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의 예배3

의식하지 않는 것이 찐이다.

by 안진석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한다.



“겸손한 자가 있다면, 그 자는 자신이 겸손한 지 전혀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인즉슨, 자신이 정말로 겸손한 사람이라면, 본인 자신이 겸손한 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짜'일지 모른다. 여기서 진짜란 본질 혹은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때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무의식 속 알맹이를 뜻한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가치는 정말이지 나의 의식으로서 발견되는 영역이 아니라, 실로 외부의 영역이다.


‘나의 것’이 아니다. 외부로부터 온 것이거나, 받은 셈이다.



겸손한 사람은 겸손함을 자각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은 자존감에 대해 자유로워진다.


사랑을 행하는 사람은 손해를 의식하지 않고,

숨을 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기를 의식하지 않는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중력을 의식하지 않고,

지금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


일에 지치고 힘든 사람은 힘듦을 자각하지 못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다.(요일 4:8)




우리가 살면서 의식하는 가치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다른 말로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 감사해야 할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의식하고 자각하지 못하는 영역일수록 우리의 노력이나 힘으로부터 파생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걸어 다님에 감사해야 한다~ㅎㅎ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에게 감사해야 한다~ㅎㅎ

우리 부모님,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 지구, 우주, 손, 발, 친구들, 공부할 수 있는 것,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



그냥 우리에게 태어나자마자 기본값으로 주어진 환경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 하나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나의 노력으로 더하는 걸 삶의 모든 목적인처럼 우리 삶의 감사를 일그러뜨린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 너무나 많음에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삶을 마냥 작고 소박한 감사로만 축소시키며, 노력하며 살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 삶이 사실 알고 보면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자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깊이 체감하며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사는 하루를 축복이라 여기며 사랑하는 이웃들과 감사하는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남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이며, 기여할 수 있는 자이다.


기여할 수 있는 ‘여유로움’ ‘즐거움’이 뿜어져 나온다.


왜냐면, 그의 삶은 이미 축복의 장이요, 감사가 흘러넘치는 풍요로운 삶이기 때문이다.



결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배고픔은 의식의 영역이기에, 음식을 찾는 것은 자연스럽다.

수면 또한 의식의 영역이기에, 잠 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신의 영역은 무의식의 영역이기에, 하나님이란 글자는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분이 주장하시는 가치와 그분의 형상이

사랑이고, 감사이며, 기뻐함이라면 그것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고귀한 이유로서 다가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하나님을 미약하게 혹은 강하게 ‘의식’하며 살 수 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무의식'의 영역에서 '의식'의 영역으로 오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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