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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Jan 26. 2020

주한미군과 자원봉사 (1)

자원봉사는 지금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시간

나도 봉사하고 싶다.

미 공군 오산기지에는 부대 안팎을 청소하는 미국인들이 있다. 예전에 '겨울연가'라는 드라마가 붐을 일으켰을 때 강원도 춘천의 '욘사마(배용준) 거리'를 일본 팬들이 와서 청소했다는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한 무리의 미군들이 한국 학생들과 함께 부대 앞 거리를 청소하고 있다.


무슨 일일까? 이 낯선 광경을 처음 봤을  그냥 의례적인 일회성 행사라고만 생각했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에 맞춰 옷을 바꿔 입긴 했지만 그들의 손에는 항상 집게와 쓰레기봉투가 들려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북한의 핵이 위협하고 있는 이 먼 곳 한국까지 와서 자원봉사라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나중에 주한미군 방송 AFN (American Forces Network) 라디오를 통해 그 활동 의미를 게 되면서 '행동하는 지성'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한미군은 자원봉사에 대해 관대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봉사하러 간다고 하면 잘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휴가 결재도 일사천리여서 좋다. 


오산 미 공군기지 American Red Cross의 자원봉사 모집 공고.


주한미군에 입사하기 전, 언론을 통해 일부 미군들의 일탈이나 범죄행위를 볼 때마다 "저 녀석들은 뭔데 남의 나라까지 와서 사고 치고 난리야." 하며 화도 냈었는데 정작 주한미군 안에 들어와 보니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눔의 실천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우리의 이웃이었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를 품에 안아 입양하는 친구도 있었다.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하는 대형 재난현장에서도 어김없이 그들을 볼 수 있다.  


누군가 이상적인 직업이 갖추어야 할 3가지 요소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생계유지가 가능해야 하고, 직업을 통해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직업이라면 이상적이라는 말이다.


1995년 소방관이 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바로 <소방관은 희생과 봉사의 아이콘>이란 말. 그래서 나는 이미 이 사회에 충분히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에 입사해 나눔이 곧 삶인 미군들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소방관으로 일을 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돈을 받고 업무로써 일을 했던 것이지 나의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 봉사한 것은 아니었다.


자원봉사는 지금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시간

2011년. 매년 2주간 자원봉사를 하겠노라고 사무실에 선포하고 MBC '코이카의 꿈(스리랑카 편)'이라는 단기 해외봉사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자그마치 80대 1의 경쟁률. 항공편을 포함한 비용 일체를 MBC가 부담하고 연예인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라서 그랬는지 엄청난 경쟁과 까다로운 전형을 통과해야만 했다. 면접과 체력테스트를 거쳐 스리랑카 편 참여가 최종 확정되었을 때 스스로 대견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내가 직접 선택한 자원봉사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며칠간의 교육을 받고 필요한 예방주사도 맞고 각종 서류에도 서명했다.


드디어 스리랑카로 출발.


스리랑카로 출발하기 전 동기 단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인도의 눈물, 실론티의 나라 스리랑카. 하지만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낙후함이란 마치 우리나라의 1960년대를 연상케 한다. 특히 내가 봉사할 <누워러엘리야> 마을은 주민 70퍼센트가 알코올 중독자. 공동으로 우물을 사용하고 운동화도 없이 동네를 걸어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


미소를 머금은 아이 아룬쿠마르. 지금은 20살 청년이 되어 있겠지?


하루 일당 5천 원을 벌기 위해 손톱이 까맣게 될 정도로 찻잎을 따야만 하는 고달픈 눈빛을 가진 그들을 마주했을 때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감사한 환경에서 지냈는지 돌아보며 또 그들에게 미안해 할 수밖에 없었다.


공사 시작 전 함께 학교를 둘러보며 필요한 공사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우리의 역할은 초등학교를 보수 공사하는 일. 사실 봉사라고 해서 적당히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일이 시작되니 작업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고된 작업, 중간중간 방송을 위해 촬영도 해야 하고... 함께 한 단원들에게 크고 작은 부상도 생겼다. 링거를 맞아가며 그렇게 2주를 보냈다.


그녀의 직업은 미용사다. 학교를 예쁘게 페인트 칠하는 그녀의 삶 또한 예쁘게 칠해지고 있다.  


함께 스리랑카에 희망을 전달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님, 너무나 마음씨가 고왔던 고 권리세 양,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가수 조하문. (사진 좌로부터)
키가 커서 높은 곳의 페인트 칠을 도맡아 해준 배우 이광수, 멋쟁이 개그맨 한민관, 그리고 착한 동생 류덕환 영화배우. (사진 좌로부터)


스리랑카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지난날의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주한미군이란 직장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그렇게 나는 매년 2주씩 봉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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