어와서 익현과 놀아주다 또 갑자기 집을 나가 연락을 끊고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조카 사랑은 끔찍한 사람이었다. 외삼촌은 익현에게 어디서 갖고 왔는지도 모르는 축구 선수 비디오테이프를 자주 줬다. 익현은 펠레, 마라도나와 같은 축구 선수의 영상과 설명을 외삼촌한테서 보고 배우며 자연스레 골목에서 공을 차고 놀았다. 그럴 때마다 삼촌은 "익현아, 너는 키도 크고 힘도 세다. 축구만 잘해도 이것보다 훨씬 큰 집에서 살 수 있다. 그리고 유명해진다"라고 했다. 할머니는 중학교도 안 간 애한테 헛바람 잔뜩 불어넣지 말라고 했으나 익현은 큰 집이라는 말에 혹해 공부보다 축구가 좋았다. 유명해지는 것과 다른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큰 집에서 살 수 있다는 말만 귀에 박혔다.


중학교에 진학한 익현은 첫날부터 축구부 코치 눈에 띄었다. 또래보다 큰 키와 다부진 몸은 멀리서부터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코치는 익현에게 축구부에 들어오라고 설득했다. '훨씬 큰 집에서 살 수 있다'던 외삼촌의 말 덕분에 익현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운동 후 나오는 간식은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맛있어 보였다. 축구부에만 주는 운동복은 세상에서 제일 멋져 보였다. 그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는 다른 또 다른 집단에 대한 동경이었다.


"나 내일부터 축구부 들어갈 거예요"라고 할머니에게 선언한 날 익현은 처음으로 맞았다. 기운도 없는 할머니는 파리채를 들고 와서 익현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휘갈겼다. "이놈의 자식아, 할미나 애미처럼 안 살려면 공부를 해야 안 카겄냐, 무신 놈의 빤스바람 공놀이를 하겠다고 그카나"라고 할머니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익현은 "큰 집에 살고 싶어요"라고 이를 꽉 깨물고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파리채가 부러지고 나서야 할머니의 매질이 멈췄다. 익현의 고집은 부러진 파리채 앞에서 더욱 단단해졌다. 엄마를 보고 싶다며 익현 몰래 울었던 할머니가 익현 앞에서 처음으로 펑펑 운 날이었다.






"익현아 다 왔다. 나 지금 처음 말 걸었다. 대꾸해 어서."


호일이 운전석에서 고개를 뒤로 돌리며 말했다. 눈 한 번 뜨지 않고 뒷자리에 기대있던 익현은 눈을 뜨며 배낭을 챙겼다. "야, 그래도 고맙다." 익현이 벌겋게 달아오른 눈동자를 내보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또 시작이네. 사람들이 너 이런 거 알면 진짜 웃기겠단 생각을 난 똥 싸면서도 한다."


호일은 웃음으로 화답한 뒤 어서 들어가라고 익현에게 손짓했다.


"내일 직통 휴대폰으로 전화할게. 다른 휴대전화는 아예 꺼둬. 지금쯤 휴대전화 켜는 순간에 기자들 전화 엄청나게 올 거야."


"알았다. 호일아. 진짜 고맙다. 그런데 아까 공항에서 욱한 건 여전히 후회 안 한다. 까짓것 내가 축구하는데 아무 상관없잖아. 이렇게 큰 집에서 사는데. 안 그래?"


항상 중요할 때마다 끝에 동의를 구하는 것은 익현의 사소한 습관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다 수습해줄 테니까 너는 실컷 자고 내일 전화나 잘 받아. 필요한 거 있으면 문자로 남겨 두고. 잘 쉬어라."


반년 만에 돌아온 한국 집 문이 열리자마자 익현은 거실에 있는 소파로 어린아이처럼 뛰어들었다. 이미 호일이 청소부를 시켜 깔끔히 청소를 해두고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둔 집이었다. 비밀번호와 지문인식 되는 현관문이 '띠릿'하고 닫히자 익현은 거침없이 청바지와 위에 입은 티셔츠를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알몸으로 냉장고에 가 시즌 중이라면 입에도 대지 않는 맥주를 꺼내 들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캔맥주가 열리자 익현은 맥주캔을 들고 안방과 작은방들 세 개를 전부 둘러봤다.


