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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Jan 17. 2024

이상한 그림편지

나의 작은 괴물들

Watercolor, crayon,markerpen on paper

안녕 친구, 지난 편지를 읽고 혹시 내 걱정을 했다면 나는 무사하고, 건강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 나는 그 슬픔의 유혹을 벗어나 다음 길에서 만난 것들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그동안은 사람들(100퍼센트 사람이라고 하긴 힘들겠지만)을 만났지만 이번 편지에서 소개할 것(?)은 작은 괴물들입니다. 가장왼쪽은 피망괴물, 가운데의 빨간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토마토괴물이고 그 옆은 오이괴물입니다. 이쯤 되면 당신은 편지를 읽으며 "이거 정말 미친놈이구만?"이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슬픔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나는 숲의 끝에 있는 절벽을 보지 못한 채 달리다가 그만 절벽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 모험도 끝이군 하며 체념하고 있는데 내 머리와 몸에 닿는 건 딱딱한 무언가가 아닌 아주 푹신하고 말랑한 감촉이었습니다. 거대한 마시멜로 위에 떨어진 것처럼요. 나는 얼떨떨하게 주변을 둘러보았고 내 주위는 온통 분홍빛으로 가득했습니다. 푹신한 바닥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바닐라향이 나고 있었고 달콤한 향이 나는 분홍색 벽을 긁어보니 설탕가루가 스르륵 하고 떨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슬픔뒤에 행복이 온다던 할머니의 말이 떠올라 나는 몹시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주 작은 괴물들이(새끼발가락 정도의 크기였죠.) 내 앞을 가로막고는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의 존재가 가치 있다고 느끼게 해 준 당신을 드디어 만나 너무나 기쁩니다!" 그들은 눈물을 훔치며 나와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나는 모르는 추억이지만요, 그들은 각기 맡은 채소 안에 들어가 사람이 채소를 먹지 못하게 만드는 일을 했는데 어릴 적 나는 그들이 맡은 채소를 철저히 거부했고 그들은 내 완강한 편식으로 존재의 가치를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꽤나 어이가 없는 이야기였지만 눈물까지 훔치며 말하는 피망괴물을 보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참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이제 다시 모험을 떠나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괴물들을 내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의 아버지의 호통소리에도 끝까지 오이, 토마토, 피망을 거부한 당신 덕분에 우리는 참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떠났고 나는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겼습니다.

P.S 차마 그들에게 말하진 못했지만 난 이제 오이와 토마토, 피망을 잘 먹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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