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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버둥 치는 순애

1. 자꾸만 뒤 돌게 되면

by 콩두부


종이에 색연필.2025

중호는 술을 끊은 지 4년이 되었다. 아내를 닮은 아들을 남겨두고 중호의 아내는 연락이 끊겼다. 양말 한 짝도, 심지어는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도 그 집엔 남아있지 않았다. 아내가 집을 나간 지는 20년이 조금 더 되었다. 그는 아내가 집을 나간 뒤 집 근처의 낡고 허름한 슈퍼의 단골이 되었다. 제 값을 바로 치른다기보다는 외상을 더 많이 하는 외상단골이었다. 그는 포크레인을 운전하는 기사였는데 나중에는 술 문제로 사고를 냈고 결국 그를 불러주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일을 찾지 않는 것도 매한가지였다. 그는 외상값이 십만 원이 쌓인 골치 아픈 손님으로써

아침저녁으로 들르는 그 슈퍼집 사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의 아내가 대신 가게를 보게 된 후 바뀐 여자 사장을 보면 떠난 자신의 아내가 생각났고 그 사실이 그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편의점이라고는 차를 몰고 한참 나가야 하는 시골이었기에 그는 가 슈퍼에 가지 않고서는 술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의 아들은 고등학생이었는데 아들 또한 집에서는 보기 힘들었기에 아들에게 부탁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중독은 그리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는 불편함으로 두근거리는 심장 따위 그 투박한 손으로 움켜쥔 채 슈퍼까지 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슈퍼의 새로운 사장은 그에게 외상을 허락하지 않았을뿐더러 그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왔을 때 중호는 크게 화가 났고 그는 낡고 얇은 선반 위에 있는 초코파이 상자들을 쓸어 떨어트렸다. 그는 그 일로 아들의 동의를 받아 알코올 중독치료 전문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약 1년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그가 퇴원하는 날 그의 아들 품에 하얗고 작은 강아지가 안겨있었다. 새끼 강아지였다. 무뚝뚝한 아들과 아들은 그 하얀 강아지를 아무 말 없이 번갈아 쓰다듬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벌써 4년 전이니 강아지도 5살 정도가 되었다.

중호는 일을 끝내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은 여전히 전화를 첫 번째만에 전화를 받진 않았기에 중호는 익숙하게 두어 번 더 전화를 걸고 기다렸다.

"통닭 사가려고 하는데, "

3번째 만에 전화를 받은 아들에게 말했다.

"예."

"그래 집에서 보자."

세 마디로 끝나는 짧은 전화였지만 그는 자신과 아들이 꽤 다정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집에 들러 마룻바닥을 해진 수건으로 몇 번 닦은 뒤 강아지를 안아 들고는 차를 타고 통닭집으로 향했다. 백미러로 보는 시골길엔 그의 차만 있었다. 그는 담배를 물고는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벼밭을 틈틈이 쳐다봤다. 노란 여름이 그의 뒤로 끝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줄곧 지난 일들을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별 것 없이 후회뿐인 지난날들인 것을 다 알고 있음에도 그는 어쩐지 자꾸만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 술에 취해 자신의 늙은 어머니 앞에서 바닥을 기며 엉엉 울었던 일, 아들에게 차가운 눈총을 받았던 일, 김치를 담그는 아내의 뒷모습, 한 여름 굴착기 기사들과 흙먼지가 나도록 싸웠던 그런 크고 작은 일들 말이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미련인지 자꾸만 돌이켜보는 것이었다.

그는 담배를 마치 오징어다리를 물고 있듯 물고 있었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새벽 눈보다도 밝은 햇빛이 자동차 앞 유리를 통과해 그의 그을린 볼과 눈동자에 닿았다. 햇빛을 막을 선글라스 따위는 없었다. 그는 잔뜩 인상을 찌푸려 앞을 주시하다가 큰 나무 밑 그늘길로 지나갈 때마다 제대로 눈을 크게 뜰 수 있었다. 문득 그늘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신이 있다면 그 신에게 감사한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그의 아들은 언제부터인가 교회에 다 나기 시작했지만 그는 아직 교회를 나갈 생각은 없었다. 작은 교회를 다니는 아들과 같이 교회를 나간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 때문에 아들까지 좋지 않게 볼 것 같았기에 그는 늘 교회를 가는 아들의 뒷모습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뒷모습에 아내가 생각날 때면 나가려는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가 이내 "아니다. 잘 다녀와라" 하고는 마른 바닥을 괜스레 슥슥 훑었다.

통닭집에 거의 다 도착할 때 즈음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그는 옛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아버지 한 마리 말고 두 마리로 포장해서 와주세요"

"누가 또 오기로 했냐?"

"그냥 좀 배가 고파서요."

"그래 알았다."

그는 강아지를 안고 차에서 내려 통닭집으로 향했다. 해가 거의 넘어가고 있는지 하늘이 진달래처럼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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