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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Jan 16. 2024

이상한 그림편지

슬픔의 유혹

Watercolor, pen,oilpaste,acrylic on paper

안녕 친구, 지난번 편지가 당신을 조금 우울하게 만든 건 아닌가 걱정하며 4번째 편지를 보냅니다. 돌 밭에서의 하루는 길고 무기력했고 끝없이 무거워지는 기분이었죠. 그 사나이가 나르는 돌들이 내 등에 차곡차곡 얹히는 기분이었으니 말이에요. 해가 저 멀리 언덕 뒤로 얼굴을 숨기고 캄캄한 어둠이 무섭게 퍼져나가고 있었기에 나는 바지의  흙을 털고 일어나 좁은 길을 따라 쉴 틈 없이 걸었습니다. 눈물을 쏟고 나니 몸 안의 기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죠. 짙고 푸른 밤하늘에는 그 흔한 별들도 떠 있지 않아 밤길은 더 어둡고 차가웠습니다. 하늘에 닿을 듯 길게 뻗은 나무숲을 통과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느리고 편안한 음악마저 흘러나오고 있었죠. 드디어 쉴 곳을 찾은 건가 싶어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숲의 한가운데에는 키가 큰 여인이 서있었는데 여인의 몸통은 서커스 천막이었고 여인의 뒤로는 화려하고 붉은 커튼이 공중에서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아름다운 춤을 추었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힘든 나의 이야기도 들어주었죠. 울적했던 내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했습니다. 여인은 그런 나를 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다시 아침이 온다면 당신은 다시 슬퍼질 거예요, 그리고 그 슬픔은 영원하죠. 나와 함께 하지 않겠어요?"

나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에 마음이 몹시 흔들렸습니다. 슬픔을 모두 끝내고 싶은 마음도 역시 굴뚝같았죠. 하지만 나는 당신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이 나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했고 난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어요. 순간 그녀는 얼굴이 파랗게 변하더니 매우 분노하기 시작했고 서커스 천막이 마구 펄럭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천막 안을 보는 순간 나는 살면서 가장 길고 짙은 소름이 돋았습니다. 화려한 천막 안은 아주 텅 빈 암흑이었어요. 마치 아무것도 없는 낭떠러지 같았죠. 그렇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답니다. 그녀의 제안을 받았다면 아마 나는 그 텅 빈 구렁텅이 같은 곳에 갇혀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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