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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pr 10. 2022

(단편소설) 바람 부는 날엔 마카오에 가야한다

1.



‘설마 저 아저씨들 옆이 내 자리?’


비행기에 올라 비상구 옆 좌석에 갔다. 내 앞엔 덩치 큰 아저씨 둘이 사이좋게 떠들며 앉아 있었다. 한 아저씨는 머리가 벗어졌는데 비교적 동안이었다. 다른 아저씨는 수염을 덕지덕지 기른 채로 연신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렸다. 아이패드 안에선 클로버, 다이아몬드, 하트 무늬 카드가 현란하게 움직였다. 애석하게도 스페이드는 못 잡는 것처럼 보였다. 그제야 나는 내가 마카오행 비행기에 올라탔다는 걸 실감했다.


누군가에게 마카오는 아시아와 유럽 문화가 섞인 볼거리 천국일 것이다. 누군가에겐 홍콩 가는 페리가 있으며 에그타르트와 딤섬 같은 먹거리 가득한 아름다운 섬일 수도 있다. 반면 누군가에게 마카오는 카지노 천국이자 한 방의 쾌감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일 테다. 아마도 이 아저씨 둘은 마지막 부류에 가까울 것이라고 나는 그들이 쳐다보고 있는 아이패드 카드에서 유추했다.


한편으론 항공사 직원에게 비상구 자리를 달라고 한 걸 후회했다. 나는 저가항공을 탈 때마다 비상구 자리를 달라고 의례적으로 요청해왔다. 앞좌석과 공간이 다른 좌석들보다 넓어 다리를 조금이라도 뻗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런 덩치 아저씨들과 함께라면 다리는 조금 편할지언정 어깨가 불편할 게 확실했다. 벌써 습기 가득한 마카오 현지 공기를 들이쉰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실례합니다. 잠시만 안으로 들어갈게요."


머리가 시원한 아저씨가 나를 쳐다봤다. 아이패드 아저씨는 그냥 계속 그 일을 프로처럼 했다. 그렇게 창가 자리에 들어가 앉은 순간 나는 이 아저씨들이 나를 체포해 구석으로 몰아넣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크 롤랜즈가 쓴 <철학자의 늑대>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지만 솔직히 이 아저씨들의 아이패드 때문에 집중해서 읽지는 못했다. 그렇게 인천공항에서 마카오 국제공항으로 가는 밤 9시 40분 비행기가 이륙했다. 나는 비행 중간 승무원에게 펜을 빌려 억지로라도 책에 집중하려 밑줄을 긋는 등 독서를 위한 노력을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독서등을 끄고 몸과 머리를 창가 쪽으로 기댄 뒤 눈을 감으면서 나는 비로소 덩치 아저씨들의 아이패드 불빛과 작별할 수 있었다.


착륙을 알리는 방송에 눈을 떴을 때 여전히 아이패드는 카드를 섞고 있었다. 덩치 아저씨 둘은 마치 처음 본 그 모습을 복사 붙여 넣기 한 것처럼 다정히 화면을 바라본 채 심각했다.


'당신네 여행도 목적 그대로 안녕하길.'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채 절반도 읽지 못한 책을 가방 속에 넣었다. 이제부터는 내 앞에 펼쳐진 마카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약간의 설렘과 쪽잠을 연료 삼아 덩치 아저씨 둘을 제치고 비상구 자리에서 가장 먼저 몸을 움직였다.


3시간여를 하늘에서 보낸 후였다. 하지만 1시간을 자면서 벌었다. 마카오는 한국보다 1시간 느렸다. 애초 숙소를 잡지 않고 출발한 여행이었다. 현지 시각으로 새벽 1시쯤 도착한 나는 이제부터 졸음에 굴복하는 순간 여행은 끝이라는 비장한 다짐을 하고 또 했다.


마카오에 도착한 날 새벽 1시부터 꼬박 놀고 다음 날 새벽 1시 비행기로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말이 2박 3일 여행이지 실제론 무박 노숙에 24시간 만 하루를 마카오에서 보낸 뒤 곧장 귀국 비행기에 타면 됐다.


