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랜 인류의 숙원, 소울푸드 3D 쿠커를 발명했습니다.이제 집에서 자신만의 최애 음식을 간편하게 만들어 보세요. 요리는커녕 사실 조리랄 것도 없답니다. 재료를 넣고 설계 명령을 입력하면 물건이 나오는 3D 프린터와 비슷하지만 훨씬 간편합니다. 블루투스로 쿠커와 연결된 스마트기기의 앱에 원하는 음식과 가장 비슷한 사진을 올리면 끝.
식재료는 어떻게 하냐고요? 저희 제품은 폭넓은 전 세계 네트워크망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마치 인터넷뱅킹으로 돈을 주고받듯이 쿠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끼리 식재료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고요? 피아노도 네트워크로 원격 연주가 가능한 시대입니다. 이걸 보세요.
스타인웨이 원격 연주 뉴욕의 피아니스트가 예술의 전당 피아노의 건반을 누를 수 있지요. 임윤찬의 베를린 공연을 서울에서 감상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Why not food?
저희 쿠커를 이용하는 수십 만의 소비자들은 남은 식재료를 코드화해서 저장합니다. 전자화된 이 자산은 그러나 개인 소유가 아닙니다. 제품을 쓰는 모든 사람의 공동 식재료가 되는 것이죠. 가령 A가 바질 세 잎을 남겼다고 칩시다. B는 파스타를 만들 때 바질이 필요합니다. A가 저장한 바질 코드는 B에게 넘어가 미각 신호로 변환됩니다. 밀가루, 달걀, 치즈, 각종 양념 등 모든 식재료가 이렇게 모여 조리가 진행됩니다(물론모든 과정은 여러분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영혼의 토대, 음식
음식은 중요합니다. 써놓고 보니 이상한 문장이군요. 살기 위해 먹어야 하니까 당연한 말 같지만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 음식은 우리 영혼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유물론자가 아니어도 투입물과 생산물의 밀접성은 이해하실 겁니다. 먹고 마시는 내용이 우리의 존재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영역과 정신의 영역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 둘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결코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가령,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멋진 교향곡들은 그가 먹은 음식, 마신 공기, 입은 옷의 촉감, 살았던 집의 분위기, 여행지에서 본 풍경 들의 총합입니다. 지금의 당신 역시 인생 내내 흡수한 모든 물질의 적분이라 할 수 있죠.
이렇게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떻게 사느냐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2024년 1월 1일입니다. 이 순간에도 많은 결심과 다짐과 각오, 약속 들이 언급되고 있을 겁니다. 마음속으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다이어리에, 헬스장 가입서에 새겨집니다.
이때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목표로 삼지 마세요. 가령, 부지런해지자, 더 나은 사람이 되자, 약속을 잘 지키겠습니다 따위.. 우리의 멘탈은 결과이고 종속변수이지, 원인과 독립변수가 아닙니다. 흡수할 물질과 그걸 받아들이는 감각에 집중하세요.그니까 여유롭게 살자 대신에 30분 이내에 식사를 마치지 말자로 바꾸세요.
훌륭한 결심은 먹으면서 하는 것
덜 먹는 결심을 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결심도 소울푸드를 드시면서 하라고 권하고 싶네요. 저희 제품을 팔려는 얄팍한 상술이 아닙니다. 내 영혼을 이루는 음식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더 맑아지는 영혼을 느낄 수 있습니다.닥치는 대로 먹는 걸 소울푸드가 막아주기도 합니다. 다이어트에 오히려 유용하지요.
또 하나. 무얼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혼밥도 좋고 회식도 좋습니다. 혼자라면 나 스스로에게, 같이라면 상대방에게 집중해 보세요.음식을 나눠야 비로소 마음이 공유되는 것입니다.
당신 입맛에 최적화된 쿠커
아, 사양 설명과 사용법을 빼먹었군요. 저희 쿠커는 전자레인지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라지 사이즈 피자보다 부피가 큰 음식은 만들지 못해요. 앱에서 원하는 음식 사진을 업로드하고 쿠커 전면의 미각 리시버에 입김을 붑니다(하품도 좋고 트림도 상관없어요). 당신의 입맛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메뉴에 따라 다르지만 최장 20분 이내에 여러분이 원하시는 음식이 완성됩니다. 육해공 한중일서양 가릴 것 없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드립니다. 아, 주의사항. 영혼 soul 푸드인 만큼 희소가치 유지를 위해 자주 쓰지는 못합니다. 한 달에 한 번만 가능해요. 많은 관심과 주문 부탁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다음 주에 저는 잡념 흡입 진공청소기를 가지고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