익현은 안방에 있는 넓은 침대가 늘 마음에 들었다. 침대를 볼 때마다 익현은 어린 시절 큰 집에서 살 수 있다던 외삼촌이 생각났다. "외삼촌 저 왔어요. 내일 꼭 찾아뵐게요." 외삼촌과 통화를 마친 익현은 첫 번째 방으로 갔다. 운동기구가 빼곡한 방은 어제 막 청소한 덕분에 말끔했다. 각종 수상 트로피와 축구용품이 들어차 있는 두 번째 방도 말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고교 득점왕부터 프로 팀원들과 같이 찍은 사진까지 전부 할머니가 모아둔 거였다. 할머니는 익현이 프로에 진출하고 1년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우리 강아지 빤스 축구로 큰 집 사는 사람 되는 거 봐서 할미는 마음이 편타." 마지막 말을 남기는 할머니의 표정은 평온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방문을 연 익현은 '음'하고 작은 한숨을 쉬며 몇 초간 멍하니 쳐다보다 방문을 닫았다. 익현이 벌컥벌컥 들이켜는 맥주 소리가 방문을 때렸다.


방을 전부 둘러본 익현은 베란다로 갔다. 베란다에서 익현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바삐 움직이는 차들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한강 다리를 내려다봤다. 불빛과 전조등이 뒤엉킨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시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척하고 뭔가 하지만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저들이 나는 싫다." 익현은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베란다 문을 닫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의 파리채를 부러트리고 들어간 축구부는 처음엔 쉬웠다. 골목 축구를 할 때부터 익힌 감각과 타고난 신체조건이 무기였다. 익현은 금방 그 틈바구니에서 유망주가 되었다. 중학교 1학년임에도 중학교 3학년들이 뛰는 경기에 나서도 될 정도로 완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술적인 부분에선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1학년임에도 178cm에 이르는 익현의 키는 중학교 전체 축구부를 놓고 봐도 당당한 체구였다. 특히 익현의 중학교는 지역 내 정상급 실력을 갖춘 팀이었다. 팀 전력이 좋아서 익현이 공격수로 뛰기만 한다면 체격 조건을 앞세워 골을 넣기에도 유리했다. 이 때문에 익현은 대부분 경기에서 주전 공격수로 중용됐다. 하지만 이를 본 학부모들이 이번에도 가만있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1학년에 불과한 익현이 경기에 나서면서 3학년들의 고등학교 진학 문제에 걸림돌이 된다고 학교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익현이 축구부 운영비도 내지 않는 것을 문제 삼았다. 그들은 형평성을 운운하며 익현의 코치를 압박했다. 축구부를 둘러싼 그런 갈등은 차고 넘쳐서 익현의 귀에도 들어갔다. 어린 마음에 익현은 '축구부를 그만두겠다'고 턱밑까지 단어를 길어 올렸다가 참기를 반복했다. '우리 강아지가 빤스 축구 일등이라니께'라고 동네에서 자랑하는 할머니의 외침과 큰 집에서 살 수 있다던 외삼촌의 말이 자꾸만 걸렸다.


그 무렵 익현을 축구부로 추천하고 공격수로 경기에 내보냈던 코치는 학교 측에 끝까지 반발하다 해고되고 말았다. 코치가 해고되던 날 익현은 승용차에 올라타는 코치를 따라가 "죄송합니다. 선생님"하고 처음으로 축구 외적인 부분에서 말을 걸었다. 코치는 짧게 깎은 익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넌 된다. 넌 분명히 뛰어난 선수가 된다. 내가 이렇게 떠나지만 멀리서 널 끝까지 보고 있다는 걸 절대 잊지 마라. 다시 만나는 날은 분명 우리가 웃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코치는 익현의 집안 사정을 외삼촌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외삼촌은 어느 날인가 익현의 축구부 연습을 보러 갔다가 코치와 거나하게 술판을 벌인 뒤 모든 걸 털어놨다고 훗날 익현에게 설명했다. 코치는 그날 이후 축구부 회비를 자신의 월급에서 떼 익현의 할머니 이름으로 학부모회 계좌에 이체하는 등 남몰래 익현을 잡음에서 꺼내려 노력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겪은 축구부는 새로운 코치가 오자마자 금방 원점으로 돌아왔다. 새로 온 코치는 프로 축구 선수를 오래 하다 고등학교 축구부 코치를 했던 사람이었다. 프로 선수 시절 그렇게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엄하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전 학교에서부터 유명했다. 익현과 처음 만난 날 그 코치는 "네가 익현이냐? 밖에서 봤는데 넌 체력이 약하다. 운동장 좀 많이 뛰어야겠다"고 말했다. 어린 마음에도 익현은 이를 축구부원으로서의 '사망 선고'와도 같다고 받아들였다. 돈으로부터 나온 권력은 허약하지만 반짝하는 힘이 강했다. 익현의 부당함을 본 눈들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때부터 익현은 공식 훈련 시간인 오후 다섯 시까지 쉬지 않고 운동장을 돌 수밖에 없었다. 공을 잡고 무언가 기술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 대신 익현은 훈련이 끝나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모두 집에 돌아가면 근처 공터로 몰래 가 저녁 일곱 시까지 낡은 공 하나로 연습하기를 반복했다.