철저히 내가 결정한 거였다. 여행 계획 단계부터 숙소를 잡기에는 모호한 일정이라고 판단했다. 주머니 사정 얇은 내겐 최대한 아껴서 짧고 굵게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젊다고 자신했다. 그렇게 무박 노숙 마카오 여행이 닻을 올렸다.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마카오 가이드북은 출발 전 인천공항 휴게실에 누워서 다 읽었다.


유네스코 문화재인 세나도 광장, 기아 요새, 상원의원, 세인트 폴 대성당, 몬테 요새, 성 아고스띠노 광장, 각종 호텔과 카지노, 에그타르트, 딤섬, 면 요리 등등 온갖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머릿속에서 파노라마를 그렸다.


마카오는 서울 면적의 1/25에 불과하다고 가이드북은 설명했다. 걸어서도 하루면 충분하다는 걸 책에서 배웠다. 나는 마카오에서 움직일 나의 동선을 몇 차례 시뮬레이션해봤다. 마카오를 내 주관에 따라 받아들이는 건 돈과 시간 모두에서 전혀 문제가 안 됐다.


새벽에 도착했으니 당연히 처음 할 일은 그렇게 멋지다는 마카오 야경을 확인하는 거였다. 그전에 커피나 에너지음료를 몸에 들이부어 내일 혹은 모레의 나를 소환해 그 에너지를 끌어다 쓰자고 결정했다.


공항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들이 여러 개 보였다. 그중 제일 왼쪽 문 앞에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한국어로 각종 재료 표기가 된 스타벅스 캔커피가 나를 반겼다. 기쁜 마음에 성큼 집어 점원에게 홍콩달러로 계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점원은 아무 말 없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비자카드로 계산하겠다고 했더니 카드 리더기가 없다고 잘랐다. 그럼 도대체 어째야 하냐고 되레 물었더니 마카오 돈만 된다고 했다. 시작부터 힘이 빠졌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짧은 영어로 따지든가 조용히 캔커피를 원래 있던 곳으로 가져다 놓는 거였다. 그런데 아무리 짧은 영어로 따져도 그 끝은 가져다 놓는 것일 게 분명했다. 점원의 인상은 전 세계 공통 근로자의 표정인 퇴근을 앞둔 직원의 얼굴 모습 그대로였다. 내 경험으론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근로자 대다수는 고용주가 아니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무적 상태였다.


선택지는 하나로 줄었다. 무박 노숙 여행이니 힘을 아끼는 측면에서 조용히 캔커피를 원상 복구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이는 내가 카지노에서 생수를 구걸하기 전까지 무려 4시간 넘게 아무것도 마시지 못한 악재의 시초였다.


그렇게 공항 문을 박차고 나온 순간 나는 4년 넘게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문 것처럼 동공이 커지는 걸 느꼈다. "흡"하는 쉰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정도로 마카오의 습한 공기가 입을 타고 목구멍을 통과해 폐 저쪽 구석에 들쩍지근하게 달라붙었다. 예상보다 더 습한 마카오 밤공기의 급습에 놀랐다. 그래도 인간의 적응력은 위대하니 준비 운동만 잘하면 금방 익숙해질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 준비운동으로 나는 공항에서 저 멀리 보이는 화려한 조명의 호텔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비록 날이 어두워 무섭기도 했지만 어디서 들은 마카오의 안전한 치안을 믿고 마카오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카오는 '마카오 반도'와 '타이파섬'으로 나뉘어 있다. 이 섬들 사이로 두 개의 다리가 지난다. 그리고 마카오 국제공항은 타이파섬에 있다. 이 타이파섬에는 요즘 막 짓는 호텔들이 즐비하다. 베네시안, 크라운, 시티 오브 드림즈, 코타이 센트럴, 쉐라톤, 콘래드 등 비교적 새로 생긴 호텔들이 화려한 조명을 자랑한다. 그러니까 내가 공항에서 내려 불빛들을 따라 불나방처럼 걸어간 곳은 이 호텔 거리였다.


