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해외 여행 자유화'가 시작되며, 외국으로 나가는 한국 관광객의 숫자는 어마어마 했다. 대한항공등 국적기는 물론이고, 내가 근무하던 타이항공까지 늘 한국인으로 만석이었다.
회사출장 가시는 분이나, 외교관혹은 젊은분등은 기내에서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나이드신 단체 여행객이 많은 우리 비행기에는 내가 도와드려야 할일이 꽤 많았다.
주로, 식사시간이 가장 바빴다. 일단, 음료 서비스가 먼저 나가는데, 모처럼 해외여행인데, 어찌 콜라나 오렌지 쥬스 한잔으로 대충 퉁칠수 있겠는가? 승객들은 음료 카트의 술병을 대충 훑어본뒤,"칵테일 주세요!""위스키 주세요"" 저 빨간술 주세요" 이런식의 주문을 많이 하셨다.
"칵테일 뭐 만들어드릴까요?" 하면..
"아 몰랑,,아가씨 생각에. 젤맛있는거..
한국 사람들 좋아하는거..이런식으로 주문도 얼렁뚱땅이다.
반대쪽 태국 승무원과는 대화가 안되니..
오로지 콜라 랑 오렌지인데..내가 있는쪽은
자질구레한 대화들로 진도가 안나갔다.
승객이 많이 없거나 하여, 시간이 될땐 다양한 종류의 맛있는 칵테일을 만들어 극진한 서비스를 하기도 하지만, 비행시간이 짧고 승객이 만석일때, 칵테일 한잔 맛있게 만들어 드렸다가는 그 자리를 벗어나올수가 없다. 맛을본 주변인들이 다 "나도 나도 똑같은거!"를 계속해서 외치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그럴땐 일부러 독하게 베이스를 깔아, 더 이상의 주문을 미리 방지한적도 꽤 있었다 .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식사시간이다.
기내식 대부분의 메인메뉴는 소고기, 돼지고기,닭고기,생선이다.
승객 90%이상이 한국인인 (대략 400명 승객)비행에서 한국 승무원은 나 한명뿐..
동료 태국 승무원들은 BEEF/PORK/CHICKEN/FISH 을 한국어로 빨리 써달라며, 내게 달려온다.
맘 급한 승무원은 소/돼지/닭/생선 의 그림을 기내엽서 뒷면에 그린후 승객에게 보여주며 주문을 받는다.
혹은 바디 랭귀지로 소의 뿔표시/돼지코 모양/파닥파닥 닭의 날개짓/물고기 꼬리 살랑살랑.. 헤엄치는 모양으로 표현도 해보고, 그야말로 판토마임쇼가 따로없다.
그 마저도 번거롭다 생각되면, 재빨리 암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모두 뒷단어가 "고기'로 끝나는데, '생선'만 쌩뚱맞은 단어라고, 발음도 어렵다며, "쌔엥썬""쎄엥쓴" 하며 계속
툴툴거린다.
"아 맘에 안들어! 다른 단어 없니? 다른것들은 다 "OO고기" 라서 암기하기 좋은데 말야?"
갑자기 뇌리에 화라락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물고기" 그렇다!!"물고기" ㅎㅎ 다소 적절하진 않지만, 승객들에게 웃음도 선사하고, 승무원도 귀염받고, .. '하하하' '호호호'웃으면 소화도 잘되고 기내 분위기도 좋아지고,,,
역시나! 내 생각은 적중했다. 태국 승무원의 "쎄엥쓴' 발음을 못알아듣던 승객들이 "물고기"라는 단어에 빵빵 터지는 거였다. 승무원을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시더니, "따라해봐! "생선" "생선" 하신다.
그 이후에는 요령이 생겨, 식사전에 기내방송으로 미리 메뉴를 알려드리니 많이 수월해지긴 했다. 요런 기내풍경은 요새는 볼수 없는 모습으로 생각되어 소개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