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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예YEEYEE Jun 03. 2024

세상 모든 흰둥이는 특별하다 4.

누굴 닮아 그러긴 엄마를 닮았겠지


“어, 너도 여기 살아?”

수로를 따라 걷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모자를 쓴 전학생이었다.

“어, 어어.”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우리 집은 저쪽이야.”

전학생은 손을 뻗어서 옆 동네를 가리켰다. 그쪽 동네는 집들이 다 멋있었다. 대부분 펜션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어떤 펜션에는 고양이가 10마리나 살아서 친구들하고 구경하러 간 적도 있었다.

“너네도 펜션 해?”

전학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에 놀러 와. 마을이 커서 가까이 사는 친구가 없을 줄 알았는데. 반갑다.”

전학생은 잘생겼는데 웃는 얼굴도 멋있다. 빙글빙글 꽈배기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급하게 먹은 것처럼 속이 비비 꼬인다.

“그래 알았어. 그럼 이만.”

나는 대충 손을 흔들고 무작정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수로 길가에 길게 늘어선 나무들이 흔들린다. 녹색으로 물든 잎들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평범한 흰둥이 대신 불도그가 있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친구들은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어 했을 것이고 나를 아주 잘 기억했겠지.

선생님들은 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담임 선생님을 빼고는 내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선생님이 없다. 심지어 우리 학교에는 총 6개 반이 있다. 같은 학년은 무조건 같은 반이 된다. 20명 밖에 없는 5학년 중에 가장 존재감 없는 게 내가 아닐까? 매일 집에서도 주인공이 되지 못하니까 학교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건 당연할 걸까? 할머니랑 살 때는 늘 내가 주인공이었다. 할머니는 늘 내가 먼저였고 뭐든지 날 위해 해주셨다. 

길을 따라 걷다가 산으로 들어갔다. 이곳엔 군인들이 훈련하려고 파놓은 구덩이가 있다. 이곳은 나만의 아지트다. 구덩이에 들어가서 앉아 있으면 사방이 꽉 막혀서 세상에 홀로 남은 기분이다. 그래서 내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지구 멸망 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주인공이 된 것 같으니까. 귀신이나 좀비들에게 들키지 않게 숨소리도 조심스럽게 낸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지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면 산길이라 위험하다. 지난번에 여기서 잠들었다가 캄캄한 산길을 내려가야 했다. 그때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났는데 꼭 공포영화 같았다. 그날은 좀 특별했다. 엄마가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런 날이 또 오긴 올까? 산을 벗어나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에 흰 개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킁킁.”

흰 개가 내 냄새를 맡으며 꼬리를 힘껏 흔든다. 얘 때문에 나는 불도그를 사지 못했다. 꼴도 보기 싫은데 왜 이렇게 나를 좋아하지. 조금 미안하지만 나는 이렇게 흔해 빠진 개를 원한 게 아니었다.

“형 왔어? 흰둥이 예쁘지!”

주현이가 배시시 웃으며 걸어왔다.

“뭐가 예뻐. 하나도 안 예뻐. 이름이 흰둥이가 뭐냐. 흔해 빠진 이름이라니.”

내가 흰둥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두 팔을 벌린 주현이가 흰둥이 앞에 막아섰다. 때릴 생각은 없었고 그냥 만져보려고 했다. 도대체 동생은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흰둥이 때리지 마! 아무리 형이라도 용서 안 해!”

흰둥이는 내 생일 선물이 아니다. 김주현 선물이 분명하다. 방에 들어가서 오락이나 해야겠다.

“김민준. 이제 들어오면 어떻게 해? 개가 생기면 똥도 치우고, 밥도 챙겨 준다고 약속했으면서.”

엄마의 화난 목소리에 내가 더 화를 내면서 대답했다.

“내가 언제 개라고 했어? 불도그라고 했지.”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세게 닫고 잠갔다.

엄마가 문을 두드렸다. 소리는 점점 커지지만 문을 열지 않고 모니터 앞을 지켰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소리 지르고 방에 들어가서 문 잠그면 다야? 요즘 갑자기 왜 이러니.”

“엄마 닮아서 그런가 보네. 엄마 지금 목소리 크기를 생각하세요.”

엄마가 뭐라고 하던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스피커 소리를 높였다. 엄마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녁도 먹으러 나가지 않고 방에 틀어 박혀있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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