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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예YEEYEE Apr 29. 2024

에헴 할아버지와 고구마씨 2. 선물


혹시 건전지가 들어있는 로봇은 아닐까? 에헴 할아버지는 침착하게 고구마씨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고구마씨를 안아 올렸답니다.

“뭐 하는 짓입니까!”

놀란 고구마씨가 버둥거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움직일 때마다 마른 흙이 떨어지는 고구마씨를 빙글빙글 돌리며 건전지 넣는 곳을 찾았어요.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건전지가 들어갈 구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고구마씨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할아버지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내가 죽은 건가?”

목소리를 가다듬은 고구마씨가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영감께서 숲을 위해 애써주셔서 자연의 신이 고구마의 정령인 나를 보내셨습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할아버지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꿈이라도 눈 쌓인 차가운 마당에 고구마씨를 홀로 둘 수 없어서 말했습니다.

“일단 날이 밝거든 이야기하지. 어서 들어오시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에헴 할아버지는 고구마씨를 위해 윗목에 이불을 깔아 주었습니다.

‘거 참. 꿈 한번 생생하군.’

그리곤 다시 잠이 든 할아버지. 고구마씨도 할아버지와 함께 그르렁그르렁 코를 골았습니다.

쨍쨍한 햇빛이 비치는 방. 에헴 할아버지는 팔십 년 동안 한 번도 자 본 적 없는 늦잠을 잤습니다.

과연 할아버지의 생각처럼 새벽에 있었던 일은 꿈이었을까요?

“어이쿠!”

윗목에서 코를 골면서 자는 고구마씨를 발견한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직 잠이 안 깼나?”

할아버지는 자신의 볼을 꼬집었습니다. 볼이 얼얼하고 아팠습니다.

“씻으면 잠이 깨겠지.”

수건을 꺼내 든 할아버지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차가운 냉수로 세수를 마친 할아버지가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어허, 저것이 정말 움직이는 고구마인가?”

여전히 코를 골면서 자는 고구마씨. 할아버지는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고구마씨가 환상은 아닐지 생각했답니다.

천천히 고구마씨에게 다가간 할아버지가 뾰족하게 높은 고구마씨의 코를 잡아당겼습니다.

“으허허헉.”

고구마씨가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습니다.

“영감님 뭐 하는 짓입니까!”

“아니, 그러니까. 뭐 허허. 아침 드시겠나?”

어색한 표정의 에헴 할아버지가 딴청을 피우며 물었습니다.

할머니가 떠난 뒤로는 제대로 찬을 꾸려서 밥을 먹은 적이 없던 할아버지. 요리가 어설프고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고구마씨가 앞에 놓인 밥상을 검사하듯 들여다봤습니다.

“일단 야채가 고루 갖춰져 있고, 쌀은 보아하니 햅쌀이군요. 그런데 단백질이 좀 부족하지 않습니까? 나이가 들수록 단백질이 중요한데. 달걀은 없습니까?”

귀신에게 홀린 것처럼 할아버지는 다시 부엌으로 나가 달걀을 부쳐왔어요.

“좋습니다. 이제 드십시오.”

고구마씨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안 먹나?”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고구마씨에게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저는 물이면 됩니다.”

사발에 물을 담아서 꿀꺽꿀꺽 삼키는 고구마씨를 보면서 할아버지는 어쩐지 뭔가 속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모처럼 맛있게 아침을 먹었답니다.

“다 드셨으면 이제 옷장을 좀 보여주십시오.”

고구마씨의 말에 할아버지는 당황했습니다.

“무슨 고구마가 옷장을 살피나. 자네 참 이상하구먼.”

슬쩍 말을 돌리는 할아버지에게 고구마씨가 정색하며 대답했습니다.

“나도 춥단 말입니다. 뭐 입을 게 없나 옷장을 보여주십시오.”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고구마씨와 함께 옷장 앞에 섰습니다. 옷장을 열자 할머니의 흔적이 보였어요. 가지런히 정리된 서랍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겨울옷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벌써 계절이 그렇구먼.”

문이 열린 옷장 안에서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할아버지는 잠시 동작을 멈췄습니다.

“얼음, 땡. 영감님 이제 움직이시지요.”

고구마씨가 카랑카랑하게 외쳤습니다.

옷장 정리를 시작으로 고구마씨의 잔소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에헴 할아버지의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 조잘조잘 잔소리를 쏟아냈어요.

참 이상하지요. 고구마씨의 목소리가 닿을 때마다 내내 겨울이었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녹아갔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졸음도 유난히 고됐던 농사일도 모두 아득하게 먼 일처럼 느껴지는 할아버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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