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 좀 들어달라고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겨우 일어나서 거실로 향했다.
“민준이 이리 좀 와 봐라.”
아빠가 엄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왜요?”
조용히 눈을 마주보던 아빠가 부드럽게 물었다.
“꼭 불도그여야 하니?”
“나는 흔한 저런 흰둥이는 싫어요. 저런 개는 옆집에도 있고, 뒷집에도 있잖아요. 마을에 있는 개들은 다 저렇게 생겨서 불도그가 키우고 싶었던 거라고요.”
아빠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꼭 불도그가 갖고 싶은 거라면……. 아빠가 엄마를 설득해 볼 수도 있어. 그런데 그렇게 되면 저 흰둥이는 어떻게 하니?”
“그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나는 처음부터 불도그가 갖고 싶다고 했고.”
살그머니 문이 열리고 주현이가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나는 힐끔 주현이의 표정을 살핀 후, 머릿속으로 되풀이하던 말을 쏟아냈다.
“저 개를 주현이가 나보다 더 좋아하니까. 저건 주현이가 갖고, 나는 불도그로 사줘요.”
“개는 한 마리만 기르도록 하자. 한 번도 길러 본 적 없는데……. 무작정 두 마리를 기르는 건 힘들지 않겠니?”
아빠는 내심 내가 저 흰둥이를 기르겠다고 말하길 바라는 눈치다.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그러면 불도그요.”
“정 원한다면 그렇게 해줄게. 그런데 그렇게 되면 흰둥이는 다시 센터로 돌아간단다.”
아빠가 식탁 위에 접혀 있던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 나에게 노트북을 보여줬다. 노트북에는 유기견 센터라는 곳의 사이트가 열려있었고 흰둥이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흰둥이 밑에는 ‘입양 완료’라는 메시지가 떠 있다.
“우리는 이제 입양 신청은 힘들 거야. 흰둥이를 입양하자마자 파양하게 되었으니까.”
“그건 엄마가 잘못한 거잖아요. 도대체 아빠까지 왜 이래요? 나는 처음부터 불도그라고 말했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엄마랑 아빠라고요.”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표정의 아빠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도그를 원했고 말을 바꾼 적이 없다. 그래서 화가 났다. 결국 내 의견을 들어주지 않아놓고는 부모님이 자꾸만 내 탓을 하는 거라고 느껴졌다.
“왜 자꾸 내가 잘못했다는 듯 말하세요? 이렇게 내 말을 안 들어줄 거면 개를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죠. 어떻게 왜 매번 해달라고 하는 걸 하나도 안 해주냐구요. 전학 가기 싫다, 이사 가기 싫다 아무것도 안 들어주고. 겨우 생일 선물로 불도그 기르고 싶다고 했더니. 전혀 다른 개잖아요!”
화를 내를 나에게 아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불도그를 입양하려고 했지. 그런데 품종견은 입양이 잘 되고 흰둥이 같은 개들은 입양이 어렵다고 하더구나. 사람들이 개를 너무 많이 버려서 개들을 보호하는 보호소에 자리가 없거든. 그래서 입양이 급하다는 흰둥이를 받아오게 되었단다.”
차라리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흰둥이도 괜찮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불도그도 불도그지만 내가 제일 실망스러운 건 부모님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말해줬어야죠. 뭐든 아빠랑 엄마 맘대로 하면서 그게 내 생일 선물이라니. 말이 돼요? 적어도 내 생일만큼은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고요.”
우리의 대화를 듣던 주현이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아빠 생각이 부족했어. 엄마랑 다시 말해 볼게.”
“그러면 흰둥이는요? 아빠 흰둥이는요?”
주현이가 크게 울기 시작했다. 부모님께는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는데 흰둥이를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방으로 올라가 가방을 챙겨서 집을 뛰쳐나왔다. 마당으로 나온 나를 보고 흰둥이가 꼬리를 흔들었다. 뭐가 좋은지 팔짝팔짝 뛰기도 했다. 성질만 부리는 내가 좋다고 꼬리를 흔드는 게 바보 같았다. 그런데 마음이 이상했다.
컹컹거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옆집 할머니가 개밥을 주고 있었다. 옆집 개도 하얀 개. 그런데 옆집 개는 우리 흰둥이보다 주둥이가 조금 더 길었다. 뭔가 덜 귀여웠다. 우리 흰둥이는 좀 똘똘하게 생기고 귀여운데.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왜 흰둥이가 자꾸 마음이 쓰이고 이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