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장애' 여는 글] 편집위원 다연
그날 서울에서는 장애인 지하철 시위가 한창이었고, 우린 겨울호 배포를 위해 세종 캠퍼스로 향하는 무궁화호 안이었다. 실컷 달리는 열차 안 짧지 않은 여정은 지루했지만 상민이 건넨 노란 책 한 권만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 노들장애인야학(野學)에서의 활동을 그만둔 후 저자가 5년간 쓴 칼럼들을 모은 책이었다.
저자는 그중 한 칼럼에서 영화 〈어른이 되면〉 속 자매 혜영과 혜정의 삶을 전한다. 혜영의 동생 혜정은 중증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시설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혜영은 혜정을 돌보며 사는 일상을 선택한다. 무작정 시설에서 동생을 데리고 나온 무모한 언니 앞에 놓인 현실은 냉정하다. 허나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서는 왜 꼭 다른 누군가가 그토록 애쓰고 포기해야 하는지 답해주지 않는 세상으로 뛰어든 다정한 언니는, ‘동생을 시설로 보낸 대가로 얻어진 시간이 아닌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고백한다.
혜정이를 돌봐야 했던 어린 시절,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혜정이가 시설로 사라졌을 때 내게 찾아온 것은 자유가 아니었다. 그저 혜정이의 빈자리가 마음속에 동그랗게 남아있었다.[1]
저자는 그 영화를 마음속 ‘동그란 빈자리’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의 동그란 빈자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타인을 위해 자기를 온전히 내어주고 동시에 진정한 자기다움을 찾기 위해 충분히 애쓰는 존재들을 보면 시큰시큰 아파오는 자리.
너무나 분명하게 비어있지만 조금씩 드리우는 고마운 빛 덕에 때때로 충만케 느껴지기도 하는 자리. 그래, 나에게도 그 동그란 빈자리가 존재하지, 이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든 나는 하루만에 내 안에도 자리하는 그 빈자리의 크기보다 조금 더 큰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다음날 만난 친구는 시위로 인한 지하철 연착으로 계절학기 중간고사를 망쳤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의 속상함에 공감했지만, 친구의 분노—어쩌면 혐오— 가 끝내 향하는 곳에는 가벼운 외출은커녕 작은 햇빛과 바람조차 허락되지 않은 이들이 존재할 수도 있음을 알기에, 그 날선 말들을 받아내는 내내 나는 가슴을 졸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짜증내지 않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행동이 정당한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명확한 답을 내기를 주저하는 내 모습에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친구의 말과 나의 망설임만큼이나 아팠던 건, 그들을 비난하기 위해 그들의 몸이나 정신에 존재하는 손상 자체를 가져오는 것도 모자라 그 손상만으로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 사람들의 오만함이었다. 불행히도 장애인에 대한 많은 비장애인의 관심사는 장애인의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는지 아닌지, 장애를 가진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장애를 ‘치료’하고 ‘교정’해보려 고군분투해 본 적이 있는지 등에 불과하다. 하지만 장애인의 세계는 그들이 안고 있는 손상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으며, 그들 역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우주를 품고 살아간다.
허나 그 우주 도처에는 그들의 가슴을 흉지게 하는 것들이 널렸다. 장애인은 여러 방식으로 낙인찍힌다. 그 낙인의 징표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과 음성에서, 그들을 함부로 오해하는 활자와 미디어 속에서, 그리고 그들을 배제하는 공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설이 묻어버리고 약과 함께 삼켜지는 장애인의 신음과 절규는 방음설비가 완벽히 갖춰진 세상의 사각지대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시설과 약은 장애가 영원히 장애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의 생산기제이자 결과물이다. 애초에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는 경계조차 비장애인의 발명품이니.
‘장애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소리치는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크지는 않은가 내심 놀라곤 했다는 저자와는 반대로, 나는 우리의 목소리가 너무 작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고 물었을 때에, 진보적 장애인 운동과 HIV 감염인과 정신병의 규정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집실에서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랬듯 한 권의 책이 되어 봄을 맞았다. 하나하나의 광활한 우주와도 같은 나와 당신의 삶을 모두 설명할 수도, 대변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글이 새로운 물결을 위한 아주 작은 파동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다시, 나의 동그란 빈자리를 들여다본다. 그 빈자리는 온전히 시혜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진 학창시절 봉사활동에서 느꼈던 씁쓸함이었고, 당신의 세계를 어렴풋이 추측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서 오는 자책이었으며, 저항하고 연대하는 이들을 보며 울컥울컥 올라오는 어떤 책임감이었다. 당신의 고통과 저항에 대해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그 자리엔 여러 번 생채기가 났지만 그럼에도 늘 비워둘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빈자리를 채워줄 것들을 위해 소리 내어본다. 당신을 끊임없이 상상하며, 우리가 비관하는 모든 것이 놀랍도록 바뀔 때까지.
[1] 영화 〈어른이 되면〉 속 혜영의 내레이션
참고문헌
단행본
홍은전 (2020). 그냥, 사람. 봄날의책.
영상자료
장혜영 (2018). 어른이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