할머니는 매일 해가 넘어가고야 집에 오는 익현을 보며 "뭔 놈의 빤스 공차기가 애들 밥도 안 맥이고 해 다 떨어질 때까지 시키나"라고 했다. 익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밥만 먹기 바빴다. 그러다 하루는 서러움에 복받쳐 숟가락을 놓고 화장실에 들어가 토하는 척하며 울기도 했다. "빤스 축구가 애 잡는다"라는 화장실 밖 할머니의 말이 어떨 때는 사실인 것 같아 더 서러웠다.






"띠리리리링."


전화벨이 크게 울리자 익현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평소 같으면 실내 자전거에 몸을 올려야 할 시간이지만 비시즌 일주일간은 철저히 늦잠을 자기로 호일과 약속한 후였다.


"익현아, 아무리 끝까지 자는 첫날이지만 문자 하나도 없이 열두 시까지 자냐. 필요한 것도 없어? 어째 문자도 하나 안 보냈던데?"


호일이 쩌렁쩌렁 큰 목소리로 수화기를 울렸다.


"필요한 거 하나도 없다. 그냥 두는 게 제일 필요한 거 같은데?"


익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직이 대답했다.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었다.


"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너 어제 한 발언 그대로 기사 나가서 지금 인터넷이랑 댓글들 난리도 아니라고."


"그래서 뭐? 언제부터 그런 거에 민감했어? 호일아 너랑 나랑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축구만 하기로 했잖아?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왜 민감해지셨어?"


"그게 끝이 아니니까 그렇지. 구단 스폰서 중에 한국 기업도 있잖아. 거기랑 엮인 언론사가 단독으로 인터뷰 좀 하자고 하는데 이거 답이 없다. 구단에서도 들어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래. 아무래도 내일이나 모레 오후 중으로 시간 잡아야 할 것 같다."


"야, 호일아 인마. 무슨 소리야. 이번에 귀국해서 인터뷰 한 번도 안 하기로 했잖아. 공항 인터뷰가 끝이었잖아. 무슨 빌어먹을 소리냐고."


"미안, 가서 얘기하자. 돈 앞에 장사 없는 거 알잖아."


"망할, 그놈의 돈이라서 더 싫다. 싫어."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호일은 한 시간 뒤 익현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비밀번호 그대로야. 눌러." 퉁명스런 익현의 말에 호일이 쓴웃음을 지으며 들어왔다.


"돌직구부터 던지고 시작하자."


호일이 베란다만 쳐다보고 있는 익현의 등에 대고 말했다.


"이미 피 터지게 맞았는데 뭘 또 던지겠다는 거야."


익현이 뒤도 안 돌아보고 대꾸했다.


"나일권 코치님 잊지 않았지?"


호일이 조심스레 물었다. 익현의 대답이 없었다. "너 여기까지 올리신 분이잖아." 다시 호일이 캐물었다. "뭐가 엮인 거야. 도대체?" 익현이 대꾸했다.






익현의 재능을 알아보고 뽑아준 코치가 나일권이었다. 학부모들의 항의와 알력에 밀려 축구부를 떠나야 했던 게 나일권 코치였다. "넌 분명 프로가 된다. 널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했던 그는 익현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도 가끔 연락이 왔다. 익현이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에는 집까지 찾아와 꼭 ㅇㅇ고등학교로 진학하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날 집에 온 나일권 코치를 위해 아끼고 아끼던 돈을 모아 돼지고기 볶음을 내놓기도 했다.


