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更年期)는 말 그대로 새로움의 시기다. 뭐가 새로워진다는 걸까? 이름이 이상하기로는 사춘기(思春期)도 비슷하다. 봄을 생각하는 시기라는데 왜 이런 명칭이 붙었을까 궁금하다. 갱년기나 사춘기의 어원을 찾아봐도 속시원한 답이 없다. 이렇다면 상상과 추론으로 꿰어 맞추는 수밖에 없다(사춘기에 대해서는자녀 얘기를 주제로 다음 편에서 쓰겠다).
갱년기. 네이버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 대개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데, 여성의 경우 생식 기능이 없어지고 월경이 정지되며, 남성의 경우 성기능이 감퇴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남녀 모두 생식 능력이나 의욕이 감퇴하는 방식으로 '새로워지는' 거다. 좀 이상하다. 흔히 새롭다는 건 좋게 변한다는 뉘앙스인데 감소하고 퇴화하는 갱이라니... 연관 검색어는 장애, 우울증 등이다. 생동감이나 생명력과는 반대 방향이다.
생물인 인간이 생명력을 잃어간다는 것은 우울한 일이다. 얼마 전까지 가능했던 것들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움을 주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으로 시작하는 회한과 아쉬움은 당연하다. 하지만 인간은 무조건 좋거나 무작정 나쁜 것으로만 설계된 건 아닌가 보다. 중년의 단계는 인생에게서 생동감을 빼앗지만 통찰력을 선물한다. 세포는 퇴화하지만 경험으로 축적한 재료는 지혜의 근간이 된다.
작년에 작고한 이어령 선생은 인생의 단계를 관심, 관찰, 관계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설명한다. 어린 시절, 젊은 시절엔 자신의 관심사에 이끌려 산다. 청년은 팽창의 시절이다. 나의 관심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탐험한다. 중년에 이르러서야 내 관심이 아닌 것도 관찰하는 힘이 생긴다. 노년은 관심 추구와 관찰 결과가 관계라는 그물망으로 남는 시기다.
이어령 교수는 죽음을 '저녁이 되어 다 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에 비유했다.
대상을 관찰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받아들이는 능력은 이전 삶의 단계에서는 갖기 힘든 능력이다. 나도 그랬다. 돌아보면 사십을 넘어서야 나 아닌 것에서도 나를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중년들이 상실만 아쉬워할 뿐 새로 얻게 되는 능력은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과거에 가졌던 팽창의 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중년 세월을 허비하기도 한다. 나이 먹는 걸 싫어하면서도 젊은이들의 무정형(無定型)을 못 견디는, 이중적인 꼰대 아저씨들도 있다.
흰머리 생성과 근육 퇴화를 대가로 얻은 능력을 활용할 줄 알아야겠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할 것이 아니다. 새롭게 넓어진 시야로 보아야겠다. 한물 간 스타의 한숨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누리자. 그리하여 아랫 세대에게 꽉 막힌 답답함이 아니라 유연함과너그러움을 느끼게 하면 좋겠다. 갱년이라는 별명은 이렇게 새로워지라는 뜻 아닐까? 그러니 아직 새로운 단계를 받아들이지 못한 아저씨가 있다면 잘 어르고 달래서 갱생의 길로 인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