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의 작은 미국', 주한미군에서는 미 연방법과 관련 규정들이 실시간으로 사용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대한민국이 미국 소방을 활발하게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소방관에게 미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주한미군이라는지리적 특수성이 많은 소방관들과 소방을 취재하는 언론인들에게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굳이 미국까지 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진짜 미국'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미국 소방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화면 출처: SBS 스페셜)
지난 10년간 서울에서 제주까지많은 소방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의 주된 내용은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과 <어떻게 하면 소방관이 더 건강하고 안전한 현장활동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는 전문가로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비록 거창하지는 않지만 내가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누군가 지금 나에게 얼마나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120% 행복해요."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소방관 토크쇼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특히 소방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과 예비 소방관, 그리고 현직 소방관들을 만나 현재 내가 고민하고 있는, 가령 우리 사회에 굳건한 안전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보고 싶다.
그런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소방관 토크쇼는 단연 으뜸이다. 2017년 한 순직 소방관의 아들이 주축이 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FILO'팀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2014년 세월호 사고 때 지원 나갔다가 광주 도심에서 추락한 소방헬기 조종사의 아들이 바로 그 팀의 리더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딛고 오히려 소방관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는 그를 통해 많은 영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FILO'는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제일 마지막에 나온다."라는 미국 소방대원들의 모토인 'First In, Last Out'의 줄임말이다.
그들의 노력과 주위 선한 분들의 기부로 이루어진 소방관 전시회와 토크쇼 '46?, 47!'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전시회의 제목은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 46은 "괜찮은가? 혹은 알겠는가?", 47은 "그렇다."는 소방관들의 무전 신호로 소방관들의 삶 전반에서 각자 행복한지를 묻고 있다.
2017년 연희동 아트 갤러리에서 개최된 첫 번째 소방관 토크쇼 '46? 47!'
이날 토크쇼 강연에서 <소방관은 사람을 살리는 전문가>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소방방재신문)
그렇게 시작된 인연 때문이었을까? 2019년 2월 국회에서는 또 다른 소방관 전시회와 토크쇼가 마련된다. 건국대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된 '119 REO'팀의 작품이다. REO는 'Rescue Each Other'의 줄임말로 "소방관과 우리, 서로가 서로를 구하다."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들은 버려진 방화복과 소방호스를 사용해 새로운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 수익금의 50%를 암으로 고통받는 소방관들에게 기부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버려진 방화복과 소방호스를 사용해 만든 119 REO의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국회에 전시되어 있다.
2019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개최된 '소방관, 당신의 색(色)' 전시회 & 토크쇼
이날 전시의 주제는 '소방관, 당신의 색(色)'. 소방관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삶의 이야기를 색이라는 매개체를 통해풀어내는 시간이었다. 이날 나는 <나의 소방관 생활은 무지개색>이라는 취지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함께 참여해준 이종인 화재조사관, 박승균 소방관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같은 해 6월에는 소방관 창작 뮤지컬 '소방관에게 묻다.'의 사회도 맡게 되었다.
2019년 6월 8일 개최된 '소방관에게 묻다' 공연 포스터
이날 공연의 사회를 맡아 <순직 소방관에게 드리는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봉사활동에 관대한 주한미군의 조직문화 덕분에,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자신이 맡은 일에만 충실하면 무엇을 해도 간섭하지 않는 직장 덕분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직장과 나의 궁합은 참 잘 맞았던 것 같다. 주한미군을 통해 나를 계발할 수 있었고 또 그것을 나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내 직장에 감사한다. 비록 크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도록 소방관의 삶을 허락해줘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