이 또한 이유가 있었다. 익현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국내 프로팀과 계약하던 날 "느 고등학교 회비를 그분이 다 내줬당께. 으떠케나 말하지 말라고 안 카드나. 내 오늘은 안 울라꼬 털어놓는다 안 카나"라고 할머니가 실토했다. 계약금을 받은 익현은 할머니, 외삼촌과 함께 살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고는 나일권 코치를 초대해 처음으로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날 익현은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코치님이 도와주신 거에 보답할 수 있을까요?"라며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할머니와 외삼촌이 아닌 사람에게 해보기도 했다. 당시 취기가 잔뜩 올랐던 익현의 기억 속에서 나일권 코치는 "넌 내 꿈을 대신 이뤄줄 수 있다. 그거면 됐다. 공 잘 차라"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잠시 호일의 말 때문에 회상에 잠겼던 익현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예정에도 없던 인터뷰를 해야 하는지 답을 얻지 못했다. 단지 호일은 "구단에서 스폰서 문제도 있고 해서 꼭 해야 한다고 하더라. 어쩔 수 없었다"고 양해만 구할 뿐이었다.


사실 익현은 모든 언론사가 가장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하는 대상이었다. 특히 언론사 입장에서는 단독으로 익현과 인터뷰를 할 경우 판매와 광고 수익에서 엄청난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익현의 언론 기피증은 이제껏 그 어떤 축구 선수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었다. 대부분의 스타 선수들은 어린 시절 천재 소리를 듣다가 신인 시절 언론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자신의 의도와 다른 보도가 나가면서 입을 닫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이를 괘씸히 여긴 언론이 다시 그를 물고 뜯으면서 선수와 언론의 관계가 더욱 악화 국면으로 치닫는 사례가 많았다.


그런데 익현은 프로 구단 입단식에서부터 돌출 행동으로 구설에 올랐다. 입단식에서 계약서에 서명하고 구단 유니폼을 입은 익현은 어쩔 수 없이 행사장에 온 취재진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그때 익현은 짤막짤막하게 대답하다가 "제가 마지막으로 질문과 상관없이 할 말이 있는데요"라고 물꼬를 텄다. 행사를 진행하던 구단 홍보팀장은 "사전에 준비된 부분이 아닌데 익현 선수가 뭔가 착각한 것 같습니다"라고 급하게 웃으며 제지했다. 그러나 익현은 "제 행사에서 말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라고 오히려 더 큰 웃음으로 되물으며 취재진을 향해 자신의 말을 해나갔다.