공항에서 20분 가까이 걷다 보니 요즘 마카오에서 가장 인기라는 베네시안 호텔이 나왔다. 이 호텔을 시작으로 다른 호텔들까지 그 안팎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새벽이 다 갔다. 각 호텔마다 한국의 쇼핑몰처럼 다양한 볼거리와 쇼핑센터가 즐비했다. 카지노는 없는 호텔이 없었다. 심지어 호텔과 호텔들도 건물 실내 길로 이어져 있어 밖을 돌아다닐 일도 많지 않았다.


휘황찬란한 야경과 각 호텔의 카지노 덕분에 나의 마카오 첫새벽은 그 누구의 낮보다 밝았다. 가끔 심각하게 야한 옷차림을 한 여자가 다가와 "먀아샤아지이?"라고 했지만 그게 뭘 뜻하는지 알기에 텅 빈 내 양쪽 바지 주머니를 뒤집어 까서 보여주고는 내 길을 걸었다.


비록 캔커피 거절 이후 갈증과 함께 걷고 또 걸었지만 마카오의 황홀한 야경은 피곤함을 잊을 만했다. 몸은 조금 고됐지만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호수와 조명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밑그림이 풍성했다. 절망적일 정도로 습한 실외와 천국과도 같은 쾌적한 실내의 대비가 마치 두 개의 전혀 다른 시공간을 오가는 것처럼 오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도대체 마카오는 이렇게 거대한 실내 냉방을 어떻게 가동할까? 그런 의문 속에서 여기저기 들어갔다 나왔다 신나게 움직였다. 비록 카지노 게임은 하지 않았지만 여러 기계 앞에도 앉아보면서 잠시 다리 휴식을 하기도 했다. 카지노 기계에 USB 케이블을 연결해 휴대폰 충전을 하기도 했다. 잠깐 카지노 주변을 둘러보는데 저기 어디서 아이패드 아저씨들의 칩 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새벽 5시가 됐을 때 나는 어느 호텔의 한 식당에 가서 딤섬과 그곳 직원이 추천해주는 망고가 들어간 국도 아니고 탕도 아닌 요리를 아침으로 먹었다. 점심은 세나도 광장에서 에그타르트를 먹고 저녁은 면 요리를 먹겠노라고 다짐했다. 거스름돈은 기필코 마카오 돈으로 받아 비행기 타기 전 늦은 밤에는 다시 공항 세븐일레븐에서 캔커피를 살 것이라고 승부욕을 발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리 따져 봐도 항공권 외에는 쓸 돈 없이 알뜰살뜰한 여행이 완성될 거라고 상상하며 웃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이 정말 산산이 깨질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어느 호텔 로비에 소파에 앉아 잠시 졸며 단잠에 빠졌다.



2.



나를 깨운 건 호텔 직원이었다. 로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직원이 와서 현지어로 말을 걸었다. 대충 눈치를 보니 여기서 잠자면 안 된다는 말 같았다. 알았다고 손을 들어 보이곤 시계를 봤다. 아침 7시였다. 40분 정도 졸았으니 적당히 머리는 한 박자 휴식을 취해 맑아진 후였다.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마카오 전역을 둘러보자고 다짐하고 발걸음을 뗐다.


호텔 로비에서 나오니 공항에서 나왔던 때처럼 또 "흡"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습한 공기가 목구멍을 지나 폐 한구석에 다시 들러붙었다. 공기를 기준으로 전혀 다른 두 개의 시공간이 공존하는 마카오의 실내와 실외에 재차 놀랐다. 그런데 진짜 놀란 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었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돌아다녔다. 택시와 버스가 와이퍼를 연신 돌리며 운행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마카오 일정인데 비가 온다는 사실에 우울했다. 30분을 하늘만 관찰했는데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다시 실내로 들어와 온갖 문 닫은 실내 상점 거리를 쏘다니며 이 호텔 저 호텔을 옮겨 다녔다. 그러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돌파할지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가 프랑스 파리 에펠탑을 중심으로 한 '파리지앵' 호텔에서 우중충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이대론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비에 굴복해 새벽녘처럼 실내만 돌아다니느니 비를 맞더라도 계획했던 동선을 실행하자고 결단 내렸다.


