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거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건데

Draw a sketch. 45

by 공선호

늦은 저녁

퇴근길에 오르는 남자의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옵니다.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을 겨우 꺼낸 남자는

저장이 되어있지 않는 번호를 보고 끄려다 전화번호 뒷자리를 확인합니다.


자신과 똑같은 뒷자리를 가진 전화번호에

남자는 순간 전화를 받을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금방 울리다 말 전화라고 생각하고 바지 주머니에 다시 넣었지만

오히려 핸드폰의 진동은 더욱 남자를 흔들기 시작합니다.

얼른 전화를 받아달라는 듯한 핸드폰의 진동 울림에

남자는 전화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30초 동안 아무 말이 없는 통화에 남자는

조용히 전화를 끊으려다 여자의 울음소리를 듣게 됩니다.


' 무슨 일이야? '


누구보다 차가운 말투로 남자는 여자에게 물어봤고

여자는 마치 입이 얼어붙은 사람처럼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울기만 합니다.


' ... 지금 나비가 너무 아파. '


울먹거리는 여자의 목소리와 키우던 고양이가 아프다는 말에

남자는 세상 모든 걸 책임져야 할 사람처럼 황급히 물어봅니다.


' 왜?

어디가 아픈데?

근처에 병원 없어?

지금 너 어디야 병원 데리고 가야지

아프다고 전화를 할 시간에 얼른 데리고 가야지

너 지금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


2년 동안 전화 한번 오지 않았던 여자의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남자는 지금 당장 택시 타고 갈 테니까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지하철을 급하게 내리며 수많은 계단을 뛰어올랐고

도로의 차들을 바라보며 택시를 찾기 시작합니다.


' 너 아직 전화 안 끊었지?

근처에 동물병원 없어?

아니다 지금 내가 찾아볼게. '

' ... 있는데 다 문 닫았어

나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 왜 아픈 건지도 모르겠어? '

' 침대 밑에서 있다가 나왔는데

갑자기 토하더니 바닥에 누워서 숨쉬기 힘들어해. '


수많은 차들이 다니는 도로였지만 택시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남자는 잠시 핸드폰으로 동물병원을 찾아보다 아직까지 문을 연 한 곳을 발견합니다.


' 야 아직 문을 열고 있는 곳 있어, 여기로 빨리 가봐. '

' 거기 안 한다고 인터넷에 나와있던데. '

' 야간 진료한다고 하니까 얼른 가보라고. '


화가 잔뜩 난 남자의 말에 여자는 갑자기 울음을 그쳤고

급하게 뛰어 나가는 소리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뒤늦게 택시에 오른 남자는 동물병원으로 향했고

갑자기 끊기는 전화에 무슨 일 생긴 건 아닐지 바로 다시 걸며

귓속에 울리는 벨소리에 남자는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 전화를 거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건데

난 그동안 이게 그렇게 힘들었구나

그리고 너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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