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더리 빨래터 모임

"어쩌면 사랑은 갈등과 아픔으로 가득 차 있는 바다와도 같아"

by 이지완

일주일에 두 번 스튜디오로 쓸 때를 제외하고 오명 코인 빨래방은 정상 영업을 했다. 오피스텔 입주자들이 주된 고객이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대로 건너편 대단지 아파트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왔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빨래방이라는 소문이 퍼졌던 것 같다. 사업을 담당하는 박하영 씨 말로는 유튜브 잘 보고 있다는 인사를 건네는 손님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었다.

빨래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임을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쉼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인테리어에 신경 썼기 때문이리라. 가족이나 이웃끼리 시간을 맞춰서 빨래거리를 들고 와서는 티테이블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에스컬레이터로 이어진 아래층에 카페가 두 곳이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빨래방 안에 음료를 비치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세탁기를 돌려놓고 1층에서 음료를 사 왔다. 승아의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부산의 산복 빨래방과 취지는 조금 다르지만 휴식과 소통의 역할은 비슷한 셈이었다. 음악이 흐르는 카페보다 수다 떨기에 더 낫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묵직한 중저음의 세탁기와 건조기 소리, 그 안에서 찰랑거리는 물소리, 띠링띠링거리는 작동음과 알림음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는 게 이유였다.

박민아 의원과 손지향 간호사 촬영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박하영 씨가 웃으며 노란 포스트잍을 내게 건넸다.

‘정지강 대표님을 저희 빨래터 모임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캘리그래피라고 해도 될 정갈한 글씨였다. 박미현이라는 이름과 함께 핸드폰 번호도 쓰여 있었다. 물어보니 자주 오는 손님인데 몇몇 단골을 규합해 모임을 하고 있는 여자라고 했다.

“피디님도 참여해 보시면 어때요? 우리 손님들을 만나는 것도 마케팅에서 중요한 부분이에요. 편집자를 둘이나 고용했으니 편집 부담도 줄었잖아요.”

나보다 두 살 많은 박하영 씨는 아이 셋의 엄마였다. 막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단절된 경력을 이어보겠다며 합류했다. 첫 아이 출산 전까지는 홍보 회사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었다.

“말이 좋아 홍보 회사지 거의 심부름센터였어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건 다 해야 했다고요. 전봇대에 전단지 붙이기, 인터넷 게시판에 홍보 글 올리기, 부정적인 온라인 기사에 댓글로 방어하기, 새벽에 현수막도 달아보고 구청 단속반과 실랑이도 벌여봤죠. 그래도 재밌긴 했어요. 아이한테 미안해서 그만두긴 했지만.”

천성인지 출산과 육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녀는 넉살이 좋고 판단이 빨랐다. 까칠한 오지라퍼인 대머리 부동산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는 일이 있어 내가 몇 번 근무시간을 배려해 줬더니 고마웠는지 일을 더 열심히 했다. 캐릭터 사업을 능숙하게 론칭시켰고 이른 시간에 안정궤도에 올려놓았다. 빨래방 매장은 늘 정돈돼 있었고, 시설이나 물품이 부족하지 않도록 미리 챙겼다. 덕분에 코인 빨래방 매출은 안정적이었고, 그녀의 인건비와 운영비를 대고도 제법 이익이 남았다. 보증금과 시설비 등 초기 투자비를 어느 정도 회수하면 그녀에게도 수익에 비례하는 인센티브를 책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 만났을 때 박하영 씨는 매우 위축되어 있었다. ‘고용만 해주시면 뭐든 할게요’의 저자세였다. 지방에서 전문대밖에 나오지 못한 경단녀-본인 표현이다-라 자격지심이 심했다. 그런데 웬걸, 그녀의 기획능력과 업무 진행 솜씨는 유학파나 명문대 출신 못지않았다. 책임감도 강했고 무엇보다 일 자체를 즐기는 자세가 다른 직원들에게도 에너지를 불러일으켰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피디님도 워라밸 좀 챙겨요. 우리 또래치고 사생활이 너무 없어 보여요. 채널도 사업도 어느 정도 자리 잡았겠다 여행도 다니고 연애도 좀 하시고. 나야 뭐, 퇴근하면 전쟁 시작이라 라이프가 엉망이지만 대표님은 충분히 즐길 수 있잖아요.”

