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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선호 Aug 11. 2018

가장



가장



- 늦게 먹으면 쉬는 시간 없데이, 얼른 묵으라


햇살이 무섭다 못해 공포스러울 만큼 더운 날씨에도 그는

뜨거운 국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고 맛있었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이내 공깃밥 하나를 추가로 시키고는 앞에 놓여있는 깍두기를 집어먹었고

와그작와그작 깍두기가 아저씨의 입에서 씹히는 소리가 나에게 까지 들렸다.


- 이 집은 깍두기가 진짜 맛있데이.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땀들을 손으로 닦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던 아저씨는

나의 밥 먹는 모습을 보고 모든 걸 안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시원한 거 먹으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더운 날에 왜 국밥 먹으러 왔는지 궁금하제?

- 네. 

- 내는 일이 힘들고 지칠 때 국밥 한 그릇 딱 먹고 나면 힘이 펄펄 나거든. 

- ... 

- 괜히 이거 먹자고 했나, 미안하네. 

- 아니에요. 그래도 맛있는데요? 

- 맞제, 니도 이거 먹고 힘내서 일 마무리하고 집에 얼른 가야지. 

- 네.


아저씨의 선한 웃음에 조금 전까지 힘들었던 내 몸은 그의 웃음에 

조금은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고 나도 덩달아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추가로 시킨 공깃밥이 나왔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수저를 손에 쥐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와 일터로 향하는 중에 하늘에서 비가 내렸고

아저씨는 조금은 당황한 듯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상황을 기다렸다.


공사 현장에 도착했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몰랐고

인부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천막이 쳐진 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 니도 저기 가서 비 좀 피하고 있어라 

- 같이 안 가시게요? 

- 나는 저기 가서 현장 상황 파악해야지.

 

아저씨는 안전모를 손에 쥐고 공사현장으로 달려갔고 나는 천막으로 달려갔다.

천막 아래에 삼삼오오 모인 인부들은 그칠 줄 모르는 비에 오늘 작업은 여기서 

끝날 거 같다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지만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때문인지 나를 멀리하던 인부들과 달리 아저씨는

먼저 말을 걸어주고 챙겨주곤 했는데 아저씨가 없으니 어색하다 못해 

소외된 기분이 드는 천막 아래에서 공사현장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칠 줄 모르는 비를 뚫고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아저씨가 천막으로 들어왔다.


- 오늘은 시마이 해야겠는데. 


인부들은 다들 그의 말에 자리에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생각하던 중 아저씨의 전화기가 울렸고

인부들과 나는 그의 전화벨 소리에 시선이 집중되고 말았다.

전화를 건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인부들과 나에게 잠시 기다려 보라는 말과 함께

일방적으로 이어지는 누군가의 대화에 당황스러운 표정만 나와 인부들에게 보여줬다.

뒤늦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지만 전화는 끊어진 듯 보였고

천막 아래에 비를 피하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아저씨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 지금 위에서 지시가 하나 내려왔는데... 


아저씨는 잠시 동안 말을 멈추었지만 이내 우리들을 보고 미안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 저기 보이는 벽돌이랑 뼈대만 올려놓고 가랍니다.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보이는 

벽돌과 철물들이 가득했고 인부들은 하나둘씩 반발하기 시작했다.


- 저기 계단 오르내리다가 미끄러져서 다치면 우짤라고? '

- 계단도 대충 쇠 쪼가리 박아서 만든 긴데 안 미끄러질 수가 없다. 


인부들의 말소리는 높아졌지만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우리에게 말했다.


- 그건 일단 제가 한번 말해보도록 할 테니까 저것만 마무리하고 얼른 집에 갑시다. 


말이 끝나자마자 다들 조용해졌고 인부들보다 

아저씨는 먼저 안전장비들을 착용하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의 모습에 인부들은 하나둘씩 안전장비를 다시 챙겼고 

비를 뚫고 가는 아저씨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도착하자마자 현장의 계단을 확인했지만 안전화를 신어도 미끄러워 울 수 있겠다는 걸 

확인한 아저씨는 화가 난 채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다들 비를 맞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대화가 오갔지만 나아지는 건 없어 보였고 아저씨는 

격양된 말투로 작업을 할 수 없다며 안된다고 말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는지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가만히 서있는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인부들과 나는 돌아올 대답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아차렸다.

벽돌을 하나씩 등에 지고 계단을 밟으며 올라가는 아저씨를 따라 

우리는 움직였고 미끄러우니 조심히 움직이라며 우리들에게 친절히 말을 했다.

비는 점점 세차게 쏟아졌고 안경에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인부들과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고 하나씩 발걸음을 옮겼고 작업을 반복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비가 내려서인지 땀이 흘러서인지 우리들의 몸은 다 젖어있었다.

힘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움직였지만 점점 줄어가는 벽돌과 철물들을 보였고

인부들은 조금씩 미끄러움에 익숙해지는 듯 보였다.


- 자 이제 조금만 더 조심해서 움직이고 마무리합시다. 


아저씨의 말에 지친 몸을 이끌던 인부들은 퇴근이 가까워져서인지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고 

솔선수범하며 작업현장을 지휘하는 아저씨의 모습에 대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작업을 마무리하던 중 어딘가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소리를 따라 고개를 아래로 내렸을 땐 한 인부가 벽돌에 깔린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다른 인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어쩔 줄 몰라하며 지켜만 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아래에 있는 다른 인부에게 작업현장에 있는 전화기로 119에 신고를 하라고 말하며 

우리는 모두 떨어진 인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계단으로 내려갔다. 

안경에 맺혀있는 빗물도 눈앞의 참담한 상황을 가리진 못했다.

오히려 또렷하게 보였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나를 때리는 듯이 내리는 빗속에서 나만 멈춰있었다.

무서웠다.


이른 시간에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고 아저씨와 구급대원은 조심히 다친 인부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언가에 이끌린 듯 나도 구급차에 오르는 아저씨 옆에 같이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심각해 보이는 상황에도 정신은 드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아저씨가 가만히 있으라며 이를 말렸다.


- 괜찮다. 빨리 내리게 해 주소.

- 뭐가 괜찮은데, 지금 다치서 가는데 가만히 좀 있어 바라.


일어나려는 인부와 이를 말리는 아저씨와의 실랑이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고

아저씨는 내릴 때가 다 돼서야 내가 옆에 타고 병원까지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왜 따라왔냐며 얼른 집에가라고 나에게 손짓하는 아저씨.

나는 애써 무시하고 수술실로 향할 때까지 그의 옆을 지켰다.

아저씨와 다친 인부의 뒷모습이 한없이 외로워 보였다. 

수술실에 들어가는걸 두 눈으로 보고서도 앉아있지 않고 서있던 아저씨.

입고 온 다 젖은 바지에서 담배를 꺼내려했지만 담뱃곽부터 안에 있던 담배까지 모두 젖어있었다. 

의자에 앉아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멋쩍은 듯 웃어 보이는 아저씨.


- 담배도 끊어야 하는데.

- 근처 마트에 가서 하나 사고 피우고 오시는 게 어때요? 

- 나도 그러고 싶은데 돈이 문제 다이가.

   담배 한 갑은 피워야 될 거 같아서 사는데, 하루에 두 갑씩 핀다고 하면 돈이 얼마고.

   아까워 죽겠네.   


다 젖어버린 담뱃갑을 손에 쥐고 아저씨는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 조금만 피야지, 그것도 그렇고 이런 거 아껴갖고 우리 가족들 사는데 보태야지.

   담배 피우는 게 사치 일런가 모르겠지만 한 갑은 펴야 되겠는데 우짜겠냐. 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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