이 결단에 따르면 내 첫 목적지는 지금 있는 타이파섬에서 택시를 타고 다리를 건너 또 다른 섬인 마카오 반도로 들어가야 했다. 그래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마카오 관광 1번지라고 불리는 세나도 광장을 보고 그 근거리에 있는 모든 볼거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세나도 광장은 포르투갈 식민 역사가 만들어낸 이국적인 풍광이 시작되는 관광 첫 출발지다. 주변은 옛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돼 '중국 속의 작은 유럽'으로 통하는 곳이다. 이곳에만 도착하면 나머지 장소들은 걸어서 전부 훑어볼 수 있다고 나는 계산했다. 나는 그곳에서 점심까지 해결한 뒤 다시 공항이 있는 타이파섬으로 오후에 돌아와 귀국 때까지 나머지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 한 동선에서도 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내 이런 사고 과정이 이뤄지는 동안에도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거세졌다는 게 유일한 불안 요소였다.


호텔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기사에게 아무리 세나도 광장을 가자고 영어로 말해도 알아듣질 못했다. 마카오가 생각보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라는 건 이미 새벽 거리를 활보하며 인지한 터였다. 결국 가이드북 지도를 펴서 세나도 광장 지점을 가리키며 이곳이라고 알려주자 택시기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어를 랩 수준으로 다다다다 내뱉었다. 내게 들리는 단어는 "따이뽀" 하나였다. 나는 '그래, 여기 지금 있는 곳이 타이파섬'이라고 생각하며 이 아저씨가 지금 타이파섬을 설명하는 것이라고만 이해했다. 그런데도 택시기사는 움직일 줄 몰랐다. 심지어 뒷좌석에 탄 나보고 내리라는 손짓까지 했다. 나는 한국말로 "뭐 이따위 승차거부도 다 있느냐"라고 혼자 투덜대면서 홍대 클럽에서 새벽에 나와 온갖 택시기사들에게 차이던 젊은 날을 떠올렸다.


그렇게 택시에서 내쫓기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호텔 직원이 다가왔다. 그리곤 내게 말을 걸었는데 주의 깊게 들어보니 "타이푼"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타이푼? 태풍? 태풍이라고? 새싹에 불과했던 불안 요소가 어느새 빗방울을 먹고 자라 큰 나무로 우뚝 서 있는 분위기였다. 재빨리 와이파이가 터지는 호텔로 들어가 검색창에 '마카오 태풍'이라고 쳤다. 홍콩과 마카오 일대에 태풍이 왔다는 뉴스가 속보로 떴다.


호텔 로비에서 졸다가 막 깨어났을 때처럼 멍했다. 첫날이자 마지막이자 지금 막 시작한 마카오 관광이 태풍에 휩쓸려 저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기분이었다. 어디선가 덩치 아저씨 둘이 아이패드를 한 손에 들고 나를 향해 낄낄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아저씨들은 태풍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낮인지 밤인지도 모른 채 카지노에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겠지?


멍청히 있던 순간을 깬 건 내면의 목소리였다. "야, 여기까지 와서 세나도 광장도 한 번 못 가보면 넌 아이패드 아저씨들보다도 못한 바보 관광객이 되는 거야. 그럴 거면 차라리 겁쟁이처럼 실내로 들어가서 카드게임이라도 하든가? 뭐니 이게 지금."


저 가슴 한구석에서 알 수 없는 실체가 자존심을 건드렸다. 태풍이고 뭐고 일단 차가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은 되니 세나도 광장에 가고 말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태어나서 처음 내 손으로 산 셀카봉으로 인증샷도 찍겠노라고 승부욕을 잘게 뭉쳐 다지고 또 다졌다.


그런데 문제는 호텔 앞에 늘어선 택시 운전기사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전부 그곳에 안 가려고 했다. 이제는 내 귀에 잘 들리는 '타이푼, 타이푼'만 연신 외치면서 손으로 잇달아 엑스를 그렸다.