남의 떡이 커 보이고, 이웃집 닭은 거위로 느껴지는 법.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녀의 아이들이 바글거리고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하영 씨가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반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온갖 감정을 주고받는 이벤트가 매일 발생한다는 것,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내 편이 존재한다는 것, 궁금했고 탐이 났다.

즐기라는 박하영 씨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내게 일 외에 다른 관심은 도통 생기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주승아 때문이다. 일이 아니면 그녀를 만날 수 없고, 그녀 없는 취미는 왠지 공허하게 느껴졌다.

가정을 꾸린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 뒤에는 ‘만약 내가?’라는 상상이 따라왔는데 그때마다 주승아 작가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나이 마흔이라면 혼기를 놓친 늦은 나이인데도 나는 그런 생각에 어린아이처럼 스스로 부끄러워지곤 했다.

“워라밸은 무슨……. 빨래방 손님들 모임에 참석하는 게 라이프인지는 모르겠지만 연락은 해 볼게요. 명색이 대표인데 손님들 니즈도 파악해야 되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하긴 하네요.”

빨래터 모임에 합류하기로 마음먹은 진짜 이유도 주승아 때문이었다. 그녀를 신경 쓰이게 하고 싶었다. 유치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내 영역을 만들어 궁금하게 만들고 싶었다. 생갈치1호의행방불명 때문에 내가 답답했던 것처럼 승아 마음에 불안감을 유발하고 싶었다. 아예 동떨어진 공간이면 효과가 없을 터였다. 빨래방은 승아가 신경 쓰일 범위 안이면서도 내막을 알 수 없는 최적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포스트잍의 휴대폰으로 바로 문자를 보냈다.

‘정지강입니다. 메모 잘 받았어요. 저희 빨래방 이용해 주셔서 감사한데 초대까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떤 모임인지, 언제 모이시는지 알려주세요.’

‘대표님, 반갑습니다. 저는 이 건물 주거동에 사는 박미현이라고 합니다. 빨랫감 들고 오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주고받다가 대화를 하게 됐어요. 원래 알던 사이도 아닌데 금세 친해졌습니다. 멋진 공간을 마련해 주신 대표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문자로 보냈는데 카톡으로 답이 왔다. 바로 내 번호를 메신저에 동기화했으리라.

‘저희는 일요일 오후 4시에 빨래하러 모입니다. 5명이 모이는데 희한하게도 직업, 나이, 성별 모든 게 다양해요. 빨랫감을 넣어두고 두 시간 정도 이런저런 잡담을 해요. 주로 속상한 일을 터놓고 말하다 보니 넌더리 빨래터라는 이름이 붙게 됐네요. 한 주 동안 마음을 헤집어 넌더리로 만든 썰을 풀어놓습니다. 주작 라디오 이불킥의 오프라인 버전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멋진 공간을 만드신 분이라면 멋진 분일 거라 생각해서 주제넘게 초대했네요. 수락하신 거 맞죠? 그럼 일요일 4시에 빨래 들고 오세요.’

박미현 씨의 문자에는 중간중간 이모티콘이 들어가 있었는데 우리 캐릭터인 깔끔이와 뽀송이도 있었다. 펼친 사업에 호응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코인 빨래방 매장이든, 유튜브 채널이든, 개발한 이모티콘이든 뭐든 말이다. 한편으로는 박미현의 멤버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모임 취지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불순한 의도로 참여한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역시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은 분별력을 빼앗는 날강도 같은 존재다.

몇 년 전, 친구 결혼식에서 들은 축가가 귀에 맴돌았다. 노래 솜씨 좋은 친구 두 명이 <Perhaps love>를 불렀었다. 존 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른 고전 팝송이었다. 노래 시작 전 그들의 축하 멘트도 인상적이었다.

“사랑이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저 두 사람도 사랑에 빠져서 이렇게 됐지만 정작 사랑의 실체는 모를 거예요. 알면 빠질 수 없는 게 사랑이거든요. 저희가 부를 축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알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죠. 그런데 가사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사랑의 기억만이 당신을 버티게 해 준다’. 서로 버티게 해주는 두 사람만의 소중한 사랑을 많이 만들어가는 신랑 신부가 되길 응원하며 부르겠습니다. 축하합니다.”


