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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땅별 Nov 17. 2024

기약 없는 희망

인생의 디폴트는 고통이다. 사는 게 안 괴롭냐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라고 말하지 않을 정도의 쿨함과 "그래도 조금은 외로웠어."라고 수줍게 고백할 유난스러움을 겸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랜만에 동창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은 뭣도 모르면서 정치에 대해 평하고, 시사를 논하며, 타인을 평가하더니, 종국에는 미래에 대한 결론까지 내려버렸다. 나 또한 뭣도 모르는 사람이고, 다만 내가 확실히 아는 유일한 것은 모른다는 사실 뿐이라,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침묵하면서 친구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다들 열심히 자기 의견을 피력했지만, 내가 보기엔 다들 외로워 보였다. 세상에서 겪었던 고독과 고통을 안주거리로 삼아, 오랜만에 만난 동창 친구들을 말동무 삼아 서로의 외로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도 처연해서 나도 그저 고독해졌다.


살다 보니 친구들은 다양한 궤적으로 걷고 있었다. 쳇바퀴 굴러가듯 사는 회사 생활에 이제 익숙해진 친구들, 낭만을 좇아 해외 여정을 떠난 친구들, 위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친구들, 그리고 벌써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떠나 천국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친구까지...


세상을 근시안적으로만 바라보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타인의 성취를 부러워하며, 일확천금을 희망하고, 뒤쳐진 것 같아 전전긍긍하며 강박적으로 살았던 나날이 있었다. 뭘 그리도 부산스러워했는지 지금으로서는 과거의 내가 참 귀엽더라.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평온한 내가 있지'라고 생각하니 참 기특하기도 했다.


다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 돕고 살지 않는다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 이 땅에 팽배한 고통과 고독을 내팽개치고, 그저 나 살기에 바빠 남을 돌볼 여유 없이 살아왔다면, 그 인생이 참 불행하지 않을까. 어린 시절 품은 희망이 이제는 기약 없는 소망으로 되어버렸을지언정, 여전히 나는 그 천진난만한 희망을 붙잡고 싶다.


미숙하고 순진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다. 살아오며 나름대로 방패를 세웠고, 가시로 무장도 했다. 그러나 점차 현실적인 사람이 될수록,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 될수록, 어릴 적 품었던 진심 어린 소망이 점차 스러지고 말았다. 내가 놓치고 만 소망은 무엇일까. 내가 잃어버리고 만 어릴 적 그 꿈은 무엇일까. 노스탤지어에 젖어 그 희망을 그리워할수록, 사무치는 정념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러나 아파하기만 하며 살 순 없지. 이제는 대책 없는 꿈을 꾸지 않는다. 참고 견디는 건 익숙하다.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지도 잘 안다. 그럼에도 꿈꾸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망하는 것이다. 희망을, 그 기약 없는 희망을.


나는 믿는다. 아직 이 세상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확신한다. 고통받는 약자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어줄 사람이 여전히 있다. 나는 소망한다. 우리는 기꺼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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