"제가 청소년 대표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정말 많이 와주셨네요. 단순히 계약서 종이에 사인하는데 이런 것도 많은 분이 관심을 가지셔서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계신 분들께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이렇게 역으로 질문 좀 드리려고요. 여기 오신 분들은 제가 뭐부터 하면 좀 잘나가는 축구 선수가 된다고 생각하실까요? 그러니까 제 질문은 여러분이 저라면 뭐를 먼저 해야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 같은가 이 말입니다." 익현의 돌발 질문에 구단 관계자들은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매니저 자격으로 행사장 뒤에 있던 호일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취재진은 신인의 당돌함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한 기자가 "계약금 받았으니 멋진 집부터 하나 사고 그다음에 첫 시즌이니까 주전 자리부터 꿰차야죠. 아니 할머니랑 어렵게 컸다면서요. 그럼 앞으로가 더 기대되겠네"라고 대답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당연히 다음날 헤드라인은 '당돌한 신인 이익현' 따위의 수식어가 덕지덕지 달렸다. 어느 언론사는 '시작부터 딴생각 품은 신인', 또 다른 언론사는 '어설픈 축구 철학자' 등의 풍자를 하기도 했다. 취재진 사이에선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인 '또라이'가 익현을 지칭하는 수식어로 통했다. 그날 이후 호일은 매니지먼트사한테서 익현의 돌발 인터뷰만 잘 막아도 연봉이 쑥쑥 오르도록 해주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익현의 돌발 인터뷰는 그날이 시작이었다. 익현은 인터뷰를 즐기진 않았지만 수훈 선수에 뽑히거나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처럼 꼭 취재진과 만나야 하는 자리에선 이른바 취재진이 좋아할 '떡밥'을 내던졌다. 특히 익현은 인터뷰 횟수가 늘어날수록 묘한 말을 많이 남겼다. 첫 주전으로 출전해 90분을 모두 소화한 경기에서는 "이게 다 인 건가요? 기자님도 취직해서 첫 기사를 썼을 때 이렇게 아무렇지 않았죠?"라고 되물어 다음날 언론사 영업의 일등공신이 됐다. 처음으로 대표팀 소집 명단에 이름을 올려 취재진 앞에 섰을 때는 "난 태극기 달린 유니폼을 볼 때보다 대표팀 식당에서 맛있는 밥을 먹을 때가 훨씬 행복합니다. 태극기는 아무 데서나 많이 볼 수 있는데 여기 밥은 할머니가 해주는 거 다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거든요"라고 말해 팬들에게 국가대표의 경기력과 밥맛의 상관관계에 대한 토론의 장을 열어줬다. 데뷔 시즌 득점왕을 거머쥐었을 때는 "뭐든 없던 게 생기면 다시 없어질 때를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맨몸으로 왔다가 맨몸으로 가는데 뭐가 대수예요? 전 이미 큰 집에서 살고 있어요"라고 말해 어설픈 개똥철학이 더 깊어졌다는 조롱과 풍자물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한 심리학자는 익현의 이런 인터뷰를 종합해 "자기방어적 기제가 강하며 축구 선수로서의 재능만 없었다면 사회 부적응자가 됐을 수도 있다"고 강경한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몇 차례의 이와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수록 익현은 "난 할 말 시원하게 해서 좋고 저 사람들은 일거리 생겨서 돈 많이 버니까 좋은 거 아니냐"고 호일과 구단 홍보팀을 향해 반문했다. 몇몇 대중은 이제 취재진 사이에서나 돌던 '또라이'를 더해 '악마의 재능' 혹은 '언론사 밥줄' 등의 별명을 익현의 기사 댓글에 붙여 공유했다. 축구장 밖에서도 화제가 되는 익현은 그 자체만으로도 항상 언론사의 기사 조회 수와 큰 관심을 보장했다. 익현이 국내에서 두 시즌을 치르고 영국 무대로 떠날 때도 팬들은 "외국까지 못 따라가는 기레기들이 제일 슬퍼할 것"이라고 악담으로 비꼬기도 했다. 그만큼 익현은 팬들과 언론에 이야깃거리를 제공하지만 또 아무 때나 인터뷰는 할 수 없는 묘한 선수로 통했다.






"그래서 내일 오후에 인터뷰하면 돼? 어디서 하는데? 너 또 나한테 쓸데없는 말 했다고 투덜거릴 게 뻔해." 익현의 귀찮다는 말에 호일은 한숨만 내쉬었다.


"내일 오후에 취재진이 여기로 올 거야. 언론사 하나 단독 인터뷰니까 특히 더 말조심하고. ㅇㅇ일보라고 하던데 여기가 ㅇㅇ방송사까지 갖고 있는 곳이거든. 방송 인터뷰도 나갈 것 같으니까 더 말조심하고. 특히 그쪽 요구가 자연스러운 인터뷰 분위기를 위해서 너만 이 집에 있게 해달라고 했거든. 나는 거부했는데 구단에서는 또 그렇게 하래. 내일 나는 밖에 있을 테니 인터뷰 다 끝나면 문자 주고."


"거실에서 대충해서 돌려보내면 되지?"


"그럼 뭐 침대라도 구경 시켜주려고?"


"혹시 모르니까? 이 큰 집에서 볼 게 얼마나 많은데."


다음날 나이 지긋한 남자 기자 한 명과 그를 따라다니는 이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카메라 기자 한 명이 익현의 집을 찾았다. 호일이 자세히 보니 나이 지긋한 남자 기자는 인천공항에서 익현을 멈칫하게 한 기자였다. 호일은 그들에게 커피를 내주고 익현에겐 탄산수를 꺼내준 뒤 집을 나섰다.


인터뷰는 평범했다. 할머니와 살던 시절, 외삼촌의 존재, 고교 시절 전국대회 득점왕과 프로 진입 후 해외 진출까지 술술 풀렸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나일권 코치를 아시죠?"