<어쩌면 사랑은>

어쩌면 사랑은 쉼터와도 같아

폭풍우 피하는 피난처 같기도 하고

편안함과 따스함을 주기 위해 존재해

고통의 시간에, 아무도 곁에 없을 때

사랑의 기억은 당신을 집으로 데려다 주지

사랑은 창문, 어쩌면 열린 문과도 같아

가까이 초대해서 더 많이 보여주고 싶어 해

네가 길을 잃고 어쩔 줄 모를 때

사랑의 기억은 너를 버티게 해 줄 거야

어떤 이들에겐 구름과도 같고

어떤 사람에겐 강철처럼 단단하지

어떤 이들에겐 삶의 방식이고 또 누구에겐 느낌의 방식

어떤 사람들은 잡는 거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놓아주는 거라 말해

어떤 사람은 사랑이 전부라고, 어떤 사람은 모르겠다고 하네

어쩌면 사랑은 갈등과 아픔으로 가득 차 있는 바다와도 같아

추운 날 장작불과 같고 비 오는 날 번개와도 같은 것

내가 영원히 살 수 있고 내 모든 꿈이 이루어진다면

내 사랑의 기억은 너와 함께한 기억일 거야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노래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가사를 다 외우지는 못하지만 ‘some say love is everything and some say they don’t know’ 부분만큼은 계속 흥얼거렸다. 사랑이 전부인지, 아무것도 아닌지, 그 정체를 몰라서였을 것이다. 잡는 것인지 떠나도록 놔두는 것인지도 몰랐다. 고백해야 하는 것인지, 참아야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내 안 어딘가에서 커져가는 물혹처럼 거슬릴 뿐이었다.

일요일이 점심이 되자 갑자기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어색할 것 같아 약속한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박미현 씨에게 못 간다는 핑계를 대려고 문자를 보내려고 핸드폰을 드는데 마침 그녀에게서 확인 문자가 도착했다.

‘피디님, 오늘 오실 거죠? 음료는 뭘로 준비해 둘까요? 날씨도 쌀쌀한데 뱅쇼 추천합니다. 아래층 카페가 뱅쇼를 진하게 잘해요.’

인간의 마음은 여리고 또 한편으로는 간사하다. 카톡 몇 문장에 의무감이 귀찮음을 이겼다.

‘네, 제가 사야 되는데 처음이니까 얻어 마실게요. 뱅쇼 좋네요.’

몇 시간 후 빨래방 출입문을 여는데 낯선 느낌이 쏟아졌다. 그동안 이 공간은 내게 오로지 촬영을 위한 곳이었다. 스튜디오가 아닌 빨래방, 공운과 주작이 없는 빨래방은 낯선 행성에 떨어진 것처럼 어색했다. 주인이 아니라 초대받은 게스트였기 때문이었다.

매장 안쪽 8인용 테이블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그들의 눈이 쏠려왔다. 나이 먹고도 사람을 처음 만나는 자리는 쉽지 않았다. 출연자를 상대할 때는 목적이 있다는 것, 할 말이 있다는 것이 어색함을 상쇄하지만 이런 모임은 난감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걱정하며 테이블로 다가갔다.

“정지강 대표님이시죠? 반갑습니다. 저 박미현이에요.”

두 사람은 일어났는데 박미현은 앉은 채였다. 눈웃음과 고갯짓으로 인사한 뒤 내려보니 그녀가 앉은 곳은 의자가 아니라 휠체어였다. 40대 후반쯤 되었을까? 눈가와 볼에 제법 깊이 새겨진 주름이 평범한 중년 여자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맞은편을 보니 고등학생인 듯한 남자아이와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인사하려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남매 같기도, 교사와 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로 목례를 주고받은 뒤 자리에 앉았다.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앉으세요.” 박미현 씨가 말했다. “여기 주인은 대표님인데 저희가 주인인 것처럼 구네요, 하핫.”

“초대받은 거니까 제가 게스트 맞죠. 대표님이라 부르지 마시고 그냥 이름 부르세요. 정지강입니다.”

