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엄마는 여전히 동생만 예뻐했다.
“생일선물은 꼭 불도그를 사달라고. 강아지 불도그! 다리 짧고 귀여운 강아지!”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엄마는 못 들은 척한다. 잔디를 자르던 가위질을 멈췄으면서 엄마는 돌아보지 않았다. 원하는 생일 선물을 받기 위해서 엄마가 시킨 심부름을 꼬박꼬박했다. 남동생인 주현이에게 한약을 따뜻하게 먹인 지 벌써 한 달째다. 더워 죽겠는데 한약을 데우는 게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지 엄마는 알까? 손에 들고 있던 한약 봉지를 흔들며 말했다.
“한약. 이거. 주현이 챙겨주면 생일 선물로 갖고 싶은 거 사주기로 했잖아!”
엄마는 거짓말쟁이다. 거기다 못 들은 척 백단이다. 마당까지 따라 나온 나를 못 본 척한다. 어린이날 한 약속이라 날짜도 분명히 기억한다. 그날 분명히 내 생일인 6월 5일까지 동생인 주현이에게 한약을 챙겨 먹여 준다면 불도그를 사주겠다고 했다.
5학년인 내가 겨우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 4학년 동생의 한약을 굳이 챙겨 주는 게 솔직히 좀 싫었다. 나는 뭐든 다 혼자서 했는데, 그까짓 약하나를 못 먹는다고 챙겨줘야 한다니. 거기다 약을 챙겨주려면 4학년 교실에 들어가던, 아니면 급식소에서 주현이가 밥 먹는 걸 기다렸다가 챙겨줘야 하는데……. 그러면 축구할 시간도 뺏긴다. 그런데도 나는 한 달 내내 주현이 약을 챙겨 먹였다. 한약을 따뜻하게 데우는 게 집에서처럼 쉬운 줄 아나. 조금 아프다는 이유로 늘 남의 챙김만 받는 동생이 미웠다.
고개를 돌린 엄마가 말했다.
“개는 그냥 사는 물건이 아니야. 일단 식구가 되면 밥도 챙겨주고, 똥도 치워주고, 산책도 매일 시켜줘야 하는데. 그렇게 무작정 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니?”
엄마가 든 가위가 자꾸만 하늘로 솟는다. 손을 하늘로 뻗는다는 건 엄마가 흥분했다는 증거다. 이럴 땐 내가 더 침착해야 한다.
“다 해요. 사줘요. 불도그 사달라고요.”
“어이구, 김민준 씨 안 하던 존댓말을 다 하시고. 어쩐 일이세요.”
엄마의 목소리가 컸는지 주현이가 방문을 빼꼼 열고 우리를 바라봤다.
“엄마. 형아 생일 선물로 강아지 생겨요?”
내 동생 김주현. 남들은 주현이를 보면 귀엽다고 난리다. 학교에서도 친척들도 모두 주현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난 아니다.
주현이는 태어날 때부터 아팠다.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주현이가 아파서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할머니랑 살았다. 할머니랑 살 때는 뭐든 내가 먼저였다. 그리고 사달라는 건 거의 다 사주셨다. 거기에 가고 싶다는 곳은 어디든 할머니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부모님 그리고 주현이와 살면서 뭐든 나는 뒤로 밀린다. 지금도 그렇다. 엄마는 내 말엔 대답도 잘 안 하면서 주현이가 나오자마자 달려간다. 나한테는 툭하면 큰소리면서 주현이한테만 다정하다.
화가 치밀어서 일부러 현관문을 세게 닫고 집으로 들어갔다.
내 이름은 김민준. 성적도 중간 운동도 중간. 뭐든지 다 중간이다. 못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차라리 못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눈에 띄니까. 나는 외모까지 평범해서 길을 걷다가 흔하게 마주치는 아이 중 하나다. 그래도 그런 애들은 집에서 사랑받겠지? 나는 부모님의 관심 밖에 있다. 왜냐하면 아픈 동생이 있으니까.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엄마는 내가 먼저인 적이 없었다. 무조건 주현이, 주현이. 몸이 약한 동생만 챙겼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마음 같아선 축구하러 달려 나가고 싶은데, 다른 애들은 다 학원에 가서 축구를 같이할 사람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컴퓨터를 켜는 일이다. 스마트폰이라도 있으면 바로 할머니에게 연락할 텐데. 나는 그 흔한 스마트폰이 없다. 컴퓨터 메신저를 켜서 할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김민준 : 할머니 엄마가 약속 안 지켜.
우리 할머니 : 왜? 불도그 안 사준다니?
김민준 : 응. 약속했으면서 그런다.
우리 할머니 : 할머니가 연락해 볼게. 우리 손자 오늘 생일인데, 할머니가 못 가서 어쩌니.
김민준 : 괜찮아. 할머니도 바쁘잖아.
우리 할머니 : 아이고, 예뻐라. 좋아하는 잡채는 먹었어? 할머니가 아빠한테 민준이 주라고 케이크 쿠폰 보냈는데. 초는 불었고?“
김민준 : 응? 케이크?
우리 할머니 : 빵집에서 제일 큰 케이크로 보냈는데. 못 받았어?
김민준 : 휴… 저녁때 아빠가 사 오겠지. 할머니 나 이제 쉬어요.
우리 할머니 : 그려. 내 새끼 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