익현이 전혀 외부에 알리지 않았던 이름이 기자 입에서 튀어나왔다.


"기자님이 어떻게 나 코치님을 다 아시나요. 제가 밖에다가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뭐, 그 정도는 저희도 아니까 구단에서 이렇게 단독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 아니겠어요?"


"대단하시네요. 어쨌든 나 코치님은 저를 이 자리까지 있게 만들어주신 분이시죠. 그분이 아니었다면 예전에 벌써 축구를 그만뒀을 거에요. 망할 놈의 돈 때문에 말이죠."


익현이 탄산수를 들이켰다.


"회비 말씀하시는 거죠? 중고등학교 축구부 회비를 대신 내주셨다고 하던데."


"회비뿐만 아니죠. 가끔 개인지도를 해주시고 고등학교 진학 문제도 해결해주셨고요. 이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 작은 아파트를 처음 샀을 때는 갓 성인이 된 저랑 흠뻑 취하기도 하셨죠. 요즘도 자주 연락 드려요."


얘기가 흐르자 질문을 하던 기자의 눈에 웃음기가 머금어졌다.


"제가 알고 질문을 하니 역시 술술 대답을 해주시는군요. 그럼 이제 제가 한 번 얘기를 꺼내볼게요. 나 코치님이 익현씨 어머님의 남편이란 건 모르고 있었죠?"


정적이 흘렀다. 익현의 표정이 굳어졌다가 풀렸다. 탄산수가 익현의 목을 타고 넘어가며 꿀꺽인 뒤였다.


"소설 쓰러 오신 건가요? 인터뷰하러 오신 건가요?"


기자가 눈만 껌뻑였다. 더 얘기해보라는 신호였다.


"아니면 제가 우습나요?"


독기 가득한 익현의 질문에 기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답했다.


"익현씨 자네 아버지 말이죠. 어머님이 일하던 공장의 일용직 노동자였습니다. 할머니께서 말씀 안 하시던가요? 내가 익현씨 고등학교 들어갈 때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전달 안 하셨나 보군요. 그런데 그 당신 아버지가 익현씨 태어나는 걸 보고 미국으로 일하러 갔는데 거기까지 찾아온 당신 어머니를 버리셨나 보죠. 그렇게 빈손으로 귀국한 어머니와 사랑에 빠진 게 나 코치고. 당신 할머니는 어느 날 어머니가 찾아왔는데 '후레자식'이라며 내치셨죠. 왜 내치셨냐고 제가 물었을 때 할머니는 엉엉 우시면서 익현씨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한창 진로 문제로 민감한 시기에 익현씨가 어긋날까 봐. 어쨌든 그 이후로 나 코치와 어머니는 사이좋게 살았다는 뭐 그렇고 그런 얘기, 이거 못 들었나요? 잘 생각해봐요, 익현씨 프로 진출한 이후로는 나 코치가 찾아온 적 별로 없잖아요. 왜인 줄 알아요? 그 사이에 자식이 생겼거든요. 아무래도 잘 나가는 남의 자식보다 갓 핏덩이인 자기 자식이 지금 당장은 더 소중하겠죠. 잘 생각해봐요. 나 코치가 해외에 일한다고 간 게 언제쯤인지."


"개소리는 그만하고 이쯤에서 꺼져주세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죠, 익현씨. 자네 참 의문이 많은 사람이야. 프로 진출 이후 인터뷰에서 장난 많이 친 것도 그렇고 어쩌다 하면 일부러 더 돌발행동을 하는 것도 같았고요. 게다가 그토록 끔찍이 익현씨를 구박했던 코치 있잖아요. 김성한 코치 아시죠?"


김성한 코치는 익현을 구박하며 운동장 뜀박질만 시키던 코치였다. 익현은 뜻밖의 이름에 입속에서 혀를 어금니로 깨물었다.


"그 김성한 코치가 몇 년 전에 죽었죠. 강릉으로 바다 낚시를 갔다가 소식이 끊겼는데 여전히 풀지 못한 실종 사건으로 남겨진 상태고요. 그때 소식 들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막 프로 선수가 됐을 때 아닌가요?"


익현이 침묵했다. 기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제 말은 익현씨가 뭐 알고 있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 코치가 세상에 없다고 했을 때, 이렇게 익현씨가 잘 나가는 걸 보여줄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어땠냐 하는 거죠."