그때 출입문이 열렸다. 빨래 바구니를 든 남자와 그 팔에 팔짱을 낀 여자가 들어왔다. 다가오는 그들을 보자 미녀와 야수가 떠올랐다. 남자는 누가 보더라도 우락부락한 폭력배 같았다. 시커먼 피부 하며 짧게 자른 머리, 건장한 덩치, 바짝 달라붙는 티셔츠와 어기적어기적 걷는 걸음걸이까지 전형적인 조폭이었다. 반면 남자에게 달려있는 여자는-달려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작고 갸름한 체구의 미녀였다.

“마침 모두 도착하셨네요.”

커플이 내게 눈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박미현 씨가 말했다. 어색함에 잠시 오디오가 죽었다. 그녀는 음료 캐리어에서 뱅쇼를 꺼내 내 앞에 내려놓았다.

“초대 감사합니다. 여기 빨래방 대표로 있는 정지강입니다. 매장 이용해 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이런 좋은 모임까지 하신다니 더 반갑네요.”

동네 체육대회 연단에 오른 구청장 같은 진부한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말투 역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말하면서도 스스로가 한심했다. 낯설고 어색한 것도 잠시, 다른 참석자들이 자기소개를 하자 괜히 왔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발언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니 알코올 중독자 치료 모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봄직한 장면이었다.

반가움과 어색함의 중간쯤에서 모두가 음료를 마셨다. 뱅쇼는 특히 쌀쌀해지는 가을에 내가 좋아하는 음료다. 프랑스 사람들이 마시는 뜨거운 와인인데 우리로 치면 쌍화차 같은 것이다. 한 모금 마셔보니 정말 진하고 맛있었다. 주승아 작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차가운 뱅쇼 같은 말’이라거나 ‘뜨거운 아아 같은 소리’라고 표현하곤 했다. 없는 자리에서도 자꾸 그녀가 떠오르는 게 싫어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박미현 씨는 주거동 21층에 혼자 사는 미혼 여성이었다. 지방법원의 공무원인데 재판 행정을 담당했다. 검찰과 변호인, 피고인 등 관련자들에게 공판 일정을 전달하는 업무였다. 그녀는 15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걸음을 잃었다고 했다. 휠체어에 의지해 살지만 튼튼한 상체 덕분에 큰 어려움이 없다며 자랑하듯 알통을 만들어 보였다.

“저도 미혼이고요, 지금 고1입니다.”

윤상후라는 남학생의 말에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 애는 3층에 있는 복싱클럽에 다니고 있었다. 운동을 좋아한 나머지 관장을 도와 체육관의 이런저런 잡일을 하게 됐는데 공용 수건과 글러브, 헬멧 같은 용품을 세탁하러 와서 박미현 씨를 만났다고 했다. 앳된 얼굴이지만 말투에서 어른스러움이 느껴졌다. 몇 달 전 과천에서 이사를 왔는데 복싱이 좋아 다섯 정거장이나 떨어진 이곳까지 버스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

학생 옆에 앉은 여자는 상후의 누나도, 교사도 아니었다. 대로 건너편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데 스포츠 계통에서 일한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멤버 중에 가장 수줍음이 많아 보였는데 자기 이름도 말하지 않고 발언을 끝냈다. 박미현 씨의 요청을 받고서야 라주아라고 작게 말했다. 그녀의 톤에 맞춰 사람들이 작게 손뼉을 쳤다.

“아, 라주아……. 예쁜 이름이네요.”

내가 감탄하자 그녀의 얼굴과 귓불까지 빨개져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프랑스 말로 기쁨이란 뜻이에요. La joie. The joy랑 같은 거죠.”

뜻을 듣고 보니 더 예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츠 쪽 일이라면 어떤 종목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소극적인 그녀의 태도 때문에 참았다. 스스로 밝히는 걸 꺼려하는 사람에게는 관심 표명도 참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지랖이 되고 만다. 라씨는 특이 성이다. 최근에 어디선가 만났거나 들은 기억이 내 머릿속을 얼핏 스쳐갔다. 하지만 누구의 이름인지, 어디서 들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마지막에 도착한 미녀는 표승희, 야수의 이름은 송형철이었다. 아내는 첼리스트였고, 놀랍게도 폭력배처럼 보이는 남편은 한국화를 그린다고 했다. 결혼한 지 3년쯤 되었고, 아이 없이 주거동 15층에 살고 있다.