그래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제일 어려 보이는 운전기사를 꼬셨다. 내일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데 세나도 광장을 꼭 가봐야 한다고 그게 소원이라고 했다. 기사가 홍콩달러 500에 오케이 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이는 우리나라 돈 7만 200원꼴이었다.


택시에 타고선 일단 출발을 기다렸다. 그리곤 5분 정도 지나 호텔과 다른 택시기사 무리가 저 뒤로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사실 돈이 없어서 노숙했다고 토로했다. 제발 깎아달라고 나는 돈이 없다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끝내 홍콩달러 300까지 택시비를 깎았다. 닷새간 일부러 하지 않은 면도가 빛을 발했다. 우리 돈 4만 3000원 수준이지만 이미 모든 일정이 어그러질 분위기에서 세나도 광장 하나만은 꼭 챙겨보고 오겠다는 배짱이 그걸 상쇄하고도 남았다.


문제는 빗줄기가 계속 굵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람도 "우우우우"하고 소리를 내며 광풍을 일으켰다. 마치 자연이 우는 것 같았다. 그 울음소리와 더불어 내가 건너는 다리 옆 강인지 호수인지 모를 물들이 육지로 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택시기사는 계속 "와우, 와우"를 연발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게 영어로 "너 굉장히 싸게 가는 거야 지금"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불리한 건 못 알아듣는 척하며 넘겨버렸다.


그렇게 세나도 광장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차마 택시에서 내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창문 옆으로 가이드북에서 본 세나도 광장이 휑하게 보였지만 이제는 강력한 비바람이 된 자연의 성난 기세가 무서웠다. 그러나 돌이키기엔 이미 내지른 게 많았으며 돌아갈 왕복 택시비도 수중에 없었다. 홍콩달러 300을 놓고 내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으며 너무도 어이없이 이 날씨에 여길 오는 사람이 있느냐는 표정으로 택시기사가 나를 계속 쳐다봤다.


택시 문을 열자마자 나는 스프링처럼 세나도 광장으로 튀어나갔다. 일단 빗줄기가 내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그렇게 이끌었다. 그렇게 마주한 세나도 광장에서 나 혼자 저 옛날 마카오를 점령한 포르투갈 군인처럼 사진을 찍었다. 평소 사람 바글바글한 곳에서 구글링으론 절대 찾을 수 없는 세나도 광장 독사진을 찍었으니 이제 됐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로맨스는 잠시였고 현실은 영원했다. 나는 속옷까지 홀딱 젖었으며 양말도 신지 않은 채로 발을 넣었던 운동화는 점점 물기를 머금어 군대 시절 군화처럼 무거워졌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을 보내고 1시간 넘게 세나도 광장 인근에 갇혔다. 쓰레기통이 나뒹굴고 나뭇가지들이 부러졌다. 머리 위에 있는 환전소 간판이 흔들렸다. 안전한 시내 쪽으로 가겠다고 달리면 폭풍이 뒤에서 나를 밀었다. 옆에서 나랑 같이 달리던 아저씨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택시도 버스도 거리엔 없었다. 진짜 아주 조금 무서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포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달리고 달렸다. 4차선 도로 한가운데로 달렸다. 도보로 뛰면 머리 위에서 간판이 떨어져 수박 쪼개듯 내 머리를 반 토막 낼 것 같았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내 등 뒤를 가지로 찌르는 상상도 했다. 극한 상황에서의 공포는 정비례를 곧추세우는 상상들과 점점 자극적으로 변모하는 걱정들을 먹고 자랐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다가 겨우 허름한 호텔로 겨우 피신했다.


