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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Aug 01. 2022

모퉁이에서 쌓은 시간

종이에 색연필


매일같이 우울한 음악이 나오는 카페도 흔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곳이 있었다. 캐트에겐 그런 곳이 있었다. 자신만 알고 싶은 아지트 같은 곳. 빛바랜 붉은 벽돌이 깨진 골목 모퉁이를 지나면 쉽게 지나칠 법한 작은 문 아래로 작은 카페가 있었다. 성인 남성의 손으로 두 뼘 반 정도의 폭인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희미하게 조용한 음악이 들려오는 이 카페에 오는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혼자 오는 사람들로만 채워졌다. 캐트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규모가 작은  출판사에 다니는 직원이었다. 금발과 갈색머리가 절묘하게 섞인 머리색은 윤기 없는 생머리였고 그의 셔츠는 낡고 구겨져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만드는 일에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주문하는 따뜻한 라테를 받아 들고는 조용히 퍼지는 음악을 들으며 다이어리에 하루 일과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작가가 되고자 했던 그였기에 그는 짧은 일기를 쓰는 도중에도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골똘히 생각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도중 보라색 머리로 염색한 여자가 다가왔다. 더 정확히는 청색과 보라색이 섞인 머리였는데 부스스한 머릿결을 보니 외모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걸까 하고 캐트는 생각했다. 그녀는 중년의 여성 같아 보이면서도 아주 젊은 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캐트의 일기장을 흘긋 보더니 고개를 괴고 말했다.

"작가이신가?"

이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그는 살짝 언짢으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고 있는 사이 그녀가 또  불쑥 손을 저으며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캐트도 어색하게 웃어 보인 후 다시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 다이어리에는 그녀에 관한 이야기도 추가되었다. 

그렇게 그녀를 처음 본 후 캐트는 일주일에 2번 정도 그녀를 마주쳤는데 그녀도 그를 알아보고는 짧은 눈인사를 주고받곤 했다. 그러다 카페의 가을 한정 이벤트가 열렸는데 가을에 관한 그림이나 글을 응모하여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작품을 만든 사람에게 한 달간 무료 음료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캐트는 학생 때 이후로 이런 응모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시간을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별 흥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글 응모라니, 그는 웬일인지 자신의 글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쩌면 오랫동안 그 일을 바라왔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10월 31일까지 버터콘]이라는 포스트잇을 회사에 그리고 집에 붙여놓고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퇴근을 한 후 카페에 와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더 자주 카페를 갔기 때문인지 그녀를 만나는 날도 늘어갔다. 캐트가 보니 그녀는 그림을 응모하려는 듯 보였다. 작은 스프링 제본의 스케치북에 매일 검은 펜으로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의 작업에 대해 묻거나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점점 더 친해지기 시작했다. 캐트는 이제 그녀와 나란히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얘기한다던지 어릴 적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지나 응모의 마지막 날인 10월 31일이 왔고 캐트와 그녀는 자신의 글과 그림을 응모했다. 캐트의 글은 작은 책의 형태로 카페에서 읽을 수 있었고 그녀의 그림은 카페 한편에 마련된 벽에 전시되었다. 그녀의 그림은 카페 내부 그림이었는데 손바닥만 한 그림들이 총 30개쯤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캐트는 그림을 보고 그녀와의 그동안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캐트는 무료 음료를 얻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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