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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예YEEYEE May 27. 2024

세상 모든 흰둥이는 특별하다 3

엄마는 도대체 왜 그럴까?


전학 첫날부터 녀석은 달랐다. 선생님이 수업 내용을 물어봐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전학생은 공부까지 잘하는 게 분명했다.

“민준아, 너 이거 알아?”

수정이의 목소리에 얼른 고개를 들었다. 문제집을 들고 있던 수정이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자꾸 쿵쾅거리며 뛰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 어쩌지? 수정이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걱정이 밀려왔다. 그런데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수정이의 문제집은 내 책상이 아니라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전학생의 책상 위에 올라갔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여기까지 진도 나가서 알아.”

전학생이 필통에서 샤프를 꺼냈다. 샤프도 좋아 보였다.

나는 모르는 문제라 수정이가 나한테 물어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물어봐도 대답을 못 했을 거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속상한 걸까. 

“민준아!”

이제는 고개를 들지 않을 거다. 민준이는 전학생이고 나는 작은 민준이가 되어버렸으니까.

“미이인 주우운 아아.”

이렇게까지 부르는 걸 보면 설마 나인가? 고개를 들어 수정이를 보았다.

“전에 산다던 불도그 샀어? 생일 선물로 받는다며?”

“아 그거. 아직. 쉽게 구하지 못하나 봐.”

“하긴 우리 동네에서는 못 사니까. 그러면 서울까지 가서 사 오겠네. 우와.”

수정이가 나를 보고 웃었다. 불도그 때문에 웃는다. 

“불도그 보러 놀러 가도 돼?”

해맑게 웃으며 수정이가 우리 집에 와도 되냐고 물었다. 불도그 때문에 온다는 거니까 불도그가 없으면 절대로 오지 않겠지? 나는 기필코 불도그를 가져야겠다.

“당연하지.”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졌다.

생일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으니까. 그 핑계로 꼭 불도그를 받아낼 거다. 오늘 집에 가서 다시 말해봐야겠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동안 머릿속에는 불도그가 뛰어다녔다. 무섭고 사납게 생긴 것 같지만 눈이 초롱초롱하고 예쁜 불도그. 치킨처럼 짧고 도톰한 다리에 낮아서 만화 같은 코.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나 생일 선물…….”

마당에 들어선 순간 나는 숨이 턱하고 막혔다. 웬 하얀 개 한 마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허리쯤에 오는 크기의 개로 옆집 할머니가 기르는 백구랑 똑같이 생긴 개였다.

“여기 생일 선물.”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누구 선물인데?”

팔짝팔짝 뛰며 나에게 달려드는 개가 너무 신경 쓰였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당연히 민준이 생일 선물이지.”

그렇게 사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왜 이렇게 시무룩한 표정이냐는 듯 나를 보는 엄마.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하다.

“내가 그냥 개를 사달라고 했어? 불도그라고 했잖아. 종이 다르다고. 이 개는 진돗개인가? 아니면 뭐지 그냥 믹스인가.”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던 엄마의 표정이 점점 살벌해졌다.

“개면 개인 거지. 살아있는 동물이 무슨 장난감인 줄 아니!”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드는 하얀 개. 불도그가 저렇게 평범한 개가 되어버린 건가? 날 보고 꼬리를 흔드는 게 짜증이 난다. 더 말해봐야 엄마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돌을 걷어차고 돌아섰다.

“김민준!”

뒤에서 엄마가 화를 내며 나에게 하는 말이 바람에 흩어져 날아갔다.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이제는 불도그를 받을 기회가 영영 사라졌다는 생각뿐이다.

집을 벗어났지만, 동네에서는 딱히 갈 곳이 없다. 그 흔한 피시방도 없는 동네. 이런 시골에서 잘 참고 지내고 있는 나에게 불도그 한 마리쯤 사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동생인 주현이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올 일이 없었던 동네. 엄마랑 아빠는 나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해줄 생각이 없는건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짜증 난다.

우리 가족은 나를 위해서 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관심도 없다. 차라리 나도 아팠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엄마는 불도그를 사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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