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 흡입 진공청소기

'잡'이라며 폄하하기 전에

by 이지완
제품 소개


오늘 소개할 발명품은 잡념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입니다. 우리 모두는 잡념에 시달립니다.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정작 중요한 문제를 놓치거나 집중하지 못합니다. 저희 제품은 이런 잡념을 아주 간편히 정리하는 프로그램, 정확히는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사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우선 스토어에서 다운로드하여 스마트기기에 설치하세요. 회원가입과 로그인을 거치면 앱이 구동됩니다. 실행을 누르고 이어폰(유무선 상관없어요)을 당신의 관자놀이에 댑니다. 스마트 기기에서 간단한 조작으로 잡념이 쌓였던 시간과 흡입강도를 조절할 수 있어요. 정해진 시간이 끝나면 잡념이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잡, 헛의 재발견


앱 개발을 하기 전에 저희는 잡념에 대한 개념부터 생각했습니다. 섞일, 생각 念, 말 그대로 섞인 생각입니다. 영어로 검색해 보니 단어는 없고 distracting thoughts (산만하게 하는 생각) 정도로 풀어서 번역되더군요. 프랑스어로는 pensées vaines, 헛생각 정도로 표현됩니다.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중요한 생각이 있다,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다른 게 섞인다, 산만하게 된다, 중요한 생각을 망친다, 그러므로 잡념을 걷어내야 한다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런데 꼭 그런 걸까요?


생각을 확장해 보겠습니다. 잡담雜談은 어때요? 누군가와 잡담을 하면 죄책감을 느낍니까? 만나서 용건만을 말해야 한다면 숨 막히지 않을까요? 잡초雜草는 뽑아 마땅하죠. 그러나 잡초 역시 작물이라는 사람의 이해관계 틈에서만 악입니다. 그 자체로는 생명인 것이죠.


잡스러움은 어쩌면 창조의 원천일 수도 있습니다. 창의력이 서로 다른 요소의 결합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죠. 통섭이나 크로스오버라고도 합니다. 머리가 복잡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런저런 잡념 없이 새로운 생각을 만들기는 불가능합니다. 동료와 커피 한 잔, 맥주 한 캔 놓고 잡담하다가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지요.


슬기로운 잡념 생활


그렇다면 잡념 흡입 진공청소기는 무슨 소용이냐고요? 저희는 잡념을 무가치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악-배출-정화가 아닙니다. 차면 비워주는 생산물에 가깝습니다. 오랜 기간 쌓인 전자파일을 휴지통에 넣거나 비우는 과정과도 비슷합니다.


심지어 먼지도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먼지 없이 완벽히 청결한 환경은 오히려 호흡기에 더 해롭습니다. 코와 폐의 기능이 발달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잡념도 채움과 비움의 공정을 통해 우리의 정신을 선순환시키는 것입니다.


몰두와 집중이 필요할 때 이 앱을 쓰세요. MBTI로 치면 J모드가 유리할 때 저희 제품이 빛을 발합니다. 사고를 확장하거나 떠돌이 생각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잡념을 키우세요. P모드지요. 두뇌에 폭풍이 필요한 brain storming 때도 이 앱을 멀리하세요. 늘 창의적이거나 항상 정갈한 때는 없습니다. 적당한 흐트러짐에서 반짝이는 생각이 떠오르고 적당한 집중이 있어야 삶이 질서를 갖습니다.


아무쪼록 집중과 이완, 수렴과 발산, 몰두와 휴식이 균형 있는 생활을 영위하시길 바랄게요. 다음번엔 불면증 파쇄기를 들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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