“체육복이랑 복싱 장비 세탁하는 걸 도와주다가 상후랑 친해졌어요. 글러브랑 헬멧은 가죽인데 일반 세탁을 하려고 하길래 제가 말렸죠. 가죽이 벗겨지지 않는 세탁법을 알려줬더니 이 녀석도 양심이 있었는지 제 손이 닿지 않는 위쪽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 주더라고요.”

박미현 씨가 말하는 동안 상후는 쑥스러운 눈웃음을 지었다. 그 풋풋함이 웃음을 자아냈다.

“저처럼 무식하면 도움이 필요한 법이죠. 미현 아줌마처럼 일어서지 못하는 분도 도움이 필요하고요.”

둘은 금세 친해졌다. 사려 깊은 중년 여성과 붙임성 좋은 남학생은 곧 절친이 되었다. 2주 후에는 미녀와 야수 부부가 그들을 모자지간으로 착각하면서 말이 트였다. 건조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네 사람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대화를 했다. 곧 손영철 씨가 아래층에서 커피와 음료를 사 왔고 그들은 잡담을 이어갔다. 직장 생활, 작품, 학교, 가족, 장애와 사고, 복싱의 룰에 이르기까지 화제는 끊이지 않았다. 라주아 씨가 마지막으로 합류한 것은 그다음 주였다. 네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 중에 세제 넣는 방법을 물었다가 같이 앉게 되었다.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부부 빼고는 서로 알던 사이도 아니었고, 공통점도 별로 없어 보였거든요. 그런데 대화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힘든 일을 말하는데도 부끄럽지가 않았어요. 왜, 요새 그런 말 있잖아요.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약점이 된다.’ 우리는 이해관계가 없어서 그런지 무슨 말이든 서로 터놓게 됐어요. 그러다가 아예 시간을 정해서 모이게 됐고, 벌써 반년이나 지났네요.”

미녀 표승희 씨가 말하고 나서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길로 남편을 바라봤다.

“저희처럼 예술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경험이 중요해요. 저는 특히 다른 사람들의 사연과 감정을 알게 되는 걸 좋아하고, 그게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주는 편입니다. 아내 따라 빨래방에 왔다가 이렇게 좋은 분들을 알게 된 건 행운이에요.”

한국화를 그린다는 송형철 씨가 말했다. 인상은 투박하지만 말은 조리 있고 섬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에토남이었다(에스트로겐 남자라는 뜻으로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를 뜻한다고, 표승희 씨가 자랑하듯 말했다).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에 누군가의 빨래가 다 되고 건조기로 옮겨지곤 했다. 자기 차례가 되어 세탁 공간으로 갔음에도 이쪽 테이블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다른 손님들도 꽤 많이 다녀갔다. 약간 어수선하고 산만한 분위기였는데도 대화는 화기애애했다.

“저도 영광이네요. 박미현 님이 주신 쪽지를 받고 고민이 컸거든요. 궁금하기도 했는데 괜히 방해가 될 것 같기도 해서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대표로 일하는 회사는 유튜브 채널이 주력이거든요. 이곳은 촬영을 위해서 조성한 공간인데 이렇게 좋은 인연으로도 이어지니까 뿌듯합니다.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드네요.”

나는 오명 세탁소 채널과 그 이전의 내 이력에 대해 얘기했다. 그들은 흥미롭게 내 말을 경청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가벼운 질문도 던지면서 더 많은 얘기를 유도했다. 말이 끝나자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은 말을 늘어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라주아 님은 저쪽 아파트에 사신다고요? 단지 상가에도 셀프 빨래방이 있을 텐데 번거롭게 여기까지 오시네요. 감사하게도.”

내가 넉살을 떨자 다들 웃었다. 그녀는 작게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역시 조용한 캐릭터였다. 그냥 말수가 적은 성격이 아니라 뭔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날 말을 참은 사람은 라주아뿐만이 아니었다. 5명 모두가 내게 할 얘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한 달 후에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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