문제는 귀국이었다. 이미 점심을 한참 지난 시간인데 이대로는 저 다리를 건너 마카오 국제공항이 있는 '타이파섬'으로 돌아가지 못할 게 분명했다. 와이파이를 연결하니 이미 항공사에서 내일 새벽 1시 30분에 뜨기로 했던 귀국 비행기가 기상 악화 때문에 3시로 밀렸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러던 중 때마침 호텔 내 전기가 다 나가버렸다. 정전이었다. 로비 직원들은 촛불을 켰다. 나는 "캔 유 스픽 잉글리시?"만 연신 외친 채 상황 파악에 애를 썼다. 그러나 주변엔 영어와 담을 쌓고 산 사람들뿐이었다. 나도 담장 하나 정도는 치고 살았지만 이들은 아예 이 세상에 영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온 게 분명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중화사상인가. 공포감은 별의별 걱정으로까지 번졌다.


나는 대사관에 연락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겨우 알 수 있었다. 이대로는 여기서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속옷까지 홀딱 젖은 몸은 축축함 속에서 곪아가는 기분이었다.



3.



어둠 속 기아 체험이 계속됐다. 그러다 아주 잠시 태풍이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호텔 문이 열렸다. 정확히 말하면 호텔 직원들이 딴청을 피울 때 내가 탈출한 거다.


그전까지 호텔 측은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나는 마치 교도소 복역을 마치고 나온 재소자처럼 밖으로 뛰어나가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점을 찾아 거리를 활보했다. 곳곳에 꼬꾸라진 오토바이와 쓰러진 트럭과 부러진 나뭇가지와 떨어진 간판들이 즐비했다. 지구 멸망 2초 전을 보는 것 같았다.


음식을 찾기 위한 사투는 지금부터였다. 4시간을 그렇게 거리를 활보해도 영업하고 있는 음식점 하나 찾지 못했다. 심지어 저쪽 공항이 있는 타이파섬으로 가는 모든 교통편과 다리마저 전부 통제됐다는 걸 호텔 직원한테서 확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그나마 커 보이는 호텔로 가서 얌전히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조용히 앉아 힘을 비축하며 배고픔과 싸우는 것이 최선이었다. 자칫 상황이 길어지면 귀국은 둘째치고 하루 이틀 더 숙소도 없이 마카오 반도에서 노숙해야 할 처지였다.


점심과 저녁에 먹겠다고 계획했던 에그타르트와 면 요리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으로 간 지 오래였다. 빵 한 조각이라도 입에 넣고 싶었다.


저녁 8시가 다 되자 반대편 거리에 보이던 맥도널드 앞으로 인파가 몰렸다. 알고 봤더니 이제야 영업이 시작된 거였다. 나도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뛰었다. 머리가 아닌 굶주린 몸이 먼저 그렇게 시켰다. 그리곤 겨우 줄을 섰다. 굶주린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지쳐 보였다. 내 차례가 되자 웬 중국 사람이 와서 나한테 돈을 건네며 메뉴판을 가리켰는데 나는 매우 단호하게 "라인업"이라고 외치며 한국말로 욕을 덧붙였다. 이 상황에서 새치기라니 정말 약간의 힘만 있었어도 복부에 레프트 훅을 꽂았을 거다. 극한 배고픔과 공포는 사람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불만을 드러내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로 그 중국인을 노려봤다.


빅맥을 하나 막 다 먹었을 때 시계는 저녁 9시를 가리켰다. 다음날 새벽 3시 비행기는 다행히 출발이 확실했다. 이제 내게 남은 미션은 저 반대편 섬으로 어떻게든 건너가서 공항에서 쉬다가 귀국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다. 빗줄기는 많이 얇아졌으며 강풍과 온갖 것들이 쓰러진 거리만이 여전히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아무리 이 호텔 저 호텔을 다니면서 공항 쪽으로 가는 호텔 버스를 운행하느냐고 물어도 그들은 답이 없었다. 일단 영어가 통하는 사람을 찾는 게 문제였고 겨우 찾아서 몇 마디 나누면 돌아오는 대답은 "타이푼"이었다. 태풍 때문에 도시 내 모든 게 정지됐다는 뜻이었다. 단언하는데 내가 마카오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캔 유 스픽 잉글리시?"였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망할 "타이푼"이었다.


