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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Jan 23. 2024

이상한 그림편지

6. 검정 강아지와 낡은 식탁

Colorpencil, oilpastel, watercolor on paper

안녕 친구, 6번째 편지를 쓰며 나는 작고 오래된 나의 집에서 호수 건너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강아지 머프를 키우며 살고 있어요.(편지의 주소를 보면 알 수도 있겠군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네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간 보낸 편지들이 다시 반송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송되지 않았다는 것은 적어도 이 편지를 싫어하진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내가 사는 주소로 누군가 찾아와 화를 낸 적도 없고 말입니다. 부디 당신이 내 편지를 성가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번 나는 채소괴물들에 대해 이야기했죠. 생긴 건 꽤나 괴이하고 징그럽기도 했지만 나는 착하고 순수한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달콤한 향이 풍기는 그곳을 지나 좁은 계곡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옷에 밴 달콤한 향이 거의 날아갈 무렵 몹시 배가 고파졌고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준비한 옥수수빵도 다 떨어진 상태였고 날씨는 급격히 추워졌기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왔는지 축축한 땅을 밟고 지나가는데 저 멀리 작은 집이 보였습니다. 아주 낡고 볼품없어 보이는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남은 힘을 짜내어 걸어갔습니다. 조심스레 나무문을 두드리니 손수건을 머리에 두른 한 소녀가 나왔습니다. 창백하고 흰 얼굴에 처진 눈매, 그리고 빛이 바랜 옷을 입은 소녀는 나를 보고 잠시 멈칫했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나는 모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고 하루만 쉬어갈 수 있겠냐고 물었죠. 소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추위에 떨고 있는 내게 따뜻한 옥수수 수프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녀는 작은 검정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소녀가 하고 싶은 말을 그 개가 대신 말해주더군요. 그 개는 자신이 원래 소녀의 할머니였지만 일 년 전 개로 변해 소녀를 지켜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낡은 식탁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낡은 집과 머프가 생각나더군요. 나는 소녀의 집에 구멍이 나거나 덜컹거리는 창 틀을 고쳐주고 벽난로를 고쳐주었습니다. 소녀는 매우 고마워하며 옥수수빵을 만들어주었고 나는 그 빵을 들고 다시 모험길에 나섰습니다. 낡고 추운 집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집을 나와 걷는 내내 나는 춥다는 생각도 기분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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