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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May 08. 2020

아침식사 준비하는 풍경

늘 늦게 퇴근하는 우리 집 가장과 새벽까지 대화를 하다 보니 늘 아쉬운 것이 잠이다.

거의 같은 시간대에 퇴근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늘 늦은 시간대에 잠을 청한다.


어제도 늦게 잠을 자는 바람에 5시간 정도 잤으려나?  

더 자고 싶지만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키고 어두운 거실로 향한다.

거실 불을 켜고, 덜 깬 잠을 깨우기 위해서 세수를 하고, 다시 부엌 싱크대에 다가가 수도꼭지를 틀어 차가운 물을 맞이한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자동적으로 쌀을 씻고 밥을 안치고, 자기 전에 먹고 싶다던 반찬을 준비하고, 가볍게 마실 국도 함께 준비한다.      


지금 시간은 새벽 6시.      


밥은 밥솥이 알아서 해 주니 그나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전기밥솥 혼자서 나에게 뭐라 뭐라 할 때 마치 혼자가 아닌 듯하여 정감이 있다.

어제 먹고 싶다던 계란 부추볶음과 가벼운 국거리를 준비하고, 밑반찬을 식탁에 깔고 상차림을 마치면 정확히 6시 45분이 된다. 그리고 나보다 잠이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나는 10분간 기다린다. 때마침 밥솥도 자기 일을 다 했다는 알림을 우렁차게 외친다.      


기다리는 십분 동안 출근할 때 가져갈 커피를 내리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식사 후에 먹을 과일을 준비한다.

이렇게 모두 준비를 마치면 정확히 7시가 되는데, 이제 아침 식사를 위해서 깨워야 하는 시간이다.     

 

잠시 후 있을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서 밥을 공기에 담아내고, 여전히 따뜻한 국을 국그릇에 담아내고, 마지막으로 마실 물을 가장 시원하게 준비해서 과일과 함께 식탁에 놓아둔다.      


함께 아침 식사를 끝내고 나면, 우리 집 가장은 출근 준비를 하고, 나는 딸아이를 깨워서 아침을 먹일 준비를 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침에 잘 일어나 주는 딸아이 덕분에 그렇게 힘든 아침은 아닌 편이다.      

8시가 되면, 우리 집 가장은 출근을 하고, 딸아이도 식사를 마치고 연신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아침 6시에서 8시, 2시간 동안의 아침을 여는 우리 집 풍경이다.

특히 이 두 시간 중 한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마치 중요한 일을 준비하는 것처럼 신중하고 조용한 순간이기도 하다. 물소리와 냉장고 문소리, 밥솥이 나에게 하는 소리, 그리고 달그락거리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흡사 명상과도 같다.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 어떠한 생각도 아침 준비를 방해하지는 못한다. 그저 맛은 덜할지라도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할 사람과  8시부터 신나게 하루를 시작하는 딸아이를 위한 아침식사 준비할 뿐이다. 나 나름의 성의와 정성과 함께...


그저 아침 식사를 잘 하고 가는 모습에서 평가를 받고, 동시에 열심히 준비한 것에 대해 보상을 받는다. 혹여 입맛이 없어서 힘겹게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입맛을 돋을만한 음식을 차리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서 아침이 늘 신경 쓰이는 것이 당연하고 나에게는 매우 중요해졌다.      


처음 전업주부를 시작할 때는 아침 식사 준비가 재미있었다. 마치 나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침 식사가 매우 불편하고 번거로울 때도 있었다. 남들은 밖에서 먹던데, 그냥 우유 한 잔 먹고 가면 안 되나? 그냥 사과 한 쪽 먹고 가면 안 되나?라는 생각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아침식사가 정말 소중한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아내의 모습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이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혹여 아침 식사가 맛있어서 기분이 좋았다면,

혹여 아침 식사가 유난히도 따뜻해서 마음이 든든했다면,

혹여 아침 식사가 부담스럽지 않아서 편했다면,     

아내의 출근길이 좀 더 힘차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제 전업주부 20개 월 차가 되었다.

의욕에 넘쳐 시작했던 전업주부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남자가 전업주부하게 되면 응당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슬럼프도 겪으면서 한동안 많이도 답답했던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나 스스로에게 자문을 한다.      

이 일이 내 일인가?      


아마도 남성이라는 틀을 나 스스로 깨지 못해서 일 수도 있고, 남성 전업주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남성을 버리지 않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생물학적으로 당연히 남성이기 때문이고, 그동안 남성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수많은 이유를 가져왔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은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치유의 능력이 있어서일까?

정말 오래 간직했던 성 역할에 대한 사고가 줄어들고 자기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하자는 생각이 앞서다보니, 내 일은 집 안 일이 되었고, 그 집안의 첫 시작이 아침 식사라고 생각하니 전과 다른 자유로움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피곤함은 여전하지만 차가운 물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 어우러지는 소리들이 나에겐 아침을 시작하는 팡파르와 같다.    

  내가 남성인데 이 일을 한다가 아니라,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어서 이 일을 한다가 옳은 말이 아닐까?

그저 내가 잘 하는 일이어서 준비를 하고, 가족이 이로 인해 편하고 행복해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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