그 많은 인파 중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였다. 나중에 곱씹어보니 이 태풍에 세나도 광장 하나 보겠다고 섬을 건넌 내가 겁 없고 한심한 거였다. 안 그래도 내가 탄 택시가 그 다리를 건널 때 내 등 뒤로 차는 한 대도 없었다. 나는 말 그대로 '문 닫고' 섬에 들어온 거였다.


호텔 직원들도 내가 계속해서 교통이 언제 재개되느냐고 묻자 나중엔 건성으로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택시를 어떻게 겨우 잡아서 제발 저 다리를 건너 공항 쪽 '타이파섬'으로 가달라고 했지만 어떤 택시기사는 홍콩 달러 500을 요구했다. 어쩌면 이렇게 택시기사들의 '시가(싯가?)'는 정확할까. 또 다른 어떤 택시기사는 또 망할 "타이푼"을 외치며 갈 수 없다고 딱 잘랐다. 결국 홍콩 달러 500을 달라는 택시를 탔다면 가다가 다리 앞에서 "어라? 막혔네?" 하면서 여기까지 온 돈이나 내라고 나를 몰아세웠을 거였다. 마치 내가 세나도 광장에 가면서 홍콩달러 500에 합의했다가 300으로 깎은 것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망망대해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다. 주변에 들리는 마카오 현지어가 더 시끄럽게 신경을 자극했으며 잠을 자지 못한 여파로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러던 순간 내 예민했던 감각이 실마리를 발견했다. 저 멀리 공항 쪽 섬으로 가는 다리 위로 차가 움직이는 게 포착된 거다. 나는 얼른 다시 호텔로 뛰어들어가 몇 번이고 묻고 또 물었던 직원에게 지금 저 위로 차가 지나간다고 말했다. 이게 교통 통제가 풀린 것 아니면 뭐겠냐고 제발 똑바로 한 번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직원이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택시 불러줄까?"라고 태연히 말했다. 다만 지금 택시를 불러도 1시간은 걸릴 거라며 내 번호를 남겨두면 전화를 주겠으니 저쪽으로 가서 대기하라고 빈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그렇게 번호를 남겼지만 도무지 이들을 믿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들은 내가 한국에 올 때까지도 전화를 주지 않았다. 지금도 열심히 택시를 예약하고 있는 거라고 믿는다.


결론적으로 나는 어여쁜 젊은 여자의 업무용 고급 밴을 타고 섬에서 탈출했다. 길거리로 나가 빌어먹을 "캔 유 스픽 잉글리쉬?"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신 남발했다. 그러다가 어느 높디높은 건물에서 나오는 젊은 여자에게도 똑같이 말을 걸었는데 그녀는 다행히 매우 유창한 영어로 내 지금의 행색과 어디서 왔느냐 등을 되물었다. 오히려 얕은 영어를 쓰는 내가 알아듣지 못했으니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이 젊은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또 마카오 현지 직원에게 속아 마카오 공항 쪽 섬이 아닌 저 반대편 중국 국경으로 가는 버스 대기 줄에서 30분을 허비했다. 도무지 저쪽으로 가는 버스면 섬으로 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돼 도박하는 심정으로 줄에서 이탈해 다른 직원에게 묻자 그 직원은 "너 여기 왜 서 있어? 여기 중국 국경 구경하러 가는 버스 타는 줄이야. 너 한국 간다며?"라고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또 당했구나, 생각하며 나는 다시 거리를 헤매다 이런 구세주를 만난 거다.


이 구세주는 내게 럭키가이라며 웃어 보였다.


"난 내 손님 항공권에 문제가 생겨서 마카오 공항에 가야 해. 너 진짜 운 좋다. 나 지금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업무용 밴 불렀거든? 그거 타고 나랑 공항 가면 될 거야. 한국에서 왔다고? 나도 예전에 부산이랑 서울 가봤는데. 넌 어디 사니? 서울? 아이고 별로네. 나는 부산이 더 좋더라. 그나저나 공항 가기 전에 내 다른 손님들 카지노에서 태운 뒤 또 다른 카지노에 좀 내려줘야 해. 그것만 나랑 같이하고 공항까지 가자. 데려다줄게. 다시 말하지만 넌 진짜 럭키 가이야. 타이푼 때문에 온 도시가 마비라고 지금."


