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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두부 Aug 01. 2022

메릭빌의 가을

종이에 마카, 오일파스텔


호주에 여행을 갔을 때 나는 호크라는 호주 본토 사람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 같아 보였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어느 맥주 집 에서였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중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려 나는 급히 들어갈 곳을 찾았고 마침 낡은 나무 간판으로 된 맥주 집이 보여 서둘러 들어갔다. 맥주와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깨까지 오는 금발머리를 한 남자가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날씨 이야기로 시작해 순식간에 친해졌는데 다섯 번째 맥주를 주문할 무렵 그는 무언가 대단한 비밀을 이야기해 줄 것처럼 입을 달싹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가만 두지를 못해" 내가 킥킥대며 묻자 그는 진지한 얼굴로 자신이 사실 죽을 뻔했던 일이 있었다며 믿기 힘들 걸 알지만 들어보겠냐고 말했다. 나는 직원이 건네주는 맥주를 받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정말 믿기 힘들었고 더 나아가 소름까지 끼칠 정도였다. 서늘한 가을 날씨라 그런지 더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작은 동네의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는데 어느 날 마트에서 본 적 없는(그는 자신이 사는 마을에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아름다운 여자가 들어오기에 말을 걸었고 그 여자는 자기가 찾는 것들을 물어보았다고 했다. 호크가 물건들을 찾아주자 그녀는 고맙다며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많이 어색하다고 했다고 했다. 호크는 그녀에게 친구처럼 대하라며 능글맞게 얘기했고 결국 그녀와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그 무렵 그녀는 호크를 자신의 집에 초대를 했다. 그는 그저 설레고 행복한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가 준비해 간 와인과 음식들을 먹다가 그가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화장실이 두 개가 있는데 왼쪽과 오른쪽 중에 선택하라고 했다.(나는 이때부터 조금씩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귀여운 장난인가 싶어 재밌다고 생각하며 왼쪽을 선택했고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왼쪽 화장실은 윗 층에 있다고 했다. 그는 살짝 취한 상태였기에 조심히 계단을 올라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엄청난 광경을 보게 되었다. 화장실을 다 감쌀만한 악어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고 아래층에 있을 그녀가 화장실에 있었다. 발 밑으로는 붉은 피가 흥건했고 그는 그 선명한 피를 보자마자 빠르게 도망쳐 나와 무조건 달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 한 달 정도가 지난 후 그 여자를 마트에서 다시 보았는데 보자마자 몸이 굳어버린 그를 보고 웃으며 유유히 과일과 고기를 사고는 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녀를 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나는 호크에게 그 집을 다시 찾아가 본 적은 있냐고 물었지만 그는 끔찍했던 그 광경을 생각조차 하기 싫어 찾아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보름 뒤 그 동네에서 실종사건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메릭빌로 이사를 온 것도 그녀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얘기하며 나에게 자신이 본 악어를 그려주었다. 당시에 나는 그가 나를 놀릴 목적으로 지어낸 그럴싸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와 작별을 하고 서울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호주 퍼스에서 의문의 연쇄 실종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크가 그려준 그림이 생각나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나는 호크에게 부랴부랴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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