익현이 이성을 잃었다. 그 자리에서 기자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옆에 있는 카메라 기자가 겨우 뜯어말려 익현을 떼어냈다.


"시시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척하고 뭔가 하지만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너네 같은 사람들이 난 싫어."


익현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집을 뛰쳐나갔다.


며칠 뒤 익현을 인터뷰한 이 매체는 '축구 스타 익현의 뿌리 없는 헛발질'이라는 장문의 기사를 취재 후기 형식으로 보도했다.




[취재후기] 축구 스타 익현의 '뿌리 없는 헛발질'


지난 27일 경찰에 체포된 축구선수 이익현(22)은 '악마의 재능'으로 불렸던 선수다. 만 19세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 그는 막대한 계약금을 받고 ㅇㅇ에 입단해 데뷔 시즌부터 득점왕(22골)에 오르는 등 한국 축구의 기대주로 성장했다. 입단 당시 ㅇㅇ구단은 "익현에게 규정에 따라 1억원의 계약금을 지급했다"고 설명했지만 축구계에서는 10억 이상의 돈을 일시금으로 지급했을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이익현이 입단 직후 서울 강남구 모처에 아파트를 산 것과 관련한 추측인데 실제 이 아파트 집값은 12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시즌을 국내 최고의 선수로 군림한 그는 2년 전 영국 무대로 건너가 올 시즌 완벽한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프리미어리그 38경기 중 36경기를 소화하며 15골을 터뜨렸다. 이는 아시아인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기 시작한 이래 단일 시즌 최다 골이다.


그러나 이익현은 예전부터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자주 사양해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낸 선수였다. 어쩌다 취재진 앞에 서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오묘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어 팬들 사이에서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던 찰나에 본지는 지난 20일 이익현과의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켰고 그 과정에서 전달하기 힘든 상황을 목격했다.


현재 잠적 일주일 만에 경찰에 체포된 이익현은 4년 전 사망한 강릉 실종 사고의 피해자인 김성한(당시 48세)씨의 사체를 유기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취재진에 익명을 요구한 경찰 관계자는 "축구 선수 이익현이 김성한씨의 사체를 냉동 보관 형식으로 자신의 아파트 방에 방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조만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안은 본지가 이익현의 자택에 찾아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며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이익현은 인터뷰 도중 질문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을 박차고 나갔다. 해당 기자는 그 직후 이익현과 수차례의 전화 연결을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더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취재진은 축구 선수 이익현의 상징성을 고려해 집안 모습을 담아가겠다는 취지로 안방과 세 개의 방을 열어 사진을 찍었다. 안방부터 두 번째 방까지 침대, 운동기구, 각종 트로피들이 있었으나 세 번째 방안은 조금 독특했다. 거기엔 대형 냉장고가 있었으며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취재 기자가 안을 열어 본 순간 과거의 사건이 은폐된 현장을 접하고 말았다.


해당 기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운동선수에게 필요한 아이싱 팩이나 이온음료 등이 대량으로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열었다"며 "지극히 사적인 것이 들어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령 보도하지 못할 수준의 사적인 것이 들어있다면 감춰주겠다는 마음으로 열었지만 지금과 같이 비상식적이고 끔찍한 내용의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익현은 집을 박차고 나간 직후 일주일 동안 누구와도 연락되지 않았다. 그러다 잠적 일주일 만에 집 앞 현관문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주민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체포했다. 체포 당시 이익현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으며 체포 10시간이 넘은 시점까지 "너흰 그래서 시시한 거다. 난 그래도 큰 집에서 사는 꿈을 이뤘다" 등의 이해하기 힘든 말만 늘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매니저인 황호일씨는 이번 사건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한 명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익현이 잠적한 시간부터 지금까지도 취재진은 그와의 연락이 끊긴 상태다. 경찰은 황호일씨가 이익현의 이런 행위를 알고도 모른 척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평소 이익현과 관련한 논평을 자주 했던 정한철 한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선수로서 그의 플레이를 보면 아름답다는 미학적인 느낌까지 들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분명 그의 언행은 축구 선수로서의 재능만 아니면 진즉에 사회 부적응자가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체 유기와 같은 행위는 그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때 세상과 연결된 하나의 연결고리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지금으로선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는 게 가장 빠른 궁금증 해결책이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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