하늘에서 동아줄을 들고 내려온 이 여자는 내게 이런 말들을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MBA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마케팅을 경영했고 현재는 호텔 VIP를 대상으로 관련 업무를 하는 마카오 엘리트였다. 금융 지식이 부족해 얼마 뒤에는 홍콩에서 공부할 거라고 하기도 했다.


영어 이름은 '마가렛'이었는데 현지 이름은 '호호메이'라서 어감상 자기는 마가렛으로 불리는 게 좋다고 했다. 얼굴도 예뻐서 인기가 많을 것 같다는 말을 하려다가 지금 내 주제에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아서 접었다.


마가렛이 중간에 남자 손님들을 잔뜩 밴에 태우는 순간 이러다 어디 납치되는 건 아닌지 잠시 의심했던 적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가렛이 날 태울 이유가 없었으므로 사실 불안했다. 특히 그들 너덧 명이 현지어로 시끌벅적 떠들 때 나는 저들이 "야, 쟤 콩팥은? 간은? 타이파 섬은 무슨 내가 아는 곳으로 가자" 등등을 얘기하는 건 아닐까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공포를 스스로 키우고 또 키웠다. 그때 내 불안감이 느껴졌는지 마가렛은 내게 "너 지금 불안하지?"라고 물었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내 목소리는 이미 가야금 줄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진짜 냉정히 생각해 보면 그녀가 나처럼 한눈에 보기에도 속옷까지 다 젖은 게 분명하고 머리카락은 어디 마대 걸레처럼 아무렇게나 젖어서 찰랑거리며 수염은 아무렇게나 자란 채로 피죽도 못 먹은 것처럼 축 처진 사람을 태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진짜 '행운'이라고 밖엔 생각이 안 될 상황이었다.


카지노에 찌든 사내들을 여기저기 호텔에 내려주고 마침내 마카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가렛은 공항 문이 열리자마자 쿨하게 "오케이, 굿바이!"라고 말했다. 나는 스타벅스 캔커피가 생각나 그걸 하나 사주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괜찮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녀가 뒤돌아서서 다시 밴에 오를 때 등 뒤로 나는 분명 밝게 빛나는 아우라를 목격했다. 그 순간 내게 그녀는 자신의 멋진 업무용 밴으로 생명의 다리를 건너게 해 준 오 나의 주님이었다.


그렇게 나의 태풍과 함께한 마카오 탈출기는 막을 내렸다. 여행은 이미 탈출기가 된 지 오래였다. 온갖 긴장이 풀어진 몸은 천근만근이 됐으며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내내 30분 이상 눈을 뜨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나마 아이패드 덩치 아저씨들을 다시 만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집에 도착해 샤워한 뒤 나는 정확히 아침 8시 30분부터 다음 날 저녁 7시 20분까지 잤다. 중간에 저녁 8시 뉴스를 1시간 정도 봤는데 도무지 뭘 봤는지는 머리에 남아 있는 게 없다.


여전히 안 해도 될 경험을 한 것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고 있다. 내게 마카오 여행의 의미는 도대체 뭘까 자문해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휴식도 아니었고 체험도 아니었으며 식도락이나 볼거리 충족 등의 즐거움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다만 확실한 건 혼자 세나도 광장을 빌린 것처럼 찍은 독사진 인증샷이 내 휴대폰에 존재한다는 거다. 아마도 마카오 여행의 의미는 먼 훗날 시간이 흐른 뒤에 정의될 것으로 보인다.


만 하루가 지나 정신을 차린 뒤 마카오 태풍 뉴스를 검색해 사실을 끌어모았다. 그중 절로 쓴웃음이 난 한 신문 기사의 팩트는 다음과 같다.


'마카오 행정장관 태풍 피해 입은 주민들에게 사과. 기상청장 해임. 이번 태풍 53년 내 최악. 최소 8명 사망 확인. 200명 이상 중상. 도시 전체 정전.'


나는 53년 만의 마카오가 내놓은 또 다른 광경을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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