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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물이 Jan 06. 2022

8. 꿈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사실 놀고싶어요(당당)


초등학교에 다닐 때 장래희망 조사를 하기 위한 설문지를 받았다. 칸은 두 칸이었고 한 칸은 나의 장래희망 다른 칸은 부모가 바라는 장래희망을 쓰라고 되어있었다. 당시 나는 하고 싶은 직업이나 되고 싶은 롤모델이 딱히 없어 어떤 직업을 적을까 고민하다 엄마가 선생님이라고 쓰라고 하길래 나의 칸도 선생님이라고 쓰고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는데 나는 엄마에게 엄마의 꿈은 무엇 이었는지 물어보았다. 엄마는

라디오 작가가 되는 게 어릴 적 꿈이라고 했다.

우리 엄마는 다섯 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네 명의 동생들 때문에 일찍 집안 살림에 보태느라 학업도 포기하고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두 명의 이모들은 딸이라고 고등학교까지, 두 명의 삼촌들은 아들이라 대학까지 마쳤는데 우리 엄마는 중학교 수업 중 회비를 내지 못해 같이 회비가 밀린 친구들과 밖에서 벌을 서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고 했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동생들을 돌보다 외할아버지가 다니는 공장에 취직했다고 들었다.

만일 우리 엄마를 동생들 뒤치다꺼리나 하게 두지 않고 대학까지 보내주었다면 뭐든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엄마 성격으로 보아 라디오 작가 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한자리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장녀를 제외하고 아들 딸에게 투자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생각보다 투자한 만큼 효도를 받고 있지도 않은 것으로 보아 장기 투자했으나 본전만 겨우 건진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투자처를 장녀로 했으면 딱 네배의 수익률로 효도도 배로 받고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래서 엄마를 보면 가끔 슬프다. 

엄마의 꿈은 그렇게 꿈으로 남겨둔 채 현실에 충실했다. 엄마라고 해서 태어나 하고 싶은 일이 아예 없었을까? 단지 엄마는 꿈을 좇으며 인생에 변화를 택하기보다 그저 장녀로서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했을 뿐이다. 


이제 60대가 된 엄마에게 나는 모른 체하며 다시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꿈이 뭐였어?'

엄마는 '몰라'라고 대답했다.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어 서울로 상경 하고 싶었다고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이젠 '몰라'가 되어버린 엄마의 꿈. 엄마는 잊은 것일까 아니면 꿈같은 게 이제 와 무슨 소용이겠냐 싶어 나온 대답인 것일까.


사실 나도 지금은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이라 하지만 원래 작가가 꿈은 아니었다. 원래는 특수교사가 되고 싶어 고3 때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여도 특수교육과가 있으면 원서를 무조건 다 넣었는데 이상하게 면접까진 갔는데 합격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19살에 홀로 무궁화호를 타고 천안까지 가서 물어물어 학교로 가 면접까지 보고 올 정도로 간절했는데 다 떨어지고 나니 충격과 상실감에 의욕이 사라졌고 딱히 가고 싶은 학교도 지원하고 싶은 과도 없어 될 대로 돼라 싶어 장학금을 준다는 학교에 지원을 했다.


그 뒤로 나는 한동안 방황을 했고 그러다 갑자기 드라마 작가에 꽂혀 26살에 서울로 상경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엄마의 반대에 싸워가며 결국 여의도에 있는 작가 교육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교육원을 2년 다니다 맘 맞는 스터디원들을 만나 교육원을 나왔고 함께 3년 동안 공모전에만 매달렸다.


왜 난 대학도, 공모전도 간절할수록 되는 게 하나도 없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직장도 포기하고 가지고 있던 돈은 점점 줄어들면서도 밤새워 글을 쓰고 상의하고 합평하면서 여러 번의 공모전을 내는 동안 한 번도 당선되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공모전을 그만 포기하기로 했다.


어떤 일에 온 힘을 쏟고 나면 더 이상 돌아볼 기력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나는 그렇게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5년을 회사만 다니며 작가 지망생으로 지냈던 날들은 비밀상자 속에 고이 감춰놓았다.

 

그 뒤로 나는 딱히 무엇이 되고자 하거나 무엇을 하고자 하지 않았다. 

기회는 준비 된 자에게 온다는 말도 나에겐 해당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비관론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에 와서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꿈이나 간절함이 아니라 그저 글 쓰는 것은 그나마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활동 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머릿속에 있던 나만의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으니 말로 표현을 잘 못하는 나에겐 안성맞춤인 취미 생활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꿈을 좇는 사람들을 언제나 응원한다.

꿈이 없는 사람들도 응원한다.

꿈이란 누군가에겐 희망, 누군가에겐 사치, 누군가에겐 의미 없는 단어일 뿐 이란 것을 이제는 안다.

꿈은 거창 한 것이 아니며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없을 수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해서 재미없게 살고 있을 거라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며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해도 우리 삶은 언제나 지루함의 연속이라는 걸 모두 알지 않는가. 


아는 동생 k에게 예전에 어떤 걸 하고 싶었는지 물어보았더니

'언니, 난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없었어. 지금도 그냥 안정적인 직장 다니면서 살림할 거야'라고 말했다.

K는 본받고 싶을 정도로 집안 살림에 참 열정적이다. 사실 퇴근하고 나면 꼼짝도 하기 싫은 게 국 룰 아니던가. 그런데 k는 늘 그날의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주말마다 데려오는 아이를 위해 전날 집을 청결히 해놓고 아이에게 줄 음식을 미리 만들어 놓고 아이와 최선을 다해 놀아준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k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사람의 욕구는 다양하고 하고 싶은 것이 꼭 직업이나 명확하게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느꼈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래야 평생 그 일을 업으로 하며 일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나에게 맞는 천직을 찾으면 그 길로 목표를 잡고 가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사실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더라도 같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그것이 곧 천직이 되는 경우를 보았는데 우리 엄마의 경우 아버지가 돌아 가신 뒤 식당 일을 하시다 우연히 한 단체의 조리사로 일하게 되었고 그러다 제법 큰 시설의 조리장이 되어 현재에도 일을 하고 계신다. 벌써 조리시설에서 일한 지도 20년이 넘으셨는데 엄마는 정년 퇴직할 때까지 계속 일을 할 것이라 말하셨다.

사실 어릴 때 엄마의 요리 솜씨가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그런데 요리로 이렇게 오래 일을 하고 있는 엄마를 보면 운명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도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나에게도 어떤 변화가 생기거나 나도 모르는 운명이 내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동안 꿈에 집착하고 간절하게 갈망하던 지난 날 보다 마음을 비우고 시작할 때가 진짜 준비된 때인것을.

그래서 나는 소망한다. 

그저